주은래
-
칼럼
주은래·등영초 부부의 ‘청빈낙도’ 러브스토리 닮을 정치인 어디 없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두 다리 쭉 펴고 살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청빈낙도(淸貧樂道)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세상에 바라는 바가 없다. 오늘 가도 좋고 내일 세상을 떠나도 여한(餘恨)이 없다. 언제나 편하다. 청빈낙도란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고 즐긴다는 뜻이다. 옛날 조선시대는 양반(兩班) 사회였다. 양반은…
더 읽기 » -
동아시아
[역사속 1.8 아시아] 일본군위안부 첫 수요집회(1992)·주은래 中 총리 서거(1976)
[아시아엔=손혁재 시사평론가]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모든 사람에겐 특별한 성취를 이뤄낼 힘이 있습니다.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세요.”-스티븐 호킹(1942년 오늘 태어난 영국 이론천체물리학자. 21살 때 불치병으로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장애인 됐으나 블랙홀 등 현대 우주론분야에 큰 업적) -1895(조선 고종 32) 동학혁명 지도자 김개남 장군 전주감영에서 참수/육시형 당함 -1932 이봉창…
더 읽기 » -
동아시아
“현대중국은 주은래 밑그림에 등소평이 다듬고 색깔 입힌 것”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덩샤오핑(鄧小平)은 믿음이자 희망이었다. 덩은 저우의 기대에 보답했다. 오늘 중국의 실체와 미래는 저우가 그렸던 밑그림을 덩이 다듬고 빛깔을 얹힌 것이다. <신중국사>(新中國史, China A New History)의 저자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는저우언라이의 중립성과 뛰어난 분별력을 높이 평가했다. 저우언라이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제나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으며, 조직의 단합을…
더 읽기 » -
칼럼
[중국 개혁개방 40년③] 모택동은 주은래 문병도, 추모식에도 참석치 않았다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를 한번도 문병 가지 않았다. 추모식에도 참석치 않았다. 인민들은 문병과 추모 등 마오의 가시적인 배려 같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이 손잡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소박한 인민들의 바램이었다. 그 작은 소망마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인민은 분노했다. “4인방을 타도하자!”는 격한 시위는…
더 읽기 » -
칼럼
[중국 개혁개방 40년②] “주은래 죽음은 모택동 시대의 종말 예고”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이끌던, 중국혁명 전설의 주인공 세 사람이 시간을 다투어 이승을 뜨고 말았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는 요란한 진동이었다. 진동은 지각변동으로 이어졌다. 그해 10월 6일, 이른 바 ‘4인방’으로 불리던 장칭(江靑) 등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반전(反轉)이었다. 저우언라이의 황포군관학교 시절 이래 평생의 전우였던 예젠잉(葉劍英)이 4인방 타도에…
더 읽기 » -
사회
[중국 개혁개방 40년①] 1976년 주은래·주덕·모택동 사망과 등소평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광장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저우언라이에게는 무덤이 없다. 여기가 바로 그의 무덤이었다. 얼마나 웅장한 무덤인가? 인산인해라 했다.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의 숨이 멎었다. 시간은 아침 9시 57분, 그의 나이 78세였다. 기록은 그의 마지막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숨 거두기 하루 전 날인 1월…
더 읽기 » -
칼럼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이중 전 숭실대 총장 “반세기 한우물 판 3인방”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연변과기대 부총장 역임, <오늘의 중국에서 올제의 한국을 본다>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등 저자] 중국 현대사 인물 3인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모택동은 산이요,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어찌하여 산인가? 또 주은래는 왜 물이고, 등소평은 왜 또 길인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더 읽기 » -
동아시아
키신저 “中 주은래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은 없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국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가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강택민(장쩌민)을 평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주은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평했다. “60여년 공직 생활에서 주은래보다도 더 강열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더 읽기 »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2) 유엔 통한(統韓)결의안과 북진명령
한국전쟁 초기 중공 및 소련과의 전면대결의 회피를 전제로 삼았던 미국은 목표를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에 둠으로써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주저해왔다. 그러나 8월 후반 낙동강 전선이 안정되고 인천상륙계획이 구체화되자 미국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9월 1일 국가안보회의 참모들은 정책건의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일 한반도에서 소련에 대하여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고 국가이익을 신장할 수 있는…
더 읽기 » -
[김국헌의 직필] 키신저, 주은래 같은 ‘지략가’ 어디 없소?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강택민을 평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특히 주은래에 대해서는 “60여년 공직생활에서 나는 주은래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그는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읽을 수 없는…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