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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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사의 재발견···’일어난 것’과 ‘기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사는 ‘일어난 것’과 ‘기록’ 두 가지로 해석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없어지면 ‘일어난 일로서의 역사’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역사철학의 기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바로 이를 노린 것이다. KBS에서 제공한 장기 기획 ‘역사 스페셜’은 역사의 지평을 넓혔다. 역사가 넓어지는 것은 몇 가지 원인에 의해서다. 첫째, 시간적 요소다. 현대는 당연히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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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독립신문 창간 서재필과 한국 진보정치 선구 서민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서재필은 1864년 전남 보성출신으로 외숙이던 참정대신 김성근(金聲根)의 집에서 공부하였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김옥균,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 활동을 했던 개화기 초기의 애국지사다. 서재필은 의사(Dr.)이지 박사(Ph. D.)가 아니다. 반면 이승만은 1904년에 도미(渡美), 1907년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은 후 1910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Ph. D.를 받았다. 서재필은 미국 여성과 결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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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홍콩시위 잘못 다뤘다간 시진핑 ‘중국몽’ 물거품 될 수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이 홍콩사태에 걱정이 크다. 홍콩 시위 주동자를 독일이 받아주었다. 이는 독일 하나만이 아니라 EU가 홍콩 사태에 개입했다는 것을 뜻한다. 옛 식민종주국 영국만의 관심이 아니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항의하지만, 유럽은 인권은 인류공동의 책임이라 나선다. 이 절체절명의 명분에 거역하다가는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는커녕, 세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영국군 육군준장(brigadier)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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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9년 홍콩시위, 1987년 6.10항쟁, 그리고 1956년 신익희 한강유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6년 해공 신익희의 한강 백사장 유세에 30만 시민이 모였다. 오늘날 2천만 수도권에 비해 당시 30만은 폭발하는 민심을 대변한 것이다. 해공은 제헌국회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국회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1955년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 후 조봉암과 장면 이후 민주당을 창당하여 1956년 야당후보로 이승만에 맞섰다. 1955년은 단기 4288년, 이른바 ‘쌍팔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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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 전두환 법정 출두···광주 출신 예비역 장군이 말하는 호남의 ‘한’과 ‘희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제 강점 하 목포는 경성, 부산, 평양, 대구, 원산 다음의 6대 도시였다. 목포상고는 부산상고나 동지상고보다는 훨씬 명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남의 젊은이라면 모두 동경하는 명문 광주일고를 연상하게 하는 전남제일고로 개칭한 것은 지나쳤다. 그보다는 디자인 고등학교나 정보고등학교로 바꿨어야 옳았다. 상무대는 대한민국 장교라면 모두 거쳐 가는 곳이다. 해공군 장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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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만-중국과 남북한, 어디가 먼저 통일될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만의 집권 국민당 명예주석 롄잔(連戰)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3차 국공합작에 가까운 논의를 벌이고 있으나, 대만 국민의 64%가 통일에 반대하며, 특히 20대는 82%가 통일에 반대한다고 한다. 최근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에 의해 손문의 동상이 끌어 내려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에게는 중국과 대만에서 다같이 국부로 존숭되는 손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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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통수권자’ 문재인 대통령과 ‘군개혁 선봉장’ 송영무 국방장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에서 조종사 출신이 아닌 항공막료장이 출현하였다. 일본이 군 운영을 인재중심으로 융통성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그런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우리는 보병, 작전이 아니면 대부대 작전을 지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많다. 비육사출신을 위한 배려 차원이 아니고서는 학군, 3사 출신은 중장·대장이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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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위기의 장군들’, ‘국방부 문민화’ 그리고 ‘정치군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책을 보았다. 책을 접하고 첫 눈에 고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장 군복에 보병 배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장군은 병과가 없다. 지금은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인 저자는 오랫동안 언론인과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근무 등으로 군과 국방문제에 누구보다도 해박하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 군사전문가’들도 군의 기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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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6·10항쟁 당시 계엄령선포 막은 민병돈 특전사령관 “쿠데타는 절대 안된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국의 마지막 계엄령은 1980년이었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해군출신이다. 중앙에서 주로 육군에 의해 이루어지는 계엄령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합참이 계엄실무편람을 계속 보완한다고 하나, 지금 군의 수뇌부 대부분은 계엄령을 겪어보지 못했다. 1970년대 유신체제로 인해 위수령과 계엄령에 무시로 동원되었던 65세 이상의 선배들이 보면 이들은 행운아다. 19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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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충일에 기억해야 할 것들···가칠봉·18연대·상록수부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동부전선의 고지전투가 혈전이었다. 이 승전이 없었다면 설악산은 우리 땅이 아니다. 설악산이 없는, 내린천이 없는 강원도가 하늘이 내린 고장이 될 것인가? 38선은 정확히 설악산의 최남단 가칠봉을 지나간다. 이 지역에 2사단 17연대가 주둔한다. 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부대다. 육군에서는 17연대가 유일하게 참전했다. 이밖에도 연대 단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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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적군·홍군·빨갱이’의 어원과 북미정상회담
트럼프 싱가포르서 레이건 될까 카터 될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해방 후 소련군이 북한에 들어왔을 당시 그들은 ‘붉은 군대’(적군)으로 불리었다. 볼세비키 혁명 후 만들어진 군대가 赤軍, 제정 러시아 군이 白軍으로 불린데서 시작된다. 붉은 군대를 건설한 최대의 공로자는 트로츠키다. 레닌 사망 후 트로츠키는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 패배하여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스탈린은 암살자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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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정변’···새해 벽두 ‘정변’이라 하니 섬뜩하겠으나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새해 아침에 정변이라고 하니 모두 가슴이 섬뜩하겠지만, 우리의 현재가 아니고 중국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1889년 청에서 서태후(西太后)가 광서제(光緖帝)를 유폐한 정변이 일어났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의 권력을 누린 태후는 셋이다. 첫째는 漢 고조를 도와 천하를 잡은 여태후다. 둘째는 唐 태종의 후궁이었으나 나중 황제에까지 올랐던 측천무후다. 세번째가 淸의 서태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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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처칠, 무술년 떠오르는 영국 상징 ‘불독’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처칠은 정치가, 군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화가였다. 그의 책 <폭풍의 한가운데> 몇 구절이다. ···초조한 가운데 나는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상의 오른쪽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내가 그토록 찾았던 서류가 안전하게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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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진핑의 중국을 읽는 키워드 2개···’전통적 우월감’과 ‘현대사 콤플렉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통적 우월감과 현대사의 깊은 피해망상이 버무려진 콤플렉스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은 유달리 배타의식이 강하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현대에 겪은 치욕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중국 역사를 통해 중국인의 心思를 잘 아는 것이 첫째다.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1842년 제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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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중국이 두려워하는 나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은(銀) 3억량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강화조약 체결을 위해 시모노세키에 온 이홍장을 일본 청년이 저격하였는데 국제적으로 물의가 일자 일본이 1억량을 감해주어 청은 2억량만 지불하였다. “이홍장의 귀가 1억량”이라는 이야기의 유래다. 일본은 이 막대한 배상금으로 삼국간섭을 주동한 러시아를 격파하기 위한 러일전쟁을 준비하였다. 1969년 중국은 아무르강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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