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은혜가 머무는 곳까지, 거기까지가 교회입니다”

출애굽기 35장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출 35:21)

이집트에서의 430년,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집트 왕국을 위해 벽돌을 빚었고, 채찍에 맞으며 성을 쌓았습니다. 강제 노동에 무슨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오직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 왔던 세월이 무려 400년이 넘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자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막은 이집트에서 그들이 만들었던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막을 만드는 일에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성막은 조그마했지만, 성막을 만드는 기쁨만큼은 컸습니다. 마음에 감동된 일을 처음으로 해 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막을 위해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를 드렸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숫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을 가져왔습니다. 다듬은 목재, 은과 놋을 내어놓았고, 여인들은 실을 뽑고 수를 놓는 일에 손을 보탰습니다(출 35:22-29). 이 모든 일이 억지가 아니었습니다. 감동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생 처음으로 기쁨으로 무언가를 드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발성과 마음의 감동으로 성막을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에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강요된 헌신으로는 하나님의 처소를 지을 수 없습니다. 억지로 지은 집은 하나님마저도 억지로 가두고 싶게 되는 감옥이 아닐까요? 의무감에 젖은 헌신을 피해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 버리신 사건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겔 10).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발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지 헌신을 강요당하거나 자원하는 연기를 배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은혜가 사라지면 교회와 성도는 자발성을 연출하게 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구원의 은혜를 일깨우는 일입니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은혜가 머무는 곳까지, 거기까지가 교회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발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지 헌신을 강요당하거나 자원하는 연기를 배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은혜가 사라지면 교회와 성도는 자발성을 연출하게 됩니다.(본문에서)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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