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가 있는 풍경] 버킷리스트
이번 생에서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허공 속으로 내 몸을 던져 그 무게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경지를 그렇게라도 경험하고 싶은 갈망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내 일흔의 나이를 기념하여 세상에서 처음으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다는 뉴질랜드 카와라우에서 협곡 속으로 흐르는 푸른 강물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줄에 매달려 허공 중으로 던져진 그 몸의 무게를 오롯이 느낄 틈새도 없이 찰나 간에 끝나고 말았다.
이런 허망함의 경험 뒤로는 이렇다고 할 버킷리스트가 따로 없었는데 큰 애를 따라 설국이라는 북해도의 동짓날 폭설로 차단된 도로 위의 버스 속에서 한나절을 온통 보내며 온 사방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그 적막 속에 침잠한 세상을 경험했다.
이것이 또한 이번 생에서 내가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던 그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랬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설렌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결국 삶의 모든 것이 몸을 가진 이번 생의 버킷리스트가 되어야 하리라. 삶의 나날을, 가고 머무는 곳에서의 모든 경험을 이번 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것으로 삼을 때, 그런 삶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생기와 신명이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 경험의 모든 순간을 감사하고 생생하게 음미 감상하며 즐기기 그것이 이번 생에서 내가 이 몸으로 경험해야 할 그 모든 것임을, 그것이 남은 생, 남은 날의 유일한 버킷리스트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