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⑨] 이스탄불로 압송돼 한국행 비행기에 몸 싣고

le-at-car
터키 군경의 손가락 암호. 이 표시는 늑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그리고 노아의 후예가 살고 있는 터키 동남부의 작은 도시 지즈레(Cizre)에는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여정 초기에 친구 박귀현군의 병세가 위중함을 접하고서 마음이 무겁다가, 귀국 후 그는 떠났다.
지난 4월 그의 49재가 윤동주 시인의 기념관 근처에 있는 서시정이라는 정자에서 고인의 친구들과 친지들이 모여 조촐하게 그를 보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외출을 하는 필자는 휴일을 맞이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그런데···예절 없는 무질서한 중년의 등산객 무리들과, 예의 없는 인파들 사이에서 도착하기도 전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지치고 말았다.
49재가 끝나고 인사동 단골식당으로 이동한 친구들이 마주 앉아 지난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자리에서도
필자는 친구들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친구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도 모두 나에게 상처가 되는듯, 난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다.
가슴은 움츠러들고 빨리 혼자 있고 싶고, 어색한 이 자리를 어서 벗어나고만 싶다. 나는 마음의 병이 들고 말았다.
이스탄불로 압송돼?한국행 항공기에 몸 싣고
우여곡절 끝에 항공 스케줄을 정리하고 내가 잡혀있던 쿠르드족 근거지에 함께 있던 터키인 메멧과 압둘라는 나를 압송하여 제일 먼저 비행기 안에 올라타 나를 창가에 앉혔다. 압송되는 나를 본 승무원들은 중범죄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뿔사! 나는 예전에 보딩하며 환대받던 그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해 얼마쯤 지나자 아름다운 반호수가 펼쳐졌다. 메멧과 압둘라에게 사진촬영을 허락받고 몇장을 스마트폰으로 담는데 압둘라가 내 행동을 저지한다. 돌아다보니 싸늘한 표정의 여승무원이 사라진 후 무슨 상황이냐고 물으니 그들은 “승무원이 스마트폰의 셔터 소리가 커 주의를 준 것”이라고 했다.?화가 치밀었다. 이착륙시도 아니고 그런 일 갖고 그렇다니? 나는 승무원을 호출했다. “무슨 문제길래?” 묻고 싶었다. 하지만 승무원은 호출에 응하지도 않는다. 압둘라가 일어나 승무원에게 가서 물으니 신경이 날카로워 답할 수 없다고 하더란다.
“뭐 이런 경우가 있지?” 내가 화가 나 사과를 요구하니
압둘라가 그녀에게 가서 다시 물었다. 답은 예상대로였다. “너무 비행 스케줄이 빡빡해 피곤해서 그랬습니다.”
압송당하여 추방당하는 날의 일정은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데~!
미안해요, 미안해요. 친구여, 내 친구들이여
이제 잠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내가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석방되던 순간부터 강제 출국당하던 시각을 정리해 <매거진N> 독자들에게 전하려 한다.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하여 메멧과 압둘라는 작은 선물을 사서 내게 주며 “좋은 기억만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지막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스탄불 출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어 비행기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던 차였다. 어디선가 밴이 서더니 차 안에서 깔끔한 차림새의 유럽인들이 내리는 게 아닌가.
그들은 각자 향수를 맡으며 밴에서 내렸다. 그들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니 ‘BBC’ ‘CNN’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아! 이들은 서방의 기자들이구나’ 직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다가가 말하려는 순간, 깔끔한 그들의 모습과 추레한 두 명의 터키 형사와 나. 너무도 대비됐다. 그
러나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친구가 생각 났다.
Processed with MOLDIV
왼쪽이 형사 메멧, 가운데가 필자, 우측이 압둘라 형사. Van 공항에서 트랩에 오르기 전
출입국사무실에?서류를 접수시키고 우린 출국장에 들어섰다. 내가 없는 동안 세상이 변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20대에 빠리에 처음 갔을 때 샹제리제 야경과, 그 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던 그때처럼···. 메멧과 압둘라는 처음으로 출국장에 와보는지 면세 코너와 술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한데 약간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난 출국시간이 남았으니 내가 한잔 산다며 그들을 바로 이끌었다. 어쩌면 터키에서의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데 한잔 술이 필요치 않겠는가? 모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젊은 터키여성 매니저를 따라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하는데, 예상대로 메멧과 압둘라는 술을 안 하는 무슬림이기에 알코올이 섞이지 않은 음료를 대접했다.
난 버번 트리플을 주문했다. 생각이고 뭐고 할 거 없이 술이 테이블에 이르자 난 원샷에 들이킨다.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이 타는 맛~!? 더블로 한잔 더 주문하고 터키인들과 마지막을 보낸다. 갑자기 아름다운 매니저가 다가와 우리의 기이한(?)동행을 메멧과 압둘라에게 물어본다. 메멧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는 이내 나에게 “We are sorry about you!”라고 말한다.
나는 “···”. 이게 그녀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통곡을 했다. 눈물 흘리는 그녀와 포옹을 하고, 내 친구 메멧과 압둘라와 이별의 포옹을 했다. 십수년간 처음에는 순수성 대신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 땅에 스무번 넘게 찾아와 마음을 전했던 지난 순간들, 사재를 다 털었으니 부족한 것은 내 지인들이 어렵사리 보태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와 이 분쟁지역을 오고 싶어 몇 번이고 같이 하자던,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박귀현군! 전쟁의 참혹함을 목도하고 포로로 잡혀 고문과 감금, 죽음의 문턱에서 무서워 떨며 눈물 흘리던 순간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훗날에도 기억되지 않고, 철저하게 마이너리티로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하는 남은 인생들.
하지만 “됐다!” 그녀는 무슨 이유일까. 우리에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 말만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할 말, 더 뭐가 있을까?
“미안해요!”
자가 쿠르드지역 취재 직후 숨진 친구 박귀현을 추모하며 만든 손수건. 그가 오늘 너무 그립다.
내 친구 박귀현은 사진을 잘 찍었다. 언젠가 연출하는 권호웅(왼쪽)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그가 찍어줬다. 가슴에 간직할 거다.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의 쿠르드지역 르포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내년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의 소식을 현지에서 보내드릴 겁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아시아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One comment

Leave a Reply to Beophyeon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