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 40년 은사님 소설 ‘등대’ 안 읽었으면…”
스승은 제자를 강의로만 깨우는 것이 아니다. 너털웃음으로도, 헛기침으로도 걸어가는 뒷모습으로도 몽매한 제자를 깨운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제자만이 깨어난다. 나는 김민환 교수님에게 들을 귀가 없는 제자였다. 그래서 소설 등대를 읽으며, 나같은 몽매한 제자조차도 알아들을 수 밖에 없이 쓰신 인자와 자비를 느꼈다.
몇달 전에 교수님께서 장자에 나오는 聽之以氣(청지이기)라는 글씨를 손수 써서 편지봉투에 담아 보내주셨다.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글씨까지 써서 경청을 일러주시는데도, 못미더워서 기어이 소설까지 써서 몽매한 제자를 깨우시는구나. 소설 등대를 읽으니, 마치 내게 보낸 스승의 편지를 읽은 기분이다.
등대를 읽으며 가슴 설레고, 흥분하고, 분노하고, 웃고, 가슴 조리다가 마침내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해변가에 당도하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책장을 덮는 순간 이 우매한 제자조차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은 처음 소설 <등대>를 보곤, 무슨 소설 제목이 ‘등대’냐. 촌스럽게. 더구나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세 번째 소설을 내신지 얼마 되지않아, 또 소설을 내셨다길래, 대학때부터 하늘 같은 은사님에게 시건방지게 깝쳤던 싸가지없던 제자답게, ‘우리 선생님이 지난번 소설로 큰 문학상을 2개나 받더니, 연세도 80도 넘으신 분이 필받아서 이제 막 대충 써서 내시는구나’라고 넘겨짚었다. 요즘 시간도 없는데, 이번 소설은 안읽고 좀 넘어가고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런데 작년 보길도 자택에 갔을 때, 사모님이 차려준 시골밥상과 전복죽이 낚시줄마냥 목에 걸려있어, 빚을 갚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책을 들었다.
그런데 ‘등대’를 안 읽었으면 어쩔 뻔했을 것인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 연애소설 뺨치는 남녀간의 스릴넘치는 묘사엔 ‘우리 교수님을 누가 말리랴’. 결코 청출어람하지못할 그 실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2010년 정년퇴임하고 남도의 먼 섬 보길도에 정착한 김민환 교수님을 1년전 찾아뵈었다. 김교수님 댁을 방문하기 전날 보길도 교수님 댁과는 섬 반대편에 있는 예송리해수욕장 앞 마을에서 민박을 했다. 보길도에 간 것도, 예송리를 찾은 것도 거의 40년만이었다. 김민환 교수님은 5.18의 진앙지인 전남대에서 늘 최류탄가스에 휩싸여 눈물 콧물 흘리며 눈은 충혈돼있던 어린 제자들을 주말마다 산과 섬으로 끌고 다니셨다. 무등산, 월출산, 조계산, 강천산에서 분기탱천의 틈새에 호연지기가 스며들게 했다. 그때 보길도에도 두 번이나 갔다. 선생님의 고향도 아닌 보길도에 그 때부터 남다른 애정을 보이시며, 정년 퇴임하면 보길도에 와서 사시겠다고 하셨지만, 우리 선생님처럼 잘 나시고 야하시기까지 하신분이 뭣이 어째서 이 섬구석에 살 것이냐며 의구심을 거두지않았다.
선생님은 전남대 신문방송학과에서 11년을 나같은 멍충이를 데리고 산과 섬을 누비시다가 모교인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로 옮기셔서,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고려대 교수협의회장, 한국언론학회장, 네이버 자문위원장 등을 하시더니, 2010년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정말로 보길도에서도 구석진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셨다.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살면서 소설을 쓴다더니, 과연 그곳에 살면서 15년간 네편의 주옥같은 소설을 내셨다.
그 스승을 따라 묵었던 보길도 예송리 민박집에서 새벽산책길을 나서 해변가를 걷다가 바다 건너에 손에 잡힐듯한 섬 소안도를 유심히 보았다. 선생님이 사시는 보길도에 가려면 완도나 해남에서 배를 타고 40~50분 가서 노화도에 내리는데, 노화도와 보길도는 이젠 연륙교로 연결되어 한섬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제 곧 소안도의 연륙교까지 개통하면 소안도까지 연결된다.
그 소안도가 소설 등대의 배경이다. 1909년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일어난 ‘등대습격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를 삼키고 중국 대륙까지 삼키기위한 군함 함선들의 길을 밝혀주기위해 일제가 세운 등대를 깨부수다 죽은 이준화란 실존인물이 주도한 사건에 서진화와 일본인 마유키 등을 등장시켜 소설화한 것이다.
16년 전 신문사가 경영상의 위기로 인해 3개월씩 휴가를 쓸수 있도록 해주었을 때, 신안의 섬들을 혼자 순례한 적이 있다. 디제이가 태어나 자란 하의도를 비롯한 섬들이 하의장삼비금도초로 묶여 불리며 입에 맴돌았기에 그런 섬들을 다녔다. 김민환 교수님을 따라 대학 1년 때 섬이란 곳을 처음 가본게 인연이 되어 언젠가는 섬들을 더 다녀보고 싶었던 듯하다. 자은도였던가. 암자가 있어서 들어가봤더니, 스님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초라한 암자에 족히 백년은 넘었음직한 고서적들이 수십권이 꼿혀있었다.
“아니 이런 섬구석에 저런 한문을 읽을만한 분이 스님 말고 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런 섬구석에 무슨 지식인들이 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랬더니 스님이 “이 냥반이 통 뭘 모르시네. 저기 배추밭에서 풀매는 할매들도 여그선 천자문 정도는 아요”라는 것이다. ‘옛날에 한양에서도 제일 똑똑하고 야무지고, 기개있는 냥반들이 내려온게 섬들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시대 기레기가 아니라 정론직필을 휘두르거나 직언을 하다 찍혀 역적으로 몰리거나 밉보인 의인들의 귀양살이 1번지가 바로 남도의 섬들이니,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다. 평생 책과 글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 섬에 귀양내려와선들 하릴없이 물고기나 낚고 있었겠는가. 이곳에서도 서당을 열어 가르쳤으니, 섬사람들의 수준이 뭍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영판 다르다는 것이었다. 유식한 섬소년 디제이가 하늘에서 솟구친 게 아니라 그런 섬의 지적풍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최고의 지식인이나 시인 윤선도가 귀양와 살며 어부사시사를 읊은 곳도 보길도다.
100여년 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병사들이 궁벽한 섬의 초가집에까지 서책들이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의아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치도 종교도 오직 한곳에서만 권력과 지식이 나오는 딴나라들과 영판 다르게 시골 마을마다 섬마다 서당이 있고, 현자가 있어서 놀라온 지성을 발했던 이 나라의 모습을 그들이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의 변화가 늘 변방에서 시작되고, 딴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의병이 산골과 섬에서 일어나 저항의 횃불을 올리는지는 그 점을 도외시하고선 알길이 없다.
소설 등대에서 소안도엔 마을마다 서당이 있고, 현자인 훈장이 있다. 소중화사상을 신주단지처럼 숭배하던 훈장들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에 의해 깨어나면서, 우리 민족이 가장 어두었던 시대를 어떻게 고뇌하고 살았는지를 밝힌 불빛으로 조명해준 게 등대다.
김민환 교수님은 독립신문을 비롯한 구한말 민족 계몽지들을 전공한 분이다. 더구나 50년전부터 보길도 등 섬을 다니며 섬지역과 어부들과 함께 해왔다. 그러니 못된 망아지같은 제자가 넘겨짚듯 대충 써낸 게 아니다. 구한말 시대상뿐 아니라 섬지역의 삶과 노랫말, 민속, 고기잡이, 풍속 등의 세세한 묘사는 평생에 걸친 교수님의 삶의 연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100세가 가까우신 어머니로부터 늘 일제 때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어머니는 “아버지는 연동(광주광역시 광산구 옛 임곡면 연동)에서 서당을 하셨고, 외할아버지는 등림(어등산 기슭 광주여대 뒷 마을)에서 크게 서당을 하셨는데, 삼촌이 연동에 오시면 처남 매부지간에 온종일 글장난을 하고 놀았다”고 했다. 가갸거겨 외엔 무학에 15살에 시집을 오셨으니, 어린시절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붓으로 시와 글을 나누는 모습을 글장난이라고밖에 말씀하지 못하니, 더는 그들의 세계를 알길이 없었다. 그런데 소설 등대에서 당대 훈장들이 어떻게 교유하고, 무엇을 고뇌하고, 아파했는지 어머니의 추억담과 글장난으로는 풀리지 않던 그 시절 그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 <등대>에서 그린 우리나라는 100년만에 식민지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음했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고래등 싸움에 또 언제든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신냉전을 맞는 강대국들의 충돌 국면에서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는 이 때 어떤 외풍에도 모든 판단의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소설 등대가 그 길을 밝혀주고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지도자들과 국회의원과 언론인들이 등대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등대가 말해주듯 모든 지성과 행동의 중심이 중앙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 처처산골 도서지역이었던 만큼 국민 각자가 등대를 읽고 등대를 밝히는 게 먼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은사님은 정론직필만 날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등대를 읽다보면 어느 연애소설보다 간지나는 재미가 덤으로 주어진다. 이 무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바닷바람이 저기 남도에서 소설 <등대>를 타고 불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