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난중일기] ‘이순신보유국’의 저출산과 자살률, 그리고 ‘금모으기 운동사史’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인 이듬해 1월 8일 금모으기운동에 나선 국민들 모습. 


“애민정신·사회적 온기로 국난 극복을”

경남 고성에는 ‘속싯개’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이 왜(倭)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당항포 인근에 있다. 기생 월이가 지도에 그린 거짓 뱃길에 왜군이 감쪽같이 속은 구전(口傳)의 배경이 된 곳이다. 왜군은 있지도 않은 뱃길을 활용코자 당항포로 숨어들었다가 퇴로를 차단당한다. 당항포 해전에 앞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여 51척으로 구성된 대형 함대의 지휘권을 거머쥔다. 이 함대가 기생 월이에게 속아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왜군을 거침없이 격침한 것이다.

한편, 아비규환 가운데에서도 이순신은 적(敵)선 26척 가운데 한 척을 남겨둔다. 뭍으로 도망친 왜군이 조선 백성을 해할 우려에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이튿날 남겨진 한 척에 도망갔던 왜군들이 올라타 당항포 이탈을 시도했다. 당연히 조선 수군은 이를 완벽히 격침해 당항포 해전을 마무리한다.

당항포 해전에 관한 <난중일기> 따르면 원균은 적의 수급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었다고 한다. 수급 하나가 쌀 몇 가마니에 해당하는 포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순신은 전과보다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하였다. 그러하기에 생지옥과 같은 전장에서 적의 퇴로까지도 계산한 것이다. 애민(愛民), 위기 상황에서 발현되는 이순신의 이러한 성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당항포 해전 외에도 이순신은 피난민의 구호를 위해 둔전을 설치한다. 아울러 피난민 행렬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한편, 임금 선조는 왜군이 육지에서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한성을 버리고 의주로 파천한다. 심지어 파천길에서는 왜군의 추격을 막고자 민가를 불태우고, 다리를 끊어 백성들의 피난길마저 막아버린다. 선조의 처신을 놓고보면 이순신은 따뜻한 애민 활동으로 나라가 하지 못한 바를 대신한 것이다.

?시선을 오늘날로 돌려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이라는 심각한 생사(生死)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 한계가 있어 그 옛날 이순신의 애민정신을 본받아 온 나라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 이 문제는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불균형’을 초래하기에 연금, 노동, 국방 등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시기에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가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시기에 소멸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즉, 작금의 현실이 국난(國難) 그 자체인 셈이다. 대다수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를 불과 수십 년에 이룬 성공 신화의 이면에 드리운 상처는 아닐까?

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작년에는 0.72명까지 떨어졌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대체출산율(2.10명)까지의 회복은 바랄 수도 없는 지경이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부 차원의 전담 부처와 대통령실에 전담 부서까지 신설하려 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과 부산의 합계출산율이 각각 0.55명, 0.66명까지 곤두박질쳤다.

자살률 또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지난 3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수가 약 3만9천 명에 달한다. 인구 10만 명에 약 2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OECD 가입국 평균의 2.4배에 달하는 수준이며, 같은 기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숨진 자의 수(약 3만2천 명)보다 더 많은 수치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회적 문제에 비해 정부 차원의 지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에 비하면 자살 예방에 투입되는 사상자 대비 정부예산과 전담 인력이 턱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과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숱한 정책과 제도들이 각 개인과 가정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온기를 채우기 위해 정부가 아닌 누군가가 힘을 보태야 한다.

낮은 출산율과 연결되는 상징적 표현이 ‘헬조선’이다. 작금의 시대 상황에서는 자녀를 낳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부모와 같은 힘든 삶을 물려주기 싫은 것이다. 기계적 정책과 제도로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차가워진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살 방지에 있어 가장 큰 한계는 자살 위험군에 속한 자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함께 손을 잡아줄 가족과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산업화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부 차원의 공익적 역할에 가족과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따스한 손길을 보태는 민간의 역할이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민간 차원에서의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개인, 기업,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 민간 단체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재원을 모아야 한다. 모인 재원을 토대로 사회단체를 세우고, 국가와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협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중심으로 저출산과 자살이라는 국가적 아픔을 가족과 이웃이 함께 극복해 나가는 따뜻하고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분명 이는 우리 공동체를 산업화 이전의 온기 있는 사회로 되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의 가장 잘하는 것은 ‘국난 극복’이 아니던가? 1907년 일본이 대한제국에 제공한 차관 1,300만원에 대한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 등은 국가가 아닌 국민이 나라의 빚 상환을 주도한 것이다. 우리는 누란의 위기에서 유독 의(義)병, 승(僧)병, 학(學)병 등이 분연히 일어난 민족이다.

국가적 중대 현안인 출산 장려와 자살 예방에서도 이순신의 애민 활동처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민간단체에서 채워준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살기 좋은 따뜻한 나라가 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모아 공동체가 함께 아픔을 치유해 간다면, 헬조선이라는 자학적 허무주의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살만한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마음과 노력을 모아 저출산과 자살이라는 국난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

“유럽인들이 나랏빚을 갚는 데 쓰라고 자신의 결혼반지를 내놓기 위해 줄을 설 수 있을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은 그렇게 했다.” (2010년 5월 14일자영국 <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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