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브라운대 유학생의 ‘마음 치유기’
필자에게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김정근 저, 다우출판, 2023년 4월 21일 초판인쇄)가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3일이었다. 제목과 머리말, 추천글 정도만 훑어보고 ‘이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으리라’ 하고 일단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열흘 지난 5월 13일 고려인마을이 있는 경기도 화성 병점과 발안을 오가는 전철에서 #1.‘설렘보다 깊은 어둠’에서 #10.‘경계선이 우리를 배신할 때’까지 전체 분량의 4분의 1을 읽었다.
그리고 16일 오후 나머지를 완독했다. 글이 진솔하고, 자기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또 단어선택이 적확한데다 미문이 곳곳에서 나타나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문장과 단어가 적확하게 활용돼 술술 읽혔다. 특히 10여개의 용어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어 맘에 들었다.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 완독 후 지인과 책에 대해 얘기하다 의견 일치를 보았다. “우리가 20대에 이런 책을 읽었다면 방황과 갈등의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우리 어른들도 젊은이들의 마음에 좀더 귀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펴낸 다우출판이 정성들여 만든 소개글을 <아시아엔> 독자들과 공유한다. <편집자>
“그건 여러 얼굴을 한 불안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가슴속 구덩이가 언제 어떻게 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불안. 병든 닭 같은 과거 내 모습이 어쩌다 튀어나와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 어쩌면 여기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잠식해 가고,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로 치환되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심화된 경쟁에 내몰린 채 하루하루를 버텨 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심리는 과연 안녕할까.
특히 코로나19, 경제적 빈곤과 양극화, 학폭 경험 등의 트라우마를 겪은 요즘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여기고 있다. 세대 갈등이 사회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세대 간 ‘심리 격차’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정부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19~34살 청년 1만5천명 중 최근 1년 동안 33.9%가 번아웃 경험이 있으며 우울증상 유병률은 6.1%(남 4.9%, 여 7.5%)에 달하는 등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다행이라면 이런 정신적 문제를 ‘우울증’ ‘공황장애’ ADHD’ 등 세분화하여 치료하고 있으며, 청년들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MZ세대 10명 중 7명이 스스로 “정신건강 관리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그 중 ‘인격장애’는 아직 대중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정신병증이다. 오래 전 20세 남성 44.7%가 인격장애 증상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화제의 뉴스가 되었으나(2006년, 서울대 의대 권도운 교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발병 반도가 높아져 정신의학계의 주목을 받는 이상 심리이기도 하다.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경계성 인격장애라고도 하며, ‘애착 능력 결함과 중요한 대상과의 분리(separation)시의 부적응 행동을 말한다. 이는 패턴, 감정의 불안정성이 중심이 되는 인격장애’로, 평생 유병률이 1~1.5%나 될 정도로 의존성 인격장애와 함께 임상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인격장애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 충동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 반복적인 자해와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위험한 병증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본인은 물론 가족도 ‘이해 못할 사람’ ‘괴팍한 성격’으로만 여겨 치료를 못 받고 평생 본인과 주변에 괴로움을 주는 병증이다.
아이비리그 합격 후 찾아온 마음 고통··심리치료사를 찾아가다
여기 한 젊은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대학교에 진학한, 남부러울 것이 없을 듯한 청년. 그러나 예민하고 섬세한 그에게는 차마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 있었다. 바로 학창 시절부터 줄곧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 ‘공허’였다. 그토록 꿈꾸던 명문학교에 다니면서도 가슴속 공허가 채워지지 않았고, 남들에게 온전히 이해받거나 소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를 소외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끝 모를 공허와 까마득한 낭떠러지와도 같은 불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지닌 채 널뛰기하는 감정, 마음속 구덩이와의 오랜 싸움을 해 나간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을, 때로는 주위 사람들을,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대학 생활도 점점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실존주의 심리치료학’을 접하고, 고민하고 있던 많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계선 성격장애에 가깝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차갑고 낯선 병명이 나와 나의 내면을 과연 얼마나 설명하고, 반영해줄 수 있을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저항하고, 뾰족하게 날 선 마음과 말들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다시 익숙한 방황의 늪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끝 없는 터널 같은, 영원할 듯한 어둠 속에서 고통스러운 감정과 싸우면서도 저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추하고, 직시하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특히 심리치료사인 브레넌 씨와의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되돌아보게 되고, 마치 거울처럼 조용히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브레넌 씨의 모습을 통해 서서히 자기 자신과, 또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또 학교 안팎에서 만난 진실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성장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단단한 자기를 되찾고, 타인의 존재를 긍정하며 세상 밖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도 자신을 지켜 가고 있는 당신에게
우리 사회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살피는 일에는 소홀하다. 그래서인지 종종 우리는 자기 마음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이리저리 표류하게 된다. 여기에는 때로 ‘방황’이라는 이름표가, 때로는 ‘공황’이라는 병명이 꼬리표로 붙는다.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둠 속에 홀로 갇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 불안과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급격히 증가한 현실도 우리 사회의 한 징후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자신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마음이며, 마음이 이끄는 길을 무시한다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라는 중심 없이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의 어둠을 밝혀줄 거울이 되려는 예민한 영혼의 성장일기
이 책은 힘겹게 자신을 다시 찾아가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를 만나는 그 치열한 여정을 담은 한 청년의 분투기다. 저자의 심리치료 에세이인 동시에 한 편의 성장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상담사 브레넌 씨가 자신에게 그랬듯, 이 순간에도 힘겹게 내면의 싸움을 해 나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거울이 되겠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헤쳐 나갈 용기,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용기,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도움을 받았듯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용기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준다면 그것은 작지만 소중한 등불이 되어, 각자가 숨기고 있는 내면의 어둠을 비로소 환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저자의 바람처럼, 지금도 자신의 내면과 하루하루 힘겹게 싸우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거울이 되고 다시 시작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난다”라는 칼 융의 말처럼, 그렇게 얻게 된 용기로 자신의 내면을 또렷이 들여다보며 긴 방황에서 깨어나 조금 더 단단하고 건강한 자기를 다시 만나고,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천글
내 생각에 너도 분명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너처럼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는 게 그 증거야. 누구나 자기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모두가 너처럼 용기를 내서 그걸 마주하는 건 아니거든.― 캐럴 코헨(Carol Cohen, 브라운대 학장)
심리치료사란 고객이 가하는 공격을 다 받아 내는 방탄 갑옷 같은 존재야. 아무리 힘들어도,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고민하고 그게 어떤 아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직시하면서 짜증이 아니라 공감을 나누는 역할인 거야.―윌리엄 브레넌(William Brennan, LMHC 정신건강상담사)
사람은 누구나 공허와 허무, 외로움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깊이와 정도가 다를 뿐, 저마다 살면서 삶의 두려움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런 깊고 어두운 질곡의 늪을 용감하고 진솔하게 헤쳐 나와 이제는 남의 거울이 되고 싶어 하는 저자의 용기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교정에서 홀로 사색하는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 모습이 떠오르며, 그 어려운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저자의 마음에서 공존의 의미까지 더해 깊은 감동을 느낀다.―한만위(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지은이 김정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미국 브라운대에 진학했지만, 내면의 공허와 자기혐오,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심리치료학과 실존철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영화 <굿 윌 헌팅>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분) 같은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으며 서서히 치유해 간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전공을 바꿔 정신건강상담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헤로인중독 치료센터에서 전문 상담사로 근무했다. 자신처럼 마음의 문제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직시하고 세상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고자 이 책을 썼다.
책 속에서
그건 여러 얼굴을 한 불안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가슴속 구덩이가 언제 어떻게 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불안. 병든 닭 같은 과거 내 모습이 어쩌다 튀어나와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 어쩌면 여기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21쪽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였다. 내가 그들을 멀리했는지, 그들이 나를 멀리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오로지 싸늘한 어둠과 적막만이 나를 에워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서서히 빈속에 스며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자기기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속 구덩이가 히죽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봐, 내가 뭐랬어? 진실은 내가 텅 빈 껍데기라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공허를 품고 사는 껍데기였다. 이제 내게 너무 작아져 버린 가면을 벗어 내려놓았다.-24쪽
나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다. 내 의식에 도사리는 이 텅 빈 어둠을, 그 실체를 파헤치고 싶다.-33쪽
외로움은 어느덧 일상이었다. 인간관계가 색채라면, 내 일상은 칙칙한 회색조로 채색되어 있었다. 빛깔이 시들어 버린 세계, 잿빛 그림자만 유령처럼 넘실거리는 세계는 굳이 입에 담을 만한 것을 찾기 힘들었다. 지독한 똑같음, 지겨움뿐이었므로. 그 세계를 한 조각 입에 담을라치면 입안까지 탁하게 물들어 버릴 것 같았다.-72쪽
-웃고 떠드는 무리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만 왜 이럴까? 나는 영원히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고통받을 운명일까? -72쪽
어쩌면 그동안 치러 온 방황의 시간이 내 마음에 자양분이 된 게 아닐까. 내 마음에 고인 어둠을 통해 타인의 어둠을 온전히 알아보고 공명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그건 가능성만으로도 눈물겹도록 커다란 위안이었다.-126쪽
경계선 성격장애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불안정한 심리, 행동, 관계를 야기합니다. 주로 청소년기나 이른 성년기에 발병합니다. … 경계성을 진단받으려면 다음 중 최소 5개의 사항을 충족해야 합니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불안정한 관계. 불안정한 자아상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어려움, …, 잦은 무가치감이나 슬픔, 분노 조절 문제.-204~205쪽
음,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 마음고생하는 줄 전혀 몰랐네. 엄마가 나쁜 엄마야. 엄마는 그래도 아들이 이렇게 힘든 게 있으면 있다고 얘기해 줘서 너무 다행이야. 혼자 가슴에 담아 두면 너무너무 크고 심각하게 느껴지는 일도 남한테 얘기하면 조금 가벼워지기도 하잖아. 엄마도 우리 아들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해 볼게.-267쪽
모든 게 명확해졌다. 브레넌 씨가 정확히 어떻게 날 치유해 주었는지. 정확히 어떻게 내가 끝 모를 불안감에 떨던 부서진 영혼에서 자신의 불안감을 어루만질 수 있는 부서진 영혼으로 진화하도록 도와주었는지. 심리치료사의 역할은 바로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자비심으로 가득한 흔들림 없는 진실한 거울이.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