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시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사진 배일동 명창

스승인 강도근 명창께서는 어떤 대목에서는 똑같은 소리라도 세 번을 다른 시김새로 가르쳐주셨는데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꾀하다 보면, 결국 자신에게 맞는 성음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경지는 독공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니, 반드시 독공 과정을 가져야만 된다고 일러주셨다.

예술의 최고 경지는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백척간두에 홀로 서 있는 듯 간절한 공부에 임했을 때 불현듯 오는 것이다. 그 느낌을 어찌 말과 글로 표현하겠는가! 불립문자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마냥 스승의 찌꺼기를 붙들고 씨름할 새가 없다. 목을 빼어 사방을 둘러보지만 파도 소리만 들려올 뿐 숲은 어두웠고 새소리는 구슬펐다는 백아의 그 심경까지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깊은 공부는 주위를 의지하고 돌아볼 겨를이 없다. 바로 대상의 즉물로 곧장 들어가야 득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하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말라 하고, 조사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죽자 사자 스승을 닮으려 하고 의지해서는 평생 스승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찌꺼기만 뒤적거리다가 말 뿐이다.

스승도 제자를 진리의 길로 일찍이 인도해주어야 한다. 스승이 자식 기르듯 제자를 자상하게 보살피는 일은 3년이면 충분하다. 성련이나 강도근 명창처럼 제자들이 더 큰 경계를 모범 삼아 공부할 수 있도록 허심탄회하게 보내줘야 한다. 그곳에 진짜 스승이 있으니 말이다. 당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가 지은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라는 시가 떠오른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선생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지금 이 산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름이 깊어 어딘지는 모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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