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의 시선] “삶을 향한 참새의 몸부림에 내 맘도 흔들렸다”

 8일 대구 대원고에서 특강 도중 20년 전 서울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갈증을 푸는 참새를 찍던 일을 회상하는 필자.

벚꽃이 분분히 휘날리던 2003년 봄날, 서울 대학로에서 힘겹게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데드라인(언론사에서 마감시간을 사선을 넘는 듯 피가 마른다 하다 하여 이렇게 표현한다)은 점점 다가오는데, 데모행진에 막혀 광화문에서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차에서 내려 서대문에 있는 회사까지 부지런히 걸어보지만 북적이는 거리에서 사람들 어깨만 부딪힐 뿐이었다. 뛰어도 보았지만 이미 마감시간(필름을 쓰던 시절이라 회사에서 마감을 해야 했다)은 물 건너 간 상태였다. 맥이 탁 풀리며 근처 공원을 찾아들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그 얼마 전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어두운 지하철 안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한 끔찍한 대구지하철 화재사고가 있었다. 그 얼마 뒤엔 잇단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화재 등으로 많은 목숨이 무참히도 스러져갔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건데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일에 치여 사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갈길만 바쁘게 갈 뿐이었다. 일이 많아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넓어질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끄고 경희궁터 주변을 터벅터벅 걸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니 뭉게구름만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공원 한쪽에 참새 다섯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멀거니 앉아서 이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신나게 놀던 참새 한 마리가 목이 마른지 수돗가를 기웃거렸다. 수도꼭지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 참새가 귀여워서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방울아, 제발 떨어져다오!’

살다보면 종종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꼭꼭 잠겨 있던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고, 참새는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을 마셨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참새의 동작 하나 하나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빨려 들어왔다. 그 여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갈증’

목이 마르다는 것은 삶을 향한 몸부림이 아닌가!’
그 순간,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침묵하던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한낱 참새란 대상이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참새의 삶을 향한 강렬한 몸부림에 나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들도 삶을 향한 강한 열망이 있고 나름 소중한 일생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새의 삶이나 우리네 삶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 깊이 날아든 참새는 도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던 뭇 생명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하였다. 저들도 우리처럼 목이 마르고 저들도 우리처럼 갈증을 느끼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즉 ‘마음의 눈’을 갖게 되면서 바닥까지 내려갔던 삶의 에너지도 급속 충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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