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후배 있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손병희 이육사문학관 관장

이육사문학관

무릇 선배와 후배는 무엇인가? 삶의 도정이나 학교동문 모임, 혹은 여러 조직체에서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그냥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선배와 후배를 단순히 나누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존경심, 사랑, 각별한 우의가 조건이 된다.

말하자면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에서 자기보다 한층 앞서거나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선배란 호칭을 듣는 그 호칭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선배로서의 기본되는 도리나 책임, 혹은 마땅한 응분의 역할이 뒤따른다.

선배가 선배로서의 기본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후배들에게 이 호칭을 듣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사랑과 우정으로 후배들을 껴안고 다독이며 술과 밥도 자주 사는 기회가 잦아야 한다. 후배 또한 선배에게 대한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후배의 존재가 늘 든든한 믿음으로 작용한다면 그 얼마나 흐뭇한 기쁨일 것인가?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이런저런 모임에도 더러 어울렸지만 가만히 헤아려보니 듬직한 후배가 떠오르질 않는다. 따르던 후배들 중에도 높은 관리가 되거나 자본가로 변신하게 되면 저절로 멀어졌다. 신뢰를 저버리고 등지는 경우도 흔했다. 대개는 그의 결격으로 모자란 품성 때문이다.

자주 만나진 않아도 늘 든든한 후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존재는 가히 일당백이다.
어쩌다 전화해도 마음이 환해지면서 반갑고 진심으로 반색하며 정이 뚝뚝 뜯는 아우를 소개한다.

손병희 시인

경북 문경 출생으로 경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마친 뒤 안동대학교 국문과에서 정년을 한 손병희 교수. 한글 이름이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와 같다.

하지만 그의 감성은 섬세하고 온유하다. 현재 안동의 육사문학관 관장직에 있다.
안동지역에서 조영일 시인의 뒤를 이어 제2대 관장으로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6년 <심상>지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봄바람’ 등이 있다.
시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내 속살 부풀어/ 옷고름 풀고 승천하는 날/ 하늘 가득/ 붓꽃들 피어 있으리/ 노오란 어질머리 식혀주는/ 푸른 보랏빛 속눈썹 하나/ 언제까지나/ 일렁이며 날고 있으리’

손남천(孫南天)이란 필명으로 등단해서 시작품도 다수 발표했던 깔끔한 시인이다. 대구 TBC가 주관하는 육사시문학상 운영위원으로 1년에 한 번은 꼭 만나곤 했다.

아끼는 후배 손병희가 지난 1980년대, 내가 청주 충북대 교수로 일할 때 일부러 나를 만나려고 직접 청주까지 온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공군간부후보생으로 임관되어 공군 장교복장을 하고 왔다. 날씬한 몸매에 반듯한 장교복이 잘 어울렸다.

우리는 1박2일을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지난 학창시절의 추억담을 얘기했다. 너무 멋진 신랑감이라 곧바로 중매를 들었지만 그 일만큼은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후배는 결혼이 꽤 늦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대학 동문으로 동일한 한국현대시 전공, 후배의 모든 일이 잘 펴나가길 속으로 바랐다.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 후배도 나도 모두 정년을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었다.

꼭 자주 만나고 진한 교류는 없다 할지라도 늘 서로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그런 아끼는 후배가 있어서 행복하다.


李東洵 선생님께

뜻밖의,
그러나 반가운 소식을 어제야 알았습니다.
어제 저녁을 먹으려고 간 식당에서
매일신문에 실린 선배님의 글과 사진,
그리고 사진 밑의 영남대
부교수라고 적힌 소개를 읽었습니다.
대구에 늘 돌아오시고 싶어 하셨는데
마침내 뜻을 이루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에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막 이사를 하시고 여러가지로
바쁘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이삿짐이 정리가 되고 조금 한가해지시면
댁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구에 오셨다니 곧 가서 찾아뵙고 싶으나
선생님께 오히려 성가실 듯하여
적당한 시간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혹 안동에 연락하실 일이 있으시면
××××번으로 전화주시면 됩니다.
청주는 늘 먼 곳이라는 생각으로 뵙기 힘들었으나
이제 대구에 오셨으니 자주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나시는대로 거처 일러 주시기를 바라며
가까이서 많이 지도해주시기를 빕니다.
선배님의 대구 귀환을 기뻐하며
간단히 줄입니다.

1990년 3원 4일

손 병 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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