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 출신 러시아 격투기 ‘삼보’ 국가대표 신재용씨
‘유도 신동’서 ‘삼보 신예’ 변신···“로스쿨 거쳐 체육행정가 목표”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삼보를 알고 나서 잊었던 운동선수의 꿈을 다시 불태우게 됐습니다. 유도로 따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겁니다.”
‘유도 신동’에서 ‘삼보 신예’로 변신한 서울대 재학생이 화제다. 다섯 살에 유도를 시작해 대학입학 무렵 유도로, 졸업반에 러시아 격투기인 삼보로 전향해 또 한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서울대 제60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진짜 운동권’ 총학생회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신재용 삼보 국가대표 선수(서울대 체육학과) 이야기다.
작년 11월 10일 신재용 선수는 청주 세계삼보선수권대회 -52kg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대표팀에겐 유일한 메달이자 아직 세계랭킹도 없는 1년차 선수가 랭킹 1위를 꺾은 쾌거다. 기쁨도 잠시, 다시 훈련에 들어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인터뷰했다. 삼보의 매력을 묻자 “다이나믹함”이라고 했다.
“삼보는 주짓수, 유도, 레슬링 등 격투기의 다양한 기술을 허용해요. 유도는 최근 많은 기술을 제한하고 있어서 제 장기인 ‘다리 잡아 어깨로 메치기’를 쓸 수 없어요. 삼보에선 가능하죠. 유도의 꺾기가 ‘팔 가로누워 꺾기’만 가능하다면 삼보는 어깨나 손목, 고관절도 꺾을 수 있고요. 그만큼 경우의 수가 많고 예측불허라 재밌습니다. 배울 게 많은 점도 좋았고요.”
러시아 국기인 삼보는 국내에선 활성화된 지 20년밖에 안 돼 생소하지만 러시아어권에서 인기 절정의 스포츠다. 푸틴과 표도르가 했던 운동으로도 잘 알려졌다. 유도나 레슬링과 비슷한 점이 많아 금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신재용 선수는 우연히 삼보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를 본 후 자신의 이점과 종목 특성을 금방 캐치해 전향을 택했다.
삼보를 하게 된 것은 금메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기도 했다. 유도 명문고인 원광고 시절 청소년 유도 국가대표 후보로 선발돼 국제대회와 전국체전 우승을 휩쓸었다. 고3 때는 체코 국제청소년유도대회와 대만 아시아유소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서울대 1학년 땐 체코 국제청소년유도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따왔다. 자랑스러운 결과지만 스스로 아쉬움도 남았을 터.
“2018년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고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는 준회원보다 낮은 인정종목 단계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 정식 지원을 받아 훈련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학교 체육관에서 학우들과 일반인을 상대로 무료로 삼보를 가르쳐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삼보연맹 소유 체육관에서 일반인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처음 두 명에서 여덟 명으로 늘었어요. 삼보의 매력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그는 카자흐스탄 국제대회를 앞두고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체중관리에 돌입한 상태였다. 청소년 시절 유도에서 -55kg 체급으로 뛰었는데 삼보에선 -52kg로 체급을 낮춰 출전하고 있다. 평소 몸무게인 60kg에서 8kg 감량한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하루에 최대 500ml의 물만 마실 수 있다”며 음료 대신 생수를 정확히 양을 재어 마셨다.
“총학생회장 시절 성폭력 교수 처벌을 요구하느라 13일간 단식도 해봤는데, 단식보다 체중 빼는 게 더 힘들다”고 웃었다.
혹독한 자기관리가 가능한 것은 오랫동안 ‘공부하는 운동선수’ 생활이 몸에 밴 덕분이다. 중고교 때도 매일 훈련을 마치고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 선수를 보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쳐 주려면 운동만 잘해서는 부족할 것 같았어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건 의지 문제지 환경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가정 형편이 어려운 그를 위해 중학교 은사가 후원회를 꾸려 고교 3년 내내 장학금을 줬다. 유도부 감독도 사무실을 공부방으로 내줬다. 유도 명문대들의 스카우트를 마다하고 오로지 서울대만 목표로 매진했다. 입학해서도 신입생 때를 빼곤 내내 절제된 생활을 하며 운동과 공부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다.
“총학생회장 활동 중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서울대 우리 학교 사람들이 심성이 고와서 술을 먹지 않아도 잘 이해하고 배려해 준 덕에 자기 관리를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욱 힘이 됐다. 프로축구팀에 입성한 이건엽·이정원 선수, 아시안게임 수영 양준혁 선수, 야구 프로팀 진출 준비 중인 이정호 선수가 서울대 체육교육과 13학번 동기다. 삼보에서는 유도를 했던 여동생이 국제심판을 준비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신 선수의 장차 목표는 ‘금메달리스트 출신 스포츠 행정가’다. 그는 “스포츠 관련 정책과 행정을 펼치려면 법을 잘 알고 입법활동도 참여해야 한다”는 포부로 정치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신재용 선수는 “많이 묻고, 들어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 한다”며 인터뷰 중 국내외 삼보계 상황을 세세히 설명해줬다. IOC 위원이 되고자 영어공부에도 열심이다.
그는 “서울대에 온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운동할 때도 서울대 출신이라 오히려 파벌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으로 행보를 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로스쿨에 가면 운동은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듣지만 짬을 내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둘 다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서울대에서 계속 열심히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년 인터뷰 이후 카자흐스탄 대통령배 국제삼보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