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리의 이스라엘] ‘5달러 시장’ 스타트업 체험기①

5달러로 출발하는 소사업자를 위한 세계 최대 시장 파이버닷컴의 첫 페이지 상단 모습 <캡처>

누구나 사업자 될 수 있는 ‘파이버 닷컴’

5달러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5000원은 가볍게 한끼 식사하기에 딱 적당한 돈이다. 아니면 커피 한 잔 정도? 뭔가 다른 걸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누가 나에게 5000원을 준다면 대가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올해 최저 시급은 4860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즉, 한 시간 일해서 벌 수 있는 돈 정도다. 한국보다 최저 임금이 높은 나라의 경우 한 시간 일한 대가도 안 되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달러에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인력시장’이 있다. 바로 파이버닷컴(Fiverr.com)이다.

하루는 회사 동료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여자친구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선 립스틱으로 윗 가슴에 ‘I love OOO (동료 이름)’이라고 쓰고선 셀카를 찍은 사진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자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재미로 5달러을 주고 해봤다고 하길래 그 때는 이런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실없는 농담으로 생각했다. (어디 클럽에서 만나서 장난친 줄 알았다).

신문에 유망 스타트업으로 소개된 후에야 이 사이트를 통해 한 것인 줄을 알았다. 이곳에 나온 ‘긱’-파이버에서는 판매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긱(gig)이라 부른다- 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겠다는 사람부터, 몸에 헤나 문신으로 회사 로고를 그리고선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스카이프를 통해 30분 간 이태리어 교습을 해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회사 동료가 이용한 ‘긱’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직장 동료가 말한 서비스를 파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통곡의?벽’ 기도문?꽂아주기 사업?체험

나도 한번 판매자가 돼 사이트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짧은 고민 끝에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자필로 기도 쪽지를 써서 꽂아주는’ 긱을 5달러에 올렸다. 처음 가입해서 일정 레벨이 되기까지는 5달러짜리 긱 하나만 제공할 수 있지만, 판매 횟수가 늘고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좋을수록 부가 긱을 덧붙여 최고 500달러까지 업세일(up-sale)을 할 수 있다. 5달러에 판매하는 긱은 파이버에서 1달러의 수수료를 떼고 4달러를 페이팔(Paypal) 계정을 통해 입금해준다.

통곡의 벽에 기도 쪽지를 꽂아준다는 긱은 나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지만 다들 프린트해서 꽂아준다는 것뿐이었다.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는 자필로 가능하다고 쓰고 다른 언어도 최대한 가깝게 ‘그려서’ 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덕분인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주문이 들어왔다!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었는데, 기도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전달되기를 원하는 이의 기도는 진지했다. 항암 화학 치료를 받는 친구의 완쾌를 비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일순 숙연해져서 ‘나도 함께 기도할게. 꼭 기도가 신께 전달되기를 바랄게’라고 회신했다.

매주 안식일(토요일)에는 예루살렘에 가니, 통곡의 벽에 잠시 들려서 기도를 꽂고 오고, 사진을 찍어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바로 안식일에는 통곡의 벽에서 사진 촬영은 물론 메모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조차 금지된다는 사실이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고객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예루살렘을 평일에 다녀올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대신 진심으로 함께 기도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주문은 취소해달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고객의 답장은 오히려 함께 기도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도 생각이 날 때면 함께 기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주문은 취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안해서라도 이번 금요일 오전에 안식일이 시작하기 전에 다녀와서 사진을 남겨줘야 할 것 같다.

아쉽게도 처음이자 마지막 주문은 지연 배송이 되고 말았다

첫 주문 외에도 두서너 건의 문의 메시지는 왔지만 추가 주문은 없었다. 아마 첫 주문을 정시에 배달하지 못한 기록이 남아 그럴 수도 있고, 아직 결과물을 올리지 못해 예비 고객들이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여행 일정을 짜주겠다’는 긱도 올렸지만 이 건에 대해서는 문의조차도 없는 걸 보면 별로 인기있을 만한 아이템은 아닌가보다. 내세울만한 몸뚱이도 없고 예능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뭔가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위해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아직까지는 긱의 종류가 비슷비슷하고, 배송의 문제 때문에 일반적으로 디지털화된 결과물(사진, 비디오, 문서 등)을 보내주거나 간단한 엽서 등을 보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서비스가 점차 확장될수록 다양한 아이디어의 긱들이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참고로 파이버는 글로벌 투자 펀드인 악셀 파트너스(Accel Partners)로부터 3차 라운드에 15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고, 페이스북(Facebook), 링크드인(LinkedIn), 스포티파이(Sportify) 등 내로라하는 선두 인터넷 서비스 업체로부터도 투자를 받았다. 비냐미나라는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뉴욕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P.S.
지난 주말을 통해 드디어 약속을 지켰다. 평소에는 안식일(토요일)에만 예루살렘에 갔지만, 특별히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문을 약속대로 꽂아주고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금요일 오전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고생을 하긴 했지만, 사진을 찍고선 집에 돌아와 바로 전송해줬더니 곧장 고맙다는 답신이 온다. 4달러를 위해 40달러 이상을 썼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첫 파이버 판매 경험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번 4달러는 정산을 거쳐 4월 26일 페이팔 계정으로 입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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