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나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됐을까
화면 속에서 평론가 김갑수씨가 신랄하게 부패한 교회의 행태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성경의 과학적·역사적 증명의 결여와 논리적 허점을 지적했다. 영혼이 없는 좀비가 되어 목사를 숭배하는 신도들을 말했다. 그리고 그런 부패를 외면하고 자기만 깨끗하면 되는 것 같이 행동하는 다른 교회와 교인들의 비겁성을 직선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논쟁의 상대방인 고도원씨가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성경을 열심히 말하고 있지만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목사도 거의 말이 없었다. 지성적인 김갑수씨의 말 중에 틀린 게 없는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는 교회 사건들을 많이 다루었다. 사이비 이단이라는 단체와도 싸우기도 했다. 성직자들의 성폭행, 횡령, 배임, 간통 등 무수한 사건을 취급하고 갑이 된 목사들의 오만도 경험했다. 제단 뒤의 부패와 악취에 대해서는 김갑수씨보다 훨씬 깊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변함없이 믿고 있다. 신화나 미신 같아 보이는 재미없는 성경을 수십년 쉬지 않고 매일 읽고 있다. 성경표지 뒷 쪽에 읽은 횟수를 적어 놓은 게 130번이 넘었다. 핵심을 쓰고 외우고 했으니까 훨씬 많을 것 같다. 기도의 방법으로 ‘시편 23장’을 1만번을 목표로 지금 쓰고 있다. 여생의 금 같은 시간을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르는 반복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지성과 이상을 겸비한 김갑수씨의 지적이 모두 맞다는 생각이다. 나도 겉만 화려하게 장식한 무덤같이 된 교회에는 가지 않는다. 장사꾼이나 도둑이 된 목사는 배척한다. 대리석과 금칠 은칠로 장식된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분이 계시지 않을 것 같다. 순수한 영혼이 모여있는 교회를 찾고 있다.
나는 믿음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더욱 깊이 믿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믿음은 주관적이라는 생각이다. 각자의 환경과 그릇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학 이론을 금형으로 해서 붕어빵 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개인적인 체험과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신앙은 단 위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체험을 나누는 고백인 것으로 나는 믿는다. 성경을 읽어오면서 내 눈에 강하게 들어온 부분을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에게 내려오는 장면이 나의 뇌리에 박혔다. 접신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다음부터 예수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고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이라고 했다. 그런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영이 되어 나타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반쯤은 자의적으로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죽은 예수의 영을 만난다. 그는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완전히 변질됐다. 그 다음부터 그는 예수 영의 아바타가 되어 일생을 그 명령대로 움직인다. 그는 예수의 영을 만난 체험을 믿음의 핵심으로 사람들에게 전했다. 성경 속의 이상한 장면이 또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대개가 속물이었다. 무식하고 욕심이 있는 보통사람이었다. 거짓말도 하고 위기가 닥쳤을 때 비겁했다. 그런 그들 속에 영이 들어가자 그들의 영혼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 예수의 영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하게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도대체 그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가장 컸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뿐만 아니라 수 많은 영들이 있었다. 악령도 있고 귀신도 많았다. 천사도 영적 존재였다. 그런 영적세계의 존재는 과학적 역사적 논리적인 세계를 벗어나는 다른 차원이 아닐까. 증명이 안 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지배하는 드라마가 흔하게 나온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귀신의 힘을 빌려서 점을 치기도 한다. 신내림의 무속은 수천년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귀신이 등장하는 영적 세계를 무의식적으로라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완벽한 무신론자가 정말 있을까.
나는 영적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 성령을 믿는다. 나의 영혼은 성령이 찾아오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성령은 전기이고, 나는 필라멘트다. 성령이 흐르면 나의 영혼은 환하게 빛이 나면서 내면이 환하게 밝아질 것 같다. 나는 그런 개인적인 체험을 했다. 그 체험이 질그릇 속에 들은 황금의 알맹이였다. 시야가 다른 사람들이 질그릇에 묻은 먼지와 오물만 보고 탓할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