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조숙경 ‘클래스가 남다른 과학고전’…”생명의 근원 등 12가지 과학이슈 알기 쉽게”

<클래스가 남다른 과학고전> 표지

[아시아엔=조숙경 한국에너지공대 교수,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학회회장, 이학박사] 검은 목 폴라티와 청바지를 입은 애플사의 CEO.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한동안 그가 남긴 말 중 하나인 “Stay Hungry”를 비밀번호로 지정할 정도로 열심히 세상을 살자고 맘먹었던 적이 있다. 그가 201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동영상은 요즘도 유튜브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14분 25초의 짧은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놀라운 인생 비밀을 매우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아기 때 입양되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고 평생 학비를 저축해 온 양부모님에게 미안하여 대학 1학년 때 중퇴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서른 살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대학을 중퇴했지만 대학을 떠나지 못하고 1년 이상을 배회하면서 청강생으로 들었던 캘리그래피 강좌는 후에 애플의 글씨체가 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잡스는 “결국 인생은 점과 점의 연결”이라고 말한다. 가장 불행할 것 같은 일이 결국에는 가장 빛나는 성공으로 이어졌으며, 앞으로 살아갈 미래도 그러할 것이니, “여러분 가슴이 원하는 것(follow your heart)을 하세요”라고 말한다.

인생은 점과 점의 연결이다! 그렇다면 점은 무엇일까? 점은 바로 사람(people)이고 또 점은 사건(accident)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누구를 만나느냐 그리고 어떤 사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 결정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나의 인생은 어떠한가를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의 나를 만든 사람과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우선 나 자신에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책에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하나는 20세기 과학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12권의 과학고전을 소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20대 청년이 지난 40년간 12권의 과학고전을 만나고 읽으면서 용기를 얻어 지금까지 성장해 온 삶의 여정을 소개한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유의미한 것은 우리 세상이 너무나도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이유, 그리고 갈수록 세상이 불확실해져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챗 GPT, 기후위기, 인구감소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글로벌 이슈들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과학의 이슈이다. 이와 관련한 과학적 지식과 정보는 물론이고 과학이 우리 사회와 미래에 던지는 질문들은 지속가능한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필수교양이 되었다. 동시에 실패가 더 많아질 세상에서 실패를 새로운 점으로 연결해 온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작은 안내를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1장에서는 대학교 1학년 시절 불안했던 한 청춘의 서울 정착기를 회상하면서 그때 만난 리처드 파인만과 그의 자서전 성격의 책 <파인만 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를 소개하면서 “과학도 재미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2장에서는 영국 유학시절 영어로 힘들어하던 때 롤모델로 만나게 된 제이컵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소개하면서 “누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가져왔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과학의 사용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3장에서는 한국인으로서는 그를 만난 마지막 사람이라는 사연과 함께 칼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통해 “과학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4장에서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살핀다.

5장에서는 남편과 함께 대우학술재단으로부터 번역비를 지원받아 출간했던 노우드 러셀 핸슨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을 소개하면서 번역할 당시 아이들을 키워낸 이야기와 “관찰은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고, 6장에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통해 “과학의 사용에서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를 다루었다. 7장에서는 포항공대 재직시절 만난 한 여성 박사와 그녀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인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을 소개하면서 “봄은 왔는데 왜 새들이 울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환경과 기술의 연관성에 대해 다루었다. 8장에서는 영국 리드 강연으로 유명한 찰스 스노의 <두 문화>를 통해 “과학과 인문학이 만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루었다.

9장에서는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을 통해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10장에서는 국립과학관에서 전시연구본부장으로 일하면서 ‘2030 미래도시 특별전시’ 기획 때 많은 영감을 받았던 책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소개하면서 “과학이 과연 유토피아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1장에서는 인류 역사와 에너지 문제를 다룬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소개하면서 “인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12장에서는 나 자신이 번역한 로이 포터의 <2500년 과학사를 움직인 인물들>을 통해 “과학에서도 만남은 정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이 12가지 질문들은 모두 20세기에 제기되었지만 어쩌면 20세기보다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꼭 던져야 할 가장 유효한 질문들이다.

12권의 과학고전들을 어느 정도, 어느 깊이로 소개할 것인가를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브리지 역할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을 매개로 독자들이 각 과학고전의 원본 텍스트를 직접 읽고 싶어 하도록, 그리하여 독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과학고전을 읽을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있듯이, 나는 이 12권의 책에서 12개의 인생을 만났다. 이 책을 매개로 12개의 새로운 인생을 만나면서 더욱 풍성하고 즐거운 삶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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