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청년’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 “죽으면 장례식장 대신 해부학교실로”

[아시아엔=김남주 <서울대총동창신문> 편집장]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겸 캠프나비 호스트는 캠핑 전도사다.

그는 “러시아의 다차 제도를 도입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주말이면 자연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져다 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올해로 91세인 그가 이에 대한 증거다. 60대에 가족에서 독립 후 30년을 홀로 지내며 주말 캠핑을 즐긴다. 강원도 홍천 오대산 600고지 샘골 주말농장에 20만 그루의 나무도 심었다.

90년을 살아온 지혜를 담아 <잘 산다는것에 대하여>(토네이도 출간)란 책도 출간했다. 강연과 인터뷰,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활동 등을 통해 열정적으로 자연의 삶을 전파하는 그를 지난 7월 27일 경기 양주 그의 임대아파트에서 만났다. 그의 집은 홀로 사는 노인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 깔끔했다. 몸에선 탄탄한 기운이 넘친다. 박 대표는 PC로 화상영어 학습 중이었다.

-영어를 지금도 공부하세요.

“제가 알고 있는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 보고 싶었어요. 또 이렇게 영어학습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 3개월 돼가고 있는데?비용이 많이 들어서 여기까지만 하려고요.”(웃음)

-홀로 사시는 데 불편함은요.

“전혀요. 김치도 담가 먹습니다. 식혜도 만들었는데 맛 보시겠어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창조적인 활동입니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집 청소하는 데만 6시간 정도가 필요해요. 이른 새벽에 저 앞산까지 늘 산책을 합니다. 책 읽고 영어 공부하면 하루가 짧아요. 가끔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자료 준비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자녀들이 걱정을 할 것 같은데요.

“가족 모두가 동의해서 이런 삶을 살고 있고 서로 잘 살고 있을 거란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가끔 자녀들이 찾아오고 이메일, 문자 등으로 안부를 확인합니다. 1남2녀를 뒀는데 어렸을 때부터 개별화 훈련이 돼 있어요. 놀이동산 대신 산과 들로 캠핑을 다녔지요. 유행이 아닌 본질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아이 모두 결혼식도 케이크 하나 두고 간소하게 치렀습니다. 도토리가 땅에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땅에 묻히고 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요.”

박 대표에게 삶의 고통 대부분이 가족 등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오지 않냐고 되물었다.

“제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지만 늙어서 가족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효도를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한 걸음도 내딛을 힘이 없다고 느끼면 곡기를 끊고 기다릴 생각입니다. 인도의 바나라시 갠지스 강가의 풍경이 잊히지 않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무리와 살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었어요. 한달이고 두달이고 살아서 죽음을 기다립니다. 위대한 사람들이구나 싶었어요.”

박 대표는 “마지막 스승은 나를 산에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출할 때면 늘 시신기증서를 목걸이 지갑에 넣고 나선다. 연세대 의대에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한다는 서약서와 최초 발견한 사람에 대한 수고비까지 들어있다. 병원측에 실습 후 화장해 산에 뿌려주고 뿌린 장소를 가족에게 알려주지 말라는 유서도 남겨뒀다. 죽을 때 고무신 한 켤레와 덕유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한장만 남기기로 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세요.

“글쎄요. 90세 살았으면 천수는 누린 거잖아요. 죽음이 두려울 나이는 아니죠. 이런 이야기를 좀 들려 드릴게요. 제가 아버지, 어머니 염을 다 했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마지막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지요. 염을 배우기 위해서 천주교 장례 준비하는 분들 따라다니면서 시체 18구를 만졌어요. 사람이 죽으면 발이 뻣뻣해져 단단히 묶어주지 않으면 관 속에 넣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걸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의 절차까지 알았을 때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지요.”

-몇몇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 한 겨울에 비박도 하신다고요?

“80대 중반까지는 가끔 했는데, 지금은 강원도 홍천 주말농장에서 캠핑만 즐겨요. 추운 날씨를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시력이 안 좋아져서 오토캠핑도 못한 지 꽤 됐고요. 혹서기라는 지금도 해발 600미터 고지에 있는 홍천 주말농장은 선선합니다. 산새 소리 들으러 시시때때로 갑니다.”

-캠핑을 즐기게 된 동기가 어떻게 되세요.

“타고난 심성이 자연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6·25 전쟁 때 참전해서 대위로 전역을 했어요. 공병 중대장 생활할 때도 냇가에 오두막을 지어 가족들과 지내기도 했지요. 젊은 시절 제 아이들 외에 동생들까지 11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삶이 고달팠지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어요. 57세에 찾아온 뇌경색도 자연과 더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됐지요. 걸으면서 많이 호전됐어요. 요즘도 어지러운 증상이 있습니다만?그러려니 하고 지냅니다.”

그는 두어살 무렵 학질에 걸려 앓을 때 할머니가 치료제인 키니네를 독하게 써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다. 완전 실명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공병장교로 입대한 것이다.? 그는 “당시 군 입대는 직업군인 자원이 아니라 6.25 전쟁으로 길에서 잡혀 징집당해 눈 하나쯤 없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됐다”고 했다.

박 대표는 몇년 전부터 왼쪽 눈마저 황반변성이 와 망막이 점점 손상돼 시력이 아주 약해지고 있다. 그는 “눈이 보일 때까지는 책을 읽고 글을 남기려 한다”고 했다. 사실 그는?한글을 단 1시간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희귀한 세대다. 박 대표는 “소학교(초등학교) 중학교 때 국어는 일본어였고 심지어 학교에서 조선말을 하면 친구들 간에 벌점으로 카드를 빼앗곤 했다”며 “어깨 너머로 배운 옛 언문(한글)과 한문은 아버지로부터 서당식으로 조금 배운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지금도 철자법 등 어문표기에 애를 먹고, 오기 투성이”라고 했다.

-캠프나비 호스트라는 직함이 궁금합니다.

“저의 생각에 동의해 주는 분들의 모임이고 거기서 주인장 노릇을 합니다. 캠프나비의 나비는 자연(nature)와 존재(being)의 합성어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죠. 50여명 정도가 소통하고 부정기적으로 홍천 주말농장에 모입니다.”

-강연에서 주로 어떤 말씀을 하세요.

“‘사변적인 지식은 갖다 버리고 몸으로 움직여라.’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자거나 쉬는데 있지 않아요.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입니다. 괴로운 일이라 생각하는 노동을 가장 인간적인 행동으로 여길 때 삶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지요. 고요한 산에서 텐트 치고 홀로 지내본 사람만이, 땅을 일구고 식물을 키운 사람만이 깨닫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 따라 살지 말자. 뿌리가 단단한 잡초는 밟힐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여유로운 마음으로 타인과 세상을 대할 수 있다.’ 주로 이런 내용을 체험담과 곁들여 이야기 합니다.”

박 대표는 “심플라이프, 항상성, 엔트로피 이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산다”고 덧붙였다.

“심플라이프는 필요 없는 것은 갖고 살지 말자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삶의 구조 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 달 약 100만원의 생활비가 듭니다. 임대료, 관리비, 교통비, 식비, 대외활동비 등등 해서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으로 절반, 강연료 등으로 절반을 마련합니다. 신발도 중고 사서 신고, 과일도 저녁 무렵 떨이 제품 사서 먹습니다. 돈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데만 쓰고 사람도 최소로 만납니다. 두 번째 항상성은 생태계를 존중하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생물학에서 나온 말이에요. 산천어 축제 같은 거 생태계에 역행하는 행사예요. 결국 사람도 물고기도 극한 스트레스로 집어넣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엔트로피. 그건 ‘자연은 역행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간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자’입니다. 인간만이 문명의 이기를 통해 역행을 하는데, 어디까지 역행하고 살 것인가가 문화의 수준이 되겠지요.”

-머리를 밀어 수도승 느낌이 납니다.

“심플라이프를 밖으로 보여주는 한 표식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머리카락이 거 추장스러워요. 늘 이고 다니는 짐 같기도 하고요. 스님들이 미는 이유가 그것 같아요. 과감하게 밀었지요. 매일 깎지 않으면 면도가 어려워져서 늘 관리를 합니다. 이 스타일 덕분에 깐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이런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문화살롱이라고 해야 할까. 삶의 품격을 높이는 활동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박상설 대표는 오지탐험가이자 심리치료사이며 우리나라 오토캠핑 선구자이다. 1928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국가기술고시 건설기계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1987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육군 공병대 대위, 건설교통부를 거쳐 건설업체에서 임원으로 퇴임했다.

현재 강원도 홍천 오대산 북쪽에 위치한 주말레저농원 캠프나비(CAMP NABE)에서 ‘열린 인성캠프’를 운영하고 있고 <아시아엔>(kor.theasian.asia)에 자연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50년 동안 주말농장을 운영해왔고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으며 모든 끼니는 스스로 해결하는 등 몸으로 직접 뒹굴며 캐낸 지혜에 관심이 있다. 주말 영농, 오토캠핑, 여행, 등산, 여가 문화 설계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펼치며 이 시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즐긴다.(서울대총동창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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