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인생 차민수③] 카사블랑카 갱단 무릎꿇리고 ‘쿵푸 사범’이 되다

[아시아엔=차민수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강원관광대 석좌교수, <블랙잭 이길 수 있다> 등 저자] 미국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주유소에 취직을 하였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은 아파트 얻고 차 한대 사니까 하나도 없었다. 일주일도 안 되어 당장 나가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장에 취직하면 급여는 두배를 받을 수 있었으나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오전에는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영어가 형편없이 부족하니 미국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영어공부도 병행하여야만 했다. 내가 취직한 주유소는 카사블랑카 갱들의 활동반경에 있어서 밤만 되면 총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하였다. 자연히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저녁파트에 일하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일주일도 안 되어 잇따라 그만두는 그런 곳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 차지가 쉽게 되었다.

하루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갱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세 녀석이 기름을 넣으러 왔다. 시동을 끄라고 했지만 배터리가 나빠 시동을 끄면 다시 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주유 후 돈을 안내고 도망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바짝 신경을 써 감시했다. 역시나 기름을 넣던 중간에 갑자기 차를 몰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문도 안 닫고 출발하는 차의 문과 핸들을 움켜잡고 달리는 차에 올라탔다.

나의 체중으로 핸들을 꺾을 수가 없어 전봇대를 들이받을 처지가 되자 차를 멈추었다. 나는 소림쿵푸에서 배운 ‘루’라는 초식으로 그의 목을 잡아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루’는 손가락만 이용하여 공격하는 사람의 손목이나 급소, 목젖 등을 잡아던지는 동작이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80kg 정도, 나는 64kg이었다. 76년 가을의 일이다. 미국생활을 시작한 지 두달이나 되었을까? 미국 법에는 내 집이나 직장에서 무기를 가진 침입자와 싸우다가 죽이는 것은 무죄가 된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법에 대하여 배웠다. 그가 옆에 차고 있던 30cm 정도 되는 대검을 뽑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목을 밟고 있다가 슬쩍 비켜주면서 “뽑으면 죽는다”고 했다.

영어가 서툴러 혼내 주겠다는 말도 할 줄 몰랐다. 산다, 죽는다만 말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가 잠시 생각하더니 칼을 뽑지는 못했다. 내가 차에 뛰어올라 자기를 한손으로 밖으로 집어던진 것에 놀란 것 같았다. 차 안에 있던 다른 두명도 몹시 당황하며 내리려고 했다. 나는 “내리면 죽는다”고 소리쳤다. 그런 나의 기세에 눌렸는지 혹은 놀랐는지 순순히 5달러 지폐를 내놓았다. “3달러79센트!” 지금도 내 목숨과 바꿀 뻔했던 이 금액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당시 한화로 환산하면 2000원이다.

이튿날 매니저가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짓을 하였느냐”며 나를 나무란다. 그냥 사건 경위를 사실대로 리포트로 쓰면 된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가 많이 부족하여 리포트를 쓰는 것은 지옥이었고 그냥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해놓고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갱들이 주유소를 향하여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이들이 바로 유명한 카사블랑카 갱이구나’ 하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스카페이스!” 난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이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가게로 밀고 들어오는 그들을 밀고 밖으로 무조건 나갔다. 그 상황에도 그들이 싸우는 동안 가게 안에 있는 담배와 엔진오일을 도둑질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넓은 장소가 싸우기에 유리할 것 같아 나는 밖으로 밀고 나가 나무를 등지고 섰다. 상대숫자가 너무 많아 뒤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3분만 버티면 살 수 있겠지. 누군가 싸우는 것을 보고 경찰에 연락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왜 왔느냐?”고 태연하게 묻자 우두머리쯤 되어 보이는 친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너 지금 우리가 몇명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20~3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는 뒤이어 “너 도대체 무어냐”고 다시 묻는다. 나는 몸을 날려 등 뒤에 서있는 나무를 향해 공중돌려차기를 했다. 나뭇가지 하나가 뚝 소리를 내며 부러져 늘어졌다. 산 나뭇가지는 잘 부러지지 않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지니고 있는 초능력인 ‘기’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수’라는 기가 나에게서 나온 것 같았다.

그는 탄성과 함께 “Are you Bruce Lee?” 나더러 이소룡이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소룡과 같은 무술을 배운 사람이다. 한국에서 이민 왔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영어는 잘 못한다”고 했다. 이소룡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나는 이소룡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러자 그는 “백인이면 죽이러 왔는데 동양인이고 코리안이 맘에 든다. 친구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위기는 이렇게 넘기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모두들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후 이들에게 쿵푸를 가르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1주일에 두번 레슨에 1인당 35달러를 받았다. 당시 도장에서는 5달러를 받을 때였다. 주유소의 주급이 100달러, 세금 공제하고 나면 82달러였으니 1인당 35달러라는 돈은 상당히 큰돈이었다. 그들은 내게 레슨비를 내기 위해 하나둘씩 직장을 갖기 시작하였다. 10여명을 가르치니 주유소에서 버는 돈보다 조금 많은 돈을 벌어 생활이 안정되었다.

카사블랑카 지역은 낮에도 차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다. 이 지역을 잘못 침범하면 낮에도 사람은 물론 차까지 없어질 정도로 겁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집 사람 운전을 가르쳤다. 다니는 차가 없어 운전 가르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한번은 지나던 경찰이 와서 “이 지역은 아주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가서 가르치라”는 것이다. 나한테는 더없이 안전하다는 것을 경찰아저씨는 모르니까 하는 말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 10시 주유소 일이 끝나면 카사블랑카에 있는 공원으로 가 운동을 가르쳤다. 아파트 한 가운데 공원이 있어 늦은 밤인데도 온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자연히 카사블랑카에서 나는 동양인 ‘마스터 차’(Master CHA)로 불리며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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