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헌법재판소는 국헌 수호의 보루
1987년 헌법에서 헌법재판소를 도입할 때는 낯설었다.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의 도입은 현명한 결정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시동(侍童)들에만 의존하는 대통령,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쓰기만 하는 국무위원, 국회선진화법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국회, 종종 터무니없는 판결을 터뜨리는 법원 등… 여타 헌법기관들이 모조리 국민의 실망을 자아내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국헌수호의 보루로서 존재의의를 명확히 드러내었다.
헌재의 성공요인은 먼저 그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 재판관으로 구성한다. 재판관 중 3인은 국회가 선출하고,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며, 대통령이 3인을 지명한다. 법관은 우리 사회 최고의 정예들이 엄격한 과정을 선발되어 검찰, 법원, 변호사를 거쳐 검증된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극히 소수가 국회, 정부, 법원이 선출 내지 지명한 재판관들이니 헌재는 가히 현세의 신탁(oracle)을 내리기에 충분한 자격과 권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한다. 국회의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국민수준이 높아지지 않고 제도만으로 국회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그러나 우선 제도적으로라도 확연한 문제점은 개선 보완되어야 한다. 우선 공천은 하루 빨리 정당 수뇌부가 아니라 오픈 프라이머리 등에 의한 국민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선출(elected)이 아니라 사실상 지명(appointed)되는 비례대표는 근본적 손질이 필요하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묻는 가장 보편적, 효율적 방법이다. 하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약점은 소통과 관용에 의해 ‘상식에 맞는’ 운용으로 시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하나가 되는 의원내각제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의원내각제의 강점은 수백년을 통하여 영국을 위시로 한 서구는 물론 일본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선택한 재판관들이 함께 숙의한 결과는 국민에게 갈채를 받았다. 재판관 전원이 오로지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비추어, 독립하여 결정한 것이다. 재판관은 역사의 심판정에 서서 과거의 사관(史官)과 같이 엄숙한 각기의 결정문을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종종 예민한 사안에 대해 무기명 비밀투표로 숨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본산인 고대 그리스에서는 만장일치는 건전한 의사결정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통진당 해산의 결정에서도 한 사람의 반대가 있었는데 신탁과 같은 무게를 갖는 헌재 결정의 건강성을 위해 차라리 잘된 것이다. 통진당의 위헌성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지 않은가?
앞으로, 국회가 ‘다수결로 다수결의 원칙을 무너뜨린’ 국회선진화법은 헌재의 판정을 받아야 한다. 국회가 제 손으로 이를 제기하지 못하면 ‘헌법기관으로서의 국민’이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당파성의 모순 덩어리를 제거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넘어 유력하고 균형 잡힌 공화정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