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사랑 없는 글은 종이가 입은 상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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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이야, 누군들 못할까요? 글이야, 누군들 못 쓸까요? 말과 글로 될 일이었다면, 예수님은 헬라의 아고라나 아카데미아로 진출하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저술 활동에 전념하셨을 것입니다.

말과 글로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사학과 논리학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말과 글에 능한 제자를 선발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미련하고 부족한 제자들을 뽑아 두시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과 글이 아니라, 십자가를 택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하나님 나라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동안 예수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도 말씀을 아끼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은 논쟁과 이론이 아니라, 말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글로 남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번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에 담겨 있는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사랑이 없는 말은 울리는 꽹과리와 소리 나는 구리일 뿐이고, 사랑 없는 글은 종이가 입은 상처에 불과합니다.

바울 당시 헬라 사회에는 소피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달변가였습니다. 언어와 지혜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논리로 풀어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탁월했습니다.

바울도 한때 그들과 논쟁했습니다.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자들과 맞섰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알았습니다. 말과 논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수 없고, 인간의 지혜와 말은 결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논리적 귀결이나 철학적 사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곧 사랑입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말과 논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수 없고, 인간의 지혜와 말은 결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논리적 귀결이나 철학적 사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곧 사랑입니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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