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동물 발톱은 진짜, 눈알 가짜”···박제사 윤지나 꿈은?

윤지나 박제사가 작업한 시베리아호랑이. <사진 서울대공원>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동물원에서 수명을 다한 시베리아 호랑이 두 마리가 설원을 누비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경력 11년차 서울대공원 소속 윤지나 박제사의 손을 통해서다. 지난 4월 서울대공원이 공개한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와 ‘한울이’의 박제 표본은 살아 있는 동물의 찰나를 포착한 듯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조소 전공인 윤 박제사(32·서울대 조소과 07학번) 솜씨다.

윤지나 박제사

국내 박제사 국가자격증을 갖춘 사람은 약 50명. 현역에 있는 20여 명의 국가공인 박제사 중 여성은 한 손에 꼽는다. 5월 25일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윤 박제사를 만났다. 동물 표본을 보관한 수장고와 작업실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동물원에서 박제사는 어떤 일을 하나.
“전시와 연구, 학습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동물원의 죽은 동물을 살아 있을 때 모습으로 복원한다. 가죽을 사용해 박제 표본을 만들고, 뼈를 사용해 골격표본을 제작한다.”

-이번에 박제한 호랑이는 어떤 동물이었나.
“시베리아 호랑이 ‘한울이’(암컷)와 ‘코아’(수컷)다. 둘 다 이곳 동물원에서 태어나 살다가 한울이는 15세인 2016년, 코아는 16세인 2018년 자연사했다. 코아는 참 잘생긴 호랑이였다고 했다. 동물이 죽으면 수의사가 박제사에게 연락을 준다. 상태를 보고 바로 박제를 결정했고 작년 3월부터 1년간 동료 박제사와 작업했다.”

-박제 호랑이 앞발에 눈가루를 묻힌 디테일에 놀랐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던 환경을 재현하려고 눈밭 배경을 택했다. 유튜브로 눈밭을 뛰어다니는 호랑이 영상을 찾아봤더니 꼬리와 앞발에 눈이 많이 묻어 있었다. 뛰는 동작을 봐야 해서 사육사가 다른 호랑이들이 뛰어오르게 연출해주기도 했다.”

먹이를 먹는 회색늑대. 실제 동문이 아니라 윤지나씨의 박제품이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가죽을 직접 벗기나.
“수의사가 부검을 마치면 박제사가 사체를 작업실로 가져와 가죽을 벗긴다. 벗겨낸 가죽에서 살점이나 지방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때는 구멍이 나기 쉬워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가죽을 유연하게 처리해 동물 모양 마네킹에 씌우면서 눈코입과 발가락 등 세부 표현을 해준다. 실과 바늘로 꿰매서 봉합한 다음 건조시키고 색칠과 털 정리로 마무리한다. 참새는 2주, 수달은 두세 달이면 완성인데 호랑이는 건조에만 한두 달이 걸렸다.”

-마네킹을 잘 만들어야 하겠다.
“동물의 몸 구석구석 기록해놓은 치수대로 정확하게 제작한다. 가볍고 잘 썩지 않는 발포우레탄을 깎아 만들고 철사와 파이프로 뼈대도 넣는다. 이번엔 각파이프를 용접해 넣었다.”

호랑이 발톱. 눈발을 입혀 동세가 더 실감난다. <사진 서울대공원>

-동물의 모든 부분이 박제에 쓰이나.
“박제에서 어디가 진짜고 가짜인지 많이들 묻는다. 모든 털과 수염, 발톱, 코는 진짜, 눈알과 이빨은 가짜다. 이번 호랑이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유리 재질의 최신 의안을 썼다. 플래시를 비추면 진짜 동물의 눈처럼 빛을 반사한다. 입속은 치과에서 하듯 본을 떠서 만드는데 이번에는 고양이과 동물의 까슬까슬한 혀 느낌을 내려고 진짜 혓바닥 가죽을 사용했다.”

-고된 작업이 힘에 부칠 법도 한데.
“힘들지만 할 만하다. 원래 미대에서도 스케일 큰 작업을 많이 했다. 까다로운 부분은 있다. 부패가 되면 동물 피부에서 맥없이 털이 빠지곤 한다. ‘털이 밀린다’고 하는데, 박제사가 가장 싫어하는 현상이다. 호랑이 얼굴 부분 털이 밀려서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길다. 언제부터 박제를 시작했나.
“2011년 학부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박제를 시작해 2013년 국가자격증인 문화재 수리기능사(박제 및 표본제작공) 자격증을 땄다. 천연기념물을 박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격증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박제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고 서울대공원에는 2015년 입사했다.”

-박제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예중 예고를 나와 오래 미술을 했지만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려 했을 정도다. 미술과 동물이 결합된 일을 하고 싶었던 차에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예술 같은 박제 작품을 보고 박제가 그 일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서울대 미대 재학 중에도 교수님들께 박제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 드리고, 동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국내에 박제를 가르치는 곳이 있나.
“정식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어서 도제식으로 배운다. 학부생 때 인천 국립자원생물자원관의 유영남 박제사님께 배웠다. 수의대 동물해부학 연구실에서 해부학과 골격 표본 만드는 방법을 배운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미국 박제학교와 캐나다 세계 챔피언 박제사 밑에서도 잠깐 공부했다.”

-박제사 시험이 어렵다고 들었다.
“세 번 만에 붙었다. 잉꼬와 꿩처럼 작은 새와 큰 새 한 마리씩 시간 내에 박제해야 하고 필기시험도 본다. 한 번에 붙는 일이 거의 드물다.”

-조소를 배운 게 도움이 되겠다.
“캐스팅(본 뜨기) 기법을 비롯해 조소에서 쓰는 재료와 기술이 박제 과정에서 비중이 높다. 그래선지 외국에선 조각가들이 박제사를 많이 한다. 호랑이 얼굴 모양을 잡을 때 점토를 붙여가면서 했는데 이럴 때 배운 걸 많이 활용한다. 박제사들 사이에선 마네킹을 직접 만드는 걸 높게 평가한다.”

윤 박제사는 지금까지 불곰, 담비, 원숭이, 늑대 등 수백 점의 박제를 만들었다. 동물원에서는 한 해에 10마리 정도를 제작한다. 동물원 중 유일하게 박제사를 둬온 서울대공원 수장고에는 98년간 살았던 희귀종 거북을 비롯해 포유류와 조류 등 희귀 동물 박제와 골격 표본 500여 점이 모여 있다. 수장고는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문이 없고, 온습도 유지를 위해 천장과 벽을 특수 재질로 건축했다.

-공들인 박제가 수장고에 있어 아쉽진 않나.
“동물원 곳곳에 교육 목적으로 박제를 전시하기도 하고 외부 강연할 때 가져가 보여주기도 한다. 수장고에 있는 표본들도 나중에 전시할 가능성은 있다.”

-잘 된 박제는 어떤 박제인가.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생김새나 해부학적 형태가 맞아야 한다. 동세(動勢)도 자연스러우면 좋다. 외국에선 사냥꾼이 박제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 원하는 포즈를 말해준다. 동물원이나 박물관 박제사는 그런 주문을 받는 게 아니다 보니 주관대로 포즈를 정할 수 있다. 가죽 상태가 안 좋은 부분을 가리는 자세를 택하기도 하지만, 가죽 문제가 없다면 개인적으로 역동적이고 동세가 있는 포즈를 선호하는 편이다. 동물의 행동생태학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도 좋다. 수달의 경우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더니 사람처럼 앉아 있는 사진이 많아서 박제에 반영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박제는 무엇인지.
“아무래도 시베리아 호랑이가 스케일도 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다. 2018년에 만든 회색 늑대도 맘에 든다. 동세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개과 동물을 좋아해서 더 애착이 간다.”

-외국에선 반려동물 박제도 많이 한다던데.
“나 역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지만, 반려동물 박제는 추천하지 않는다. 새나 파충류가 아닌 개, 고양이는 특히 그렇다. 박제사는 반려동물에 대해 평생 그 동물을 키운 사람만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이 죽은 직후엔 박제를 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순간 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보내주고 싶어지지 않을까.”

-파충류 박제는 좀 다른가.
“뱀이나 악어는 박제도 하지만 털이 없기 때문에 본을 떠서 모형 제작을 많이 한다. 박제만큼 결과물이 잘 나온다. 양서류, 파충류 박제는 색칠을 잘하는 게 관건이다. 나는 포유류와 조류에 주력하지만 아주 가끔 양서류나 파충류도 다룬다.”

-박제사로서 직업병이 있다면.
“가장 가까운 참고자료인 반려동물을 보면 꼭 만져보고 살펴보게 된다. 재규어를 박제할 때도 틈만 나면 키우는 고양이의 귀와 입술을 만지면서 관찰했다.”

윤지나 박제사는 ‘Wildlife Artist’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야생동물 박제, 그림, 조각 등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프로필에는 다음에 박제할 ‘설표’ 사진을 걸어 놨다. 블로그에 친절한 설명과 함께 박제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박제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려는 목적도 없지 않다고 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1910년 박제된 호랑이 살점을 떼어 한국 호랑이의 DNA를 분석하는 데 성공한 일이 있다. 과거 동물을 가두는 것이 아닌 미래에 그 가치를 전해주는 박제의 순기능이다.

-아직은 박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박제가 잔인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이해는 한다. 과거의 박제에서 생긴 고정관념 탓에 부자연스럽고 흉측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박제 기술이 발전해서 현대의 박제는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실제를 잘 고증하고 있다. 희귀 멸종 동물의 종 보전과 연구에 활용되고, 동물 보호 경각심도 불러일으키는 교육적 가치도 있다.”

-더 나은 박제사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최신 재료나 테크닉을 익히려 한다. 외국 사이트도 많이 보고, 동물 근골격계 해부학 공부도 꾸준히 한다. 사진 자료를 많이 모으려고 동물원을 돌아다니면서 동물사진을 찍고 있다.”

-국제 대회에도 나가고 싶다고.
“미국과 유럽에서 1~2년에 한 번 큰 박제대회가 열린다. 전 세계 박제사들이 자기 작품을 출품하고 교류하는 대회다. 동물의 크기와 종류 등을 나눠 심사한다. 칠면조의 경우 입을 벌렸는지, 다물었는지로도 나뉜다. 여력이 된다면 202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 출품작을 미리 온라인에 공개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 이번에 만든 호랑이는 출품이 어렵다. 새로운 동물을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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