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이기욱 교수가 하버드대 연구진과 만든 엑소슈트가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까닭은?

하버드대에서 엑소슈트 개발···서울대 마라톤동아리 창립회원

[아시아엔=나경태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제대로 걸지 못하게 되면 기대수명이 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걷기와 뛰기는 복지나 여가를 넘어 생존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운동형태라고 생각해요. ‘엑소슈트’가 빠르게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의 여러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하는 데 나름의 몫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기욱 교수가 중앙대에서 새로 개발 중인 엑소슈트

로봇은 엄밀히 말하면 ‘과학’이 아닌 ‘공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욱 중앙대 교수와 코너 윌시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엑소슈트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학계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기욱 교수는 이를 “내 인생 최고의 성취”로 꼽으면서도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준 아내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이기욱 교수를 만났다.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이라고 하면 흔히 아이언맨을 떠올립니다. 로봇을 통해 초인적인 힘을 갖고 싶다는 꿈은 인류의 오랜 욕망이고 웨어러블 로봇의 발전을 추동한 동력이기도 하죠. 그러나 아직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형태입니다. 단단한 프레임에 강한 모터를 쓰면 어쩔 수 없이 시스템이 굉장히 커지고 무거워져 오히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방해하게 되니까요. 과연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로봇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제기됐고, 보조해주는 힘이 약해지더라도 가볍고 편안한 형태로 가자는 새로운 방향이 제시됐습니다. 엑소슈트가 의복의 형태를 띠는 이유죠.”

엑소슈트는 하버드대에서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요청을 받아 완전 군장을 한 군인의 행군을 보조하는 용도로 연구되기 시작됐다. 뼈와 뼈 사이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걷는 방식을 기능성 천과 와이어로 옮겨, 옷이 뼈대 역할, 와이어가 근육 역할을 한다. 걷고 뛸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엉덩이 뒤쪽 근육이 수축할 때 엉덩이 쪽의 천과 허벅지 쪽의 천을 연결한 와이어가 당겨져 근육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한 발 뒤꿈치를 지면에 디디는 힐 스트라이크(heel strike) 직후를 기준으로 걸을 때와 뛸 때의 몸의 중심이 완전히 달라지는 데 착안, 슈트의 배꼽 부위에 달린 관성 센서가 두 동작을 구분해 서로 다른 타이밍에 보조근력을 제공한다. 간단한 원리지만 로봇의 힘이 착용자에게 불편하지 않게 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걷고 달리는 게 대수롭지 않게 보여도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 훈련해 형성된 최적의 동작입니다. 애매한 타이밍에 로봇의 힘이 가해지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동작을 방해할 수 있어요. 사용자의 의도를 로봇이 빠르게 간파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힘을 더해줘야 합니다. 슈트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도 관건이에요. 엑소슈트는 의복 형태를 띠어 무쇠 팔 무쇠 다리를 연상시키는 기존의 웨어러블 로봇보단 훨씬 가볍습니다. 걸을 때 9%, 달릴 때 4% 정도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줘 슈트의 무게를 상쇄하고도 6kg의 감량 효과를 발휘하죠. 그러나 의복 프레임의 무게가 600g 내외인 것에 비해 배터리와 모터 액슐레이터까지 합치면 5kg에 육박해 무게 부담이 없진 않아요.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의 동작은 걷거나 뛰는 수준을 넘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엑소슈트가 그 모든 동작에 적절한 보조근력을 제공하려면 지금보다 더 빠른 반응속도를 갖춰야 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인체의 동작은 뇌에서 근육으로 전기신호를 보내고 근육 내부의 전기신호가 활성화된 후 근육의 수축·이완으로 이뤄진다. 현재의 엑소슈트는 동작의 마지막 단계인 근육의 수축·이완을 감지하고 보조근력을 제공한다. 차세대 엑소슈트는 동작의 첫 단계, 즉 뇌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전기신호를 미리 감지함으로써 반응속도를 끌어올리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엑소슈트는 스포츠웨어의 일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편안해지고 더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 외형에 있어서도 보통의 의복과 차이가 없어야 해요. 지금 같은 형태로는 일반인 사이에 위화감을 일으켜 선뜻 착용하기 어렵습니다. 타인에게 어딘가 몸이 불편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과 착용감도 웨어러블 로봇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집집마다 옷장에 하나씩 엑소슈트가 걸리게 만드는 것이 연구의 장기적 목표라고 말하는 이기욱 교수는 하버드대 연구진에 소속돼 있을 때 쌓은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국내에서 한층 개선된 새로운 버전의 엑소슈트를 제작 중이다. 똑같은 이름으로 불려도 개발에 쓰인 기술과 디자인 특허는 모두 하버드대에서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진 한 장 쓰는 것도 금전적 이해관계와 엮이지 않게 조심스러워 했다. 지난 8월엔 제자들에게 코너 윌시 교수의 연구실을 견학시켜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단단한 프레임의 웨어러블 로봇은 시판되고 있습니다. 하지마비 환자들이 탑승하는 로봇의 개념으로 대당 4천만원 정도 하죠. 국내에 수입, 판매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져다 팔고 사용하다 고장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렵다고 해요. 사후관리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지 않은 거죠. 엑소슈트가 출시된다면 이 또한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이기욱 교수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탄테러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가 의족 로봇 덕분에 다시 춤을 추는 영상을 접하고 웨어러블 로봇 연구에 뛰어들었다. 로봇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직접 사람을 이롭게 하는 분야여서 끌렸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서울대 재학 중(기계항공학과 06-10) 서울대 마라톤 동아리 ‘달리샤’의 창립회원이다.

그는 서울대 생활대 남윤자 교수, 서울대 사대 안주은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9호 轉載>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