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재선거’ 코앞 ‘서울대총장’이란 자리를 생각해본다

나도 모르는 새 남들은 나를 주목하고 있다. 사진은 정면 대신 측면에서 촬영한 서울대 정문.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지난 봄 총장 최종후보자의 낙마로 실시되는 서울대총장 재선거 결과가 이달 안에 모두 마무리돼 ‘총장 부재 사태’가 마감될 전망이다.

반년 가까이 총장자리가 비어 있지만, 주목은커녕 관심도 그다지 없다. 그 사이 두 번이나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지만,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서울대 총장이란 자리가 정말로 별 것 아니라서 그런가? 아니다. 그동안 총장의 역할과 구실이 적잖이 왜곡돼 왔기 때문이다.

‘서울대총장이었던 것’과 ‘총장 아니었던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운이 좋거나 조금 부지런하면 장관자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운이 많이 좋거나 그보다 더 부지런하면 총리자리로도 갈 수 있다. 장관 ‘급’이나 여타 대학총장 자리로 이동하는 것은 별 일도 아니다. 역대 서울대총장의 ‘총장 그후’를 한번 살펴보면 쉽게 확인이 된다.

그쯤 되니 3·4수를 해서라도 도전한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 동문이나 재학생조차 별로 관심도 갖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말 그럴 정도로 서울대총장이란 직책이 하잘 것 없단 얘긴가? ‘결단코’ 아니다.

서울대는 개교 이래 우리 사회의 지성을 대표해왔을 뿐 아니라, ‘민주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직간접으로 큰 기여를 해왔다는 평을 들어왔다. 대다수 국민들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인재를 육성해 달라는 기대를 서울대에 갖고 있다. 서울대총장은 그런 국민들의 기대·열망을 가장 많이 받는 서울대의 대표인 셈이다.

그런데 서울대가 지금 시점에서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긴 쉽지 않다. 지난날 서울대 출신들은 자기중심적(Egotistic)이긴 해도 이기적(Egoistic)이란 얘기는 듣지 않았다.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 물으면 선뜻 “아니다”라고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해법도 여럿 있을 것이다. 회사에선 사장, 기관에선 기관장, 집에선 가장의 역할과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 그에 따라 구성원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에선 바로 총장이 그렇다. 혹자는 대학사회 특히 서울대에선 그게 그렇게 잘 안된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는다. “당신이 뽑은 총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던가요? 아니라구요? 그럼 왜 그런 총장을 뽑으셨나요? 그 총장을 지지하지 않았다구요? 그럼 당신이 지지한 사람이 뽑혔다면 어땠을까요?”

왜 대학사회, 특히 서울대에선 그게 안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준비 안 된 후보가 뽑혔거나 준비 된 총장감은 이러저런 이유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현행 서울대총장 선출방식이다. 하지만 어쩌랴, 선거가 코앞에 닥쳐 있으니 별 방법이 없다. 지금 총장 예비후보자로 올라 있는 5명 가운데 한명이 뽑힐 게 분명하다.

서울대에는 매년 수천억원의 정부 출연금이 투자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총장선거 과정을 보면 서울대는 변화와 개혁과는 무관한 것 같다. 이명박 정부 시절 부실하게 진행된 ‘서울대 법인화’ 이후 발전은커녕 변화도 지지부진한 채 학내외의 신뢰를 잃고 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제대로 된 진단도 없다. 이 문제에 원인을 제공했던 사람들이 서울대를 이끌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예비후보 5명이 내놓은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대동소이하다. 좋게 보면 서울대발전에 대한 교내의 컨센서스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공감대를 이룬 정책을 구체적·실질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총장을 뽑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사회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조금 심한 말로 하면 변화하기보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훨씬 좋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문제가 안 되던 이슈가 요즘엔 중요 이슈가 된다. 지난 봄 서울대총장 선거가 파행을 겪은 끝에 무산된 것도 서울대가 세상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무지했거나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풍지대인 까닭이었다.

일부 보도를 보면 부실하게 진행된 서울대법인화 과정에 책임 있는 이도 후보로 등록해 예비심사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한다. 또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겸직했던 후보도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런 분이 굳이 총장에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회사 CEO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본인이나, 이를 보고 배울 학생들을 위해서도 낫지 않을까?

1980년대 서울대를 다녔던 동문이자 언론인으로서 나는 서울대총장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한다. 서울대총장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들이다.

-강의실이나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해보기

-졸업식 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학생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악수해주기

-하루 1시간은 교수·학생·교직원과 만나 대화 나누기

-1주일에 한번은 학생식당에서 식사하기

-외국유학생들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 들어보기

-총장공관을 대학 구성원과 동문 등에게 자주 개방해 브레인스토밍 공간으로 활용하기

-도서관에 종종 들러 책 대출도 해보기

-골프와 주식투자에 빠진 교직원 발견되면 차 한잔 나누며 왜 그런지 물어보고 자제 당부하기

-양심과 양식·상식에 따라 용기를 갖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 할 얘기는 꼭 하기. 이를 통해 갈등해결의 선봉장이 돼주길.

-퇴임 후엔 국민들이 닮고 싶은 ‘큰바위얼굴’로 여생 보내기

-무엇보다 대학의 본질과 기본을 늘 잃지 않고 지켜내기

-지적 호기심과 지혜를 사모하는 삶의 태도를 간직해 주기

-학교발전기금 모은다며 기업인들 만나 식사하고 골프치지 않기

-기업과 기업인은 서울대가 사회에 의미있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 언제나 학교발전기금을 낼 준비가 돼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

-임기 후 장관이나 장관급 자리, 정치인 등으로 전업하지 않기

이제 며칠 후면 서울대총장에 누가 될지 윤곽이 잡힐 것이다. 때로는 시대와 더불어 숨쉬며 때로는 시대흐름을 선도하는 분이 총장에 선출되면 정말 좋겠다.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하며 미래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겠다. 이번에 기회를 얻지 못한 네 분의 후보들과 가슴 활짝 열고 머리 맞대면 해결 못할 일은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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