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우’ 배한성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이 글은 28일 별세한 성우 배한성씨의 모친 홍승희님(94세)를 추모하며 고인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빌어 작성된 추모글입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자랑스런 내 아들 배한성, 지인 아범. 어제 아침 자네와 나는 이승과 저승이라는 경계를 넘었구먼. 참 긴긴 세월 오래 살았어, 난. 자네 네 살, 한익이 두 살 때 그 사람 북한으로 떠나보내고 근 70년이 흘러갔네.
지인이 아범, 20대 중반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생이별한 내 심정, 어느새 고희 넘은 자네도 이해해주리라 믿네.
나는 화성군 남양 부잣집 딸로 태어나 소학교 가기도 전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지만, 할머니 슬하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 그 할머니께서 별세하신 후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서울여상을 마치고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자네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으니 행복은 늘 내곁에 있는 줄 알았다네. 그때가 해방 직전이었지. 그런데 웬 걸 자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지. 그분이 삼팔선을 넘어 북으로 가고, 영영 마지막 길이 되면서 우리 집도 풍비박산이 되었지. 자네 겨우 다섯 살 때 일이지.
막막하기만 했어. 그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여느 아낙네들처럼 삯바느질도, 구루무 장사도 할 줄 몰랐지. 집에 갖고 있던 패물을 팔아 끼니를 해결했는데, 그것도 자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다 떨어졌지.
자네는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요즘 말로 소년가장이 된 거지. 못난 어미 대신 동생 한익이랑 우리 세 식구 먹여 살리려고 거리로 나서야 했지.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네.
한성이 내 자랑스런 아들. 못난 어미가 돌보지 않았어도 자네는 1966년 TBC 공채로 성우의 길에 들어섰지.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는가?
작년 봄 자네가 성우 인생 50주년을 맞은 신문기사를 읽고 얼마나 기뻤는지···. 당시 조선일보 인터뷰에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란 제목이 보여, 나는 또 가슴이 미어졌었다네.
신문을 보며 자네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새삼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네. 신문에는 이런 대목이 실렸더군.
“초등학교 졸업하면서 선생님께 휘문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거긴 너희 집에서 버스를 네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인데 버스비는 있느냐. 그냥 걸어 다닐 수 있는 학교에 가라’고 하셨죠. 그래서 고명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갔어요. 덕분에 6개월은 월사금을 안 내고 다녔지만, 그래도 학비와 쌀과 연탄값까지 다 제가 벌어야 했죠. 남대문 인력시장에 가서 지게꾼들 도와주면서 푼돈을 벌었고 과외선생도 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매일 연탄 두 덩이에 봉지 쌀이나 밀가루 한 줌 사서 집에 가면 어머니가 그걸로 죽을 끓이거나 수제비를 해줬죠.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내가 늘 초조했던 것 말이죠. ‘쌀이 떨어지면 어쩌지.’ ‘연탄 살 돈을 못 벌면 어쩌지.’ 어릴 때부터 늘 그런 불안을 안고 살았죠.”
내 사랑하는 아들 한성이.
성우인생 50년,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한 20년간 자네가 겪은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네.
누구나 그렇듯 성공과 실패는 교차하는 것이지만, 자네는 은혜 갚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을 삶의 자세요 목표로 삼고 있지. 어미로서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네. 내가 홀가분하게 자네 곁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마 자네의 보은(報恩) 심성 때문이 아닌가 싶네.
세상 인심이 아무리 험해도 한가지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게 바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인데, 자네가 그걸 참 잘 하니 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네.
내 자랑스런 아들, 사랑하는 한성이.
내일이면 나는 이승을 영원히 떠나가네. 화장한 다음 인천앞바다에 뿌려달라는 내 부탁 들어줘 고맙네. 이제 67년 전 헤어진 자네 아버지, 내 사랑하는 남편 만나러 갈 시간이 다가오네.
어린 시절 낳고 자란 남양 그곳에서 내일 마지막 한줌으로 떠날 그곳이 아마 백리 남짓 채 안될 걸세.
내, 자네 아버지 만나면 자네 자랑 맘껏 할 걸세. “당신 아들 대한민국 최고 ‘국민성우’ 배한성, 당신도 알고 계셨수?”
*추신―작년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기자가 자네에게 “아직도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까.” 물으니 이렇게 답했더군. “아니요. 어머니가 물려준 결핍 덕에 지금까지 내가 달려왔으니 이젠 괜찮아요. 어머니는 돈 벌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여고 시절에 봤다는 영화 이야기를 실감 나게 밤마다 들려주고, 가끔 귀신 영화 얘기를 할 때면 흥이 나서 소복을 입고 식칼까지 입에 물고 연기를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물려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알죠. 내 감성과 끼를 물려주신 건 그래도 어머니라는 걸.”
고맙고 미안하네. 내 사랑하고 자랑스런 아들, 한성이 민수 아범. 잘 있게나.
- KBS 성우로 근무할 때의 배한성씨와 동료들. 맨왼쪽이 배한성 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