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63] 드루킹, 5년 전 안철수 공격 위해 ‘MB 아바타’ 별명 붙여
5년 전 제19대 대통령선거 때의 에피소드 하나. 4월 23일 열린 제3차 TV 토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느닷없이 이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안 후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무슨 뜻인지 거듭 되물어봐야 했습니다.
원래 ‘MB 아바타’는 안철수 후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 ‘MB 정권의 나팔수’라 불리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별명이었습니다. 또 ‘여자 MB’라 불리던 나경원 의원을 향해서도 가끔 쓰였습니다. 19대 대선에선 드루킹이 안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MB 아바타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널리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자신이 ‘MB 아바타’냐, 그리고 ‘갑철수’(‘갑질하는 안철수’라는 뜻)냐 물어보면서 이 말이 알려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네거티브를 지적하려는 것이었지만 앞뒤 맥락 없는 질문이었고, 또 바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안철수는 MB 아바타’, ‘안철수는 갑철수’라는 부정적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비슷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TV 토론 직전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MB 아바타-갑철수’ 발언이 여기에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이날부터 안 후보 지지율은 가파르게 낮아졌고, 마침내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려 대선에서 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네거티브를 자기 입으로 직접 언급하는 실수가 불러온 참담한 결과입니다.
5년 전의 에피소드를 떠올린 건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연기’ 발언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위원장 노릇이 아니라 비서실장을 할 테니, 후보도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습니다. “후보가 선대위가 해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미숙한 후보에게 있다고 파악하고, 나름대로 고민 끝에 찾아낸 대응전략일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이준석 대표의 발언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들은 윤석열 후보가 바보라고 떠들어대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후보에게 고언할 수는 있어도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될 발언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킹메이커’, 그리고 ‘상왕’ ‘짜르’라고 불리웠습니다. 실제로 제19대 대선에서는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동안 실력이 없어서 김 위원장의 뒤에 숨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 위원장이 윤 후보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해서 연기를 요구한 걸까요?
대통령선거의 주인공은 시민과 후보입니다. 위원장을 비롯해 선대위 관계자는 선거운동의 주체일 뿐입니다. 선대위가 해준 대로 후보가 연기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건 주객이 바뀐 것입니다. 후보는 선대위원장의 아바타가 아닙니다. 오히려 후보가 한 발언을 정책과 공약으로 만들어내는 등 선대위가 후보의 뜻대로 움직이는 아바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연기 발언은 부지불식간에 시민을 우습게 보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럴듯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시민들이 거기에 넘어갈 거라고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발언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몸을 낮추고 사죄하고 머리를 조아려도 돌아선 시민의 마음을 되찾아올 수 없습니다.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다. 무능한 사람이 나라를 맡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김종인 위원장이 5년전 대선출마 선언 때 한 주장입니다. 김 위원장은 ‘무능한 사람’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앞장선 공동선대위원장이었습니다. 연기만 잘하라는 주문이 필요한 후보는 무능한가요, 아닌가요. 김 위원장은 뭐라고 대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