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약속의 땅’인가 ‘잃어버린 땅’인가
[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화장, 실크로드문학 편집장] 1948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동의 역사와 정치에 서 빼놓을 수 없는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 선언은 1차대전이 진행중이었던 1917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 성명서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의터전을 건설하겠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가 이 성명서를 냈을 당시, 팔레스타인은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성명서가 동봉된 편지는 1917년 11월 2일, 영국 유대교 공동체의 수장이었던 월터 로스차일드 경과 영국 시오니스트 연합(Zionist Federation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의 손을 거쳐 그해 11월 9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앞서 영국은 1914년 11월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직후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고, 더욱 큰 전쟁에서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시온니즘’을 지지할 것을 고려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독일-유대계 혈통의 금융 재정 가문으로,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아랍권 국가인 팔레스타인은 유대교의 시오니즘과 종종 분쟁을 일으켰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서방 국가는 이스라엘을 지원했으며, 소련과 이란,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원했다. 20세기에 수많은 정치적 대립과 군사적 충돌을 일으킨 이 분쟁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2010년에 발생한 ‘아랍의 봄’ 사건으로 아랍권 국가들의 정권이 불안정해지자- 대부분 종식되었다.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뿌리는 1945년 창설된 ‘아랍연맹’(Arab League)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아랍연맹의 주요 목적은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의협력을 강화하고, 회원국 간의 분쟁 또는 회원국과 제3자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랍 연맹은 1950년 4월 13일에 ‘합동 방어 및 경제 협력’에 서명하면서, 군사적 방어수단에서의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1948년에 일어난 아랍-이스라엘 전쟁(1차 중동전쟁)의 결과, 영국은 오스만제국에 승리하며 획득했던 팔레스타인에 위임통치령을 포기했다. 1948년 5월 14일 자정 이스라엘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하루 뒤인 5월 15일 아랍연맹 군대는 동맹국인 팔레스타인으로 진군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1948년부터 오랜 세월동안 주변의 아랍국가들을 공격해왔다. 이스라엘 전투기는 부대는 바흐르 알 바카르(Bahr Al Baqar) 지역의 이집트인 학생들과 아부 자발(Abu Zaabal) 지역의 공장에서 일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한 이스라엘 군대는 이라크에 위치한 핵시설을 폭격했을 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남쪽 영토를 수 십년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 아랍권 과학자들의 암살 배후에는 이스라엘 정보국이 있었다.
1948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주변국들 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1967년 이스라엘-아랍권 국가들 간의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어로 좌절을 뜻하는 ‘안-나크샤’(an-Naksah), ‘6일 전쟁’, 1967년 전쟁’ 등 다양한 명칭을 얻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이라는 시간 동안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지를 공격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전쟁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던 1967년 11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는 유엔 헌장 제6장에 따라 ‘유엔 안보리 242호 결의안’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안보리는 중동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를 표명하며, 전쟁에 의한 영토 획득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해야 하며, 모든 회원국들이 유엔 헌장 제2조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헌장 제2조는 회원국들의 주권은 모두 평등하며, 각 국의 영토권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무력행위를 금지한다고 말한다. 유엔에 속해있는 모든 국가들은 헌장에 따라 부과되는 의무를 이행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안보리 결의안 242호가 제대로 이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끈 아랍 국가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4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이 전쟁은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이라고도 불렸다. 욤키푸르는 유대교의 대속죄일이며, 유대교 신자들은 그 날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식에 임해야 한다. 이는 유대인에 있어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 가톨릭의 사순절과 같이 성스러운 날이다.
욤키푸르 전쟁의 전장은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이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동쪽 둑을 공략하고, 이를 통해 시나이 반도의 나머지 지역을 반환 받을 수 있는 협상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1973년 10월 마지막 전투가 끝난 뒤 일부 아랍권 국가는 이스라엘과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대다수 아랍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랍권은 이스라엘이 건국 이래로 식민주의와 패권주의 달성을 위한 군사기지 역할을 해왔으며, 아랍의 부를 약탈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멈추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며 영역을 확장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셰이크 자라(Sheikh Jarrah)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일가족을 강제로 퇴거시키고 정착촌을 확장하려 했는데, 이는 양국간의 악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셰이크 자라는 팔레스타인령 동예루살렘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국제법 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통제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일가족의 강제 퇴거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가운데,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도록 요구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참여한 공동성명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하르호마 지역에 정착촌 540개를 건설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촌을 확장하는 정책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국가의 수도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며, 팔레스타인이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는 데에도 큰 피해를 줄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그들만의 수도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라마단 기간 도중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정착민과 팔레스타인 원주민들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났다. 이내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사이의 충돌이 확대됐고, 현장에서 15명이 연행됐다. 인근의 정착촌에선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유엔인권위원회 의장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들에게 갈등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칠레 대통령을 역임한 미첼바첼레트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은 “양쪽 진영의 지도자들은 갈등을 가라앉히기 보다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만 하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바첼레트의 이 발언은 가자지구의 ‘알자지라’와 ‘AP’가 이스라엘 군의 폭격을 당하기 직전에 전해졌다. 유엔 팔레스타인 사절단은 “언론사인 ’AP’와 ‘알자지라’ 사무실을 폭격한 것이 어떻게 정당방위가 될 수 있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점령국 이스라엘은 인간성을 저버린 이런 범죄 행각들이 언론에 알려지길 꺼리고 있다. 가자지구의 언론사 건물 마저 폭격 당하는데 일반 시민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성경 속 창세기에 언급된 ‘약속된 땅’의 국경인 나일 강과 유프라테스 강 -이스라엘 국기에 다윗의 별과 함께 그려진 2개의 파란색 줄- 사이에 있는 모든 지역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걸쳐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고, 영국은 1882년부터 1956년까지 이집트, 1757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었다. 이들 국가는 오랜 세월 한 국가를 점령했으나, 결국은 식민지배를 포기하고 떠났다.
작금의 이스라엘을 보라.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시한 채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으로부터 빼앗긴 것을 전쟁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인류가 전쟁을 통해 영토를 뺏기고 뺐었다면, 지금까지 주권을 지키고 있는 국가들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번역 김동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