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광야에서 누리는 가나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준과 원칙을 얼마나 지키며 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도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면 그곳은 광야나 다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광야를 걸어도 누군가는 이미 가나안을 맛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민수기 10장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민 10:12)

가장 무서운 집단이 목표만 있는 집단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목표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목표답게 만드는 것은 기준이고 원칙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중요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이라는 목표만 주지 않으셨습니다. 기준을 함께 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처음으로 했던 일은 시내산 앞에서 율법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시내산 앞에 머문 기간은 얼마였을까요? 아홉 달입니다. 출애굽기 19장부터 레위기를 지나 민수기 10장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9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집트 탈출 직후부터 따지면 1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에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했던 일은 성막 만드는 일, 십계명, 제사법, 민법, 형법 등을 숙지하는 일, 광야 이동간에 기억해야 할 주의사항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즉, 기준과 원칙을 정하는 작업을 먼저 한 것입니다.

민수기 10장으로부터 신명기 1장까지는 몇 년이 걸렸을까요? 40년입니다. 강산이 네 번 변할 시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다 늙어 죽었습니다. 광야 노상에서 태어난 2세대만 남았습니다. 이쯤 되면 과연 하나님이 이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려고 하시는 것은 맞나 하는 질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준과 원칙을 얼마나 지키며 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도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면 그곳은 광야나 다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광야를 걸어도 누군가는 이미 가나안을 맛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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