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가을의 전설’ 안도현···’깊어가는 가을에’

단풍 

완주군 경천면 대야리 저수지 물가에
빈 배 한 척 한가로이 매여 있기에
그 배 빌려 타고 단풍놀이나 즐겨볼까 싶어서
주인네 집을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주인은 낮술에 취해 허리띠 풀어놓고
마루 위에 붉은 고추 멍석으로 누워 잠들었고
주인 아낙께서 고추를 매만지다 하시는 말씀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고 헌다요?”
그 말씀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내 아내는
뒷걸음치다가 저만치서 막 불이 붙어서
그만 단풍나무 한 그루로 타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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