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민주화 긴급점검-2] 수단 군부, 권력욕 이번엔 꺾일까?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기자] 제1편에서 수단의 역사적인 배경 및 독립 직후에 들어온 1차 군사정권의 붕괴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1964년 이후 수단의 정치상황과 지난 30년 동안 정권을 장악했지만 현재 체포된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을 살펴본다.
1964년 출범한 수단의 첫 공식 문민정부의 핵심이 마흐디 파의 움마당이다. 1965년 움마당은 총선에서 승리를 얻었다. 마흐디 파는 국회를 장악했고, 상징적인 자리에 불과했던 대통령 자리는 세속주의를 표방했던 민주통일당에 양보했다.
1960년대 중반 수단 국내 상황은 독립 직후의 상황과 매우 유사했다.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가 다시 한번 정치에 개입했다. 이번 주인공은 가파르 니메이리였다. 1969년 쿠데타로 수단에서 정권을 잡은 가파르 니메이리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같은 인물이다.
나세르처럼 당시에 이집트에서 정권을 단일정당제로 장악한 아랍 사회주의 연합당과 비슷한 정당을 창당한 니메이리 대통령은 1985년까지 수단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는 우선 남수단 문제를 일부 해결하며 경제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면서 국내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이에 니메이리는 지지 회복을 위해 이번에는 이슬람주의를 전파했다. 처음에는 마흐디파와 세속주파를 견제하는데 있어 나름 도움이 되었지만, 그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선포하자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고 있던 남수단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됐다. 니메이리 대통령 역시 자신에 앞선 아부드처럼 남수단 문제로 권력을 잃게 되었다. 1985년, 쿠데타를 당한 니메이리는 이집트로 망명을 떠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민정이양을 선언했고, 1986년 마흐디파가 민주주의적인 절차로 다시 한번 정권을 잡았다. 움마당에서 출마해 총리로 선출된 사람은 한 때 수단의 지도자였던 무함마드 아마드의 증조손주인 사드크 알 마흐디였다. 마흐디 파의 움마당은 수단에서 가장 조직적인 정당이었지만, 수단을 대표하는 다수당이 아니었다. 그 당시 세속주의파의 민주통일당도 있었고, 기타 종교 공동체들의 통합당인 국민이슬람전선당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판의 모습은 다름이 없었다. 움마당은 국회를 장악했고, 민주통일당에게 역시 대통령직을 주면서 권력 싸움을 버리고 있었다.
군부는 무능한 정치에 다시 개입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지지 세력을 찾았다. 바로 국민이슬람전선당이었다. 1989년에 오마르 알바시르가 국민이슬람전선당의 지지를 받으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아주 쉽게 물려 받아 30년 동안 장악할 수 있었다.
알바시르는 90년대 중반까지 국민이슬람전선당과 함께 갔지만, 중간에 배신을 하고 자신의 종교 공동체와 함께 정당을 세웠다. 바로 국민의회당이다. 그러나 지금 알바시르와 함께 국민의회당의 고위급 관료들은 모두 체포된 상황이다.
군부는 며칠째 정권을 장악했고, 군부 내에서도 빠르게 지도자가 변하고 있다. 시위에 나선 마흐디 파의 움마당, 세속주의파의 민주통일당 그리고 국민이슬람전선의 후예인 국민의회당은 동시에 군사 정권을 거부한다고 외치고, 문민정부를 촉구하고 있다.
결론은 현재 군부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문민 정부로 갈 경우, 이 세 세력이 다시 한 번 화합을 이루지 못해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보인다면, 군부에서 누군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남수단이 독립되었다고 해서 수단에서 모든 안보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푸르 문제가 있다.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까지 겪고 있는 수단의 시민 정치는 오늘날 더 큰 문제에 대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