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관악대상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기업에 위기 아닌 때는 없다”
소재부품부터 신약까지 개발···ROTC 1기로 군복무
[아시아엔=김남주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허진규(서울대 금속공학59학번) 일진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원조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ROTC 1기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67년 전 재산 30만원으로 일진금속공업사를 창업해 연매출 3조원대 국내 최고의 소재·부품회사로 일구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 공업용 다이아몬드 등 일진이 개발하는 소재 부품이 400개가 넘는다. 2010년에는 캐나다 신약 개발회사인 ‘오리니아’에 투자해 바이오산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리니아는 미국 나스닥과 토론토 증시에 상장돼 있고, 일진이 1대 주주다. 현재 난치병 루프스신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허진규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 51년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소재부품 분야에서 묵묵히 엔지니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며 “실패를 두려워 않고 도전한다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했다.
일진은 날 일(日)자에 나아갈 진(進) 자를 쓴다. 하루하루 조금씩 전진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 국제 유가 하락 등 세계경제가 좋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는 정신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허 회장은 “일진그룹은 오히려 위기 때 성장하는 기업이다. 더욱이 기업에게 위기가 아닌 때는 없다”며 “우리 회사의 사훈인 능동 정신을 바탕으로 불투명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소재 부품 외에도 오래 전부터 바이오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0년경 120억원을 투자해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벤처 ETEX를 인수한 바 있다. 2018년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바이오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선언했다. 캐나다 회사인 오리니아에 투자한 배경에 대해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10년 전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관한 공부를 하던 중 면역억제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반드시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더군요. 오리니아가 최근 개발한 치료제는 난치병인 루푸스신염 약입니다. 지난해 12월 3차 임상에 성공했고, 올 하반기 미국 FDA(식품의약국) 신약 허가 신청 절차에 들어갑니다.”
학군단 1기인 허 회장은 1990년 서울대 신소재 공동연구소 건립기금 23억원을 비롯해 공대 ‘한우물 파기로 홈런치기’ 프로젝트에 9억원을 쾌척하는 등 총 50억원을 기부하며 이공계 인재 육성에 애정을 보여줬다.
자신의 금속공학 전공과 관련해 그는 “당시 주변에서는 성공이 보장된 의대를 가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애국하는 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해방은 됐지만 식민지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나의 판단이었다”며 “개인적으로 갑론을박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과학과 수학을 좋아하며 한 가지에 몰두해 완성해 내는 적성도 전공 선택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ROTC 복무도 애국의 길의 연장선이었다. 허 회장은 우수 인력의 공대 기피현상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때는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었다면 21세기에는 외국과의 기술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들이 바로 애국자”라며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공대생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한국 코스타리카 친선협회장,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공대동창회장, 서울대총동창회 부회장으로 동창회 활성화에도 기여한 그는 2016년 서울대 공대의 ‘우리가 닮고 싶은 공대인’에 선정됐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처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