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봄 소식 들으며 ‘나’는 눈속에 ‘나’를 묻었다

3평 이 공간이 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에겐 가장 아늑한 보금자리다.

<아시아엔> 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가 10일 아래와 같이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저는 허리디스크가 갑자기 심해져 신경차단 수술을 받고 어제 퇴원했습니다. 지금은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를 쓰고 있는데 끝나는 대로 송고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발취한 것인데 남과 다르게 사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묻는 독백이어서 송고하오니 감수 바랍니다.”?90평생을 자연과 함께 해오신 박상설 선생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편집자>

[아시시아엔=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오지 산속으로 접어들었다. 온 세상이 눈꽃으로 장원(莊園)하다. 아이젠의 뽀드득 소리와 새들의 재깔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눈송이가 소담스레 내려앉는다. 눈에 파묻혀 온통 휘황찬란한 상고대가 새 하얗다.

구석진 산골에 터진 홈런…. 눈 세상 대박이 터졌다! 설국(雪國)이 한 살을 보태주고 새봄을 맞았다. 짐짓 숨겨진 몽한(夢閑)한 세상에 있다. 저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태어난 자리에서 인간 문명보다 더 찬란하게 사는 숲의 방식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연의 일을 뭐라고 조잘대봐야 천지운행은 그대로일 것이다. 숲에 들어 독백한다. 자연은 불필요한 것을 완전히 제거한 비선형 스펙이다.

박상설 전문기자는 한평짜리 텐트면 몸도 마음도 안식할 수 있다고 했다

눈 페스티벌! 여기저기 왔다 사라지는 순백 단청에 탄복하며 ‘나’라는 주어를 버리기로 했다.

봄 햇빛이 들면 저 아름다운 설국은 스러져 계곡으로, 강으로, 바다로, 안개로 알 수 없는 먼곳을 향해 종적을 감출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떠다니며 만물에 생명을 주는 물(H2O)! 그들은 양성자?분자를 온 누리에 뿜어대는데 우리의 눈에는 하잘것없는 흰색으로만 보인다. 물은 꿈과 도원경(桃源境)의 조상인 눈, 안개, 구름, 비인데 이를 몰라 보는 인간을 향하여 통곡할 것이다.

날 풀리고 여름이 되면 온 하늘을 향해 잎을 나풀대며 태양아 바람아 하면서, 비 내리는 날에는 ‘싸이 춤’ 흔들어대는 푸르름 밑에서 묵는 조촐한 노숙이 그립다. 도시는 이제 위태로워 보인다. 저편에서 오가는 여백 바람을 타고 시린 가슴 온데간데없다. 조화무궁(造化無窮)한 숲에 팔려,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번개처럼 폭풍우처럼 잘도 살아왔다. 늘 무엇인가에 팔리다보니 그저 맥없이 닥쳐올 마지막 그날도 피해 갈 수 있는 양 그렇다는 얘기다.

겨울은 소멸의 시간만은 아니다. 오대산 줄기 홍천 샘골의 산골은 영하 20도의 한천(寒天)이다. 칼바람에 맞서 하늘을 몰아쉬어 하얀 입김으로 가슴을 턴다. 여위어가는 움막 캠프 난로에 장작을 지피고, 살아 있음을 고맙게 여기며, 뜨거운 방 아랫목에 누워 눈 속에 뒹구는 호사를 상상한다. 혹한의 모색(暮色) 속에 홀연히 나타나 마주한 석양…. 장려한 서쪽 연봉의 낙조를 휘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겨우내 쌓인 눈을 치운 삽 한자루 우뚝 서있다

겨울은 이제 그냥 쓸쓸한 퇴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한 사나흘 동안 흐벅지게 눈이 내려서 움막 캠프 추녀까지 깊이 묻혔다. 이제야 겨울과의 고요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겨울은 눈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은 매양 소멸과 끝의 시간만은 아니다. 눈 덮인 산속의 모든 생명이 휴식과 절제의 시련을 통해 생성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런 자연성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존 패러다임이다.

눈에 갇힌 나는 샹젤리제 왕국의 성주다. 밋밋한 삶을 못 견뎌하는 나는 부족한 호기를 채우기 위해 엉뚱하게도 한평생 산속을 쏘다니며 나만의 자유와 홀로서기 왕국을 만들어왔다. 내가 일구어온 53년 동안의 주말레저 농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오지 산속에 숨은 나만의 소국(小國)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낙원이자 피난처이기도 하다.

나는 광야에 버려진 낮은 자로 살고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세계를 향한 ‘도전과 모험의 격(格)’이라 여긴다. 나는 나의 생애와 감성과 문화의 높은 밀도에 가닿는 모든 것을 걸고, 사유와 행위를 묶어 생을 이끈다.

오대산 600고지에서 강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맞는 금강송. 지난 2015년 <아시아엔> 창간 4돌을 맞아 심은 것이다.

신비의 눈 속을 새벽 2시 꿈속까지 실어가고 싶은 상고대 눈길을 걸었다. 신비의 눈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고향에 섰다. 다시 한 번 아름다움의 마력과 늙음의 매력에 고개 숙인다. 내 목적지는 집이 아니다. 이별을 고하며 바보처럼 집으로 왔다. 바람이여, 상고대여! 그대 품속에서 이슬로 얼고 싶다. 순백의 꽃핀 가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도 나도 방랑의 길은 끝을 보리라. 나의 발길은 추워에 떠는 앙상한 숲으로 다시 향할 것이다. 추위와 바람을 비웃으며 소복이 쌓인 눈에 있는 것으로 족하다. 고생에 몸 바쳐야 하는 삶을 내가 알기에 그렇게 간다. 내가 겪어온 삶보다 더 위협받는 삶은 마지막 산화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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