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70년 만해스님께 여쭙니다···승려결혼 허용건의·독립선언서 공약삼장 작성 등

[아시아엔=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만해스님! 스님이 이 땅을 떠나신지 어언 70년이 넘었습니다. 스님은 적멸의 세계로 가셔서 열반에 드셨습니까? 아니면 스님이 자주 독립을 염원하던 민족의 분열과 나라의 분단으로 인해서 아직도 조국 강토의 하늘을 떠나시지 못하고 있나요?

저는 스님에 대한 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는 백년서생입니다. 근현대 불교사를 공부하면서 스님의 삶, 사상, 지성 등의 일체를 복원하는 것에 뜻을 세운 학자입니다. 그래서 스님에 대한 3권의 책과 20여 편의 논문을 썼으며 스님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만해학회 회장의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이 나온 동국대에서 학생들에게 만해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스님이 계신 곳을 담박 찾아가서 여쭈어 볼 내용이 많습니다. 스님을 연구하면서 풀리지 않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통하여 스님에게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을 질문 드리오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지금 불교계에서는 스님이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 1회 졸업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학적부가 소실되어 그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스님은 명진학교 3개월 과정의 보조과 출신이 맞습니까?

두 번째는 스님은 불교의 존립의 일환으로 스님들의 결혼을 허용해달라고 구한국 정부의 총리인 김윤식에게 건의서를 1910년 5월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나라가 망한지 불과 한달 밖에 안 된 1910년 9월 말에 스님은 일제 통감부 책임자에게도 승려 결혼을 허용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하셨습니다. 국망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지사는 음독자결을 하고, 독립운동가들은 만주로 떠나던 그 시절에 승려 결혼의 허용이 그렇게 긴박한 일이었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대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스님이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을 작성하여 추가시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공약삼장을 포함하여 독립선언서 전체를 육당 최남선이 작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스님이 정말로 공약삼장을 지었는지요.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네 번째는 스님의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한 시 88편은 언제 쓰신 것입니까? 수년 간에 쓰신 것을 모아서 출판한 것입니까? 아니면 1925년 여름에 한꺼번에 다 쓰신 것입니까? 스님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를 단정하지 못해 설이 분분합니다.

이상과 같은 저의 궁금증을 알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스님을 연구해보니 스님에 대한 호칭이 시인, 독립운동가, 선승, 큰스님, 혁명가, 전인, 영웅 등 60여 건에 달합니다. 스님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어느 것이 참다운 스님의 이름입니까?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조종현 선생은 “만해는 중이냐 중이 아니다, 만해는 시인이냐 시인도 아니다, 만해는 한국 사람이다. 뚜렷한 배달민족이다. 독립지사다. 항일투사시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삼천리> 6호(1930.5)에 기고한 ‘나는 왜 승이 되었나’에서 스님이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나는 왜 승(僧)이 되었나? 내가 태어난 이 나라와 사회가 나를 승이 되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던가. 또는 인간세계의 생사병고(生死病故) 같은 모든 괴로움이 나를 시켜 승방(僧房)에 몰아 넣고서 영생과 탈속(脫俗)을 속삭이게 하였나. 대체 나는 왜 승이 되었나? 승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였나? 또 무엇을 얻었나? 그래서 인생과 사회와 시대에 대하여 어떠한 도움을 하여 왔나? 이제 위승(爲僧)이 된지 삼십년에 출가의 동기와 그 동안의 파란과 현재의 심경을 생각하여 볼 때에 스스로 일맥(一脈)의 감회가 가슴을 덮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처럼 스님도 입산 출가하여 다양한 활동을 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자답을 하여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민족의 독립운동, 민족문화의 재건을 위해서 헌신한 불교개혁은 아직도 한 치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한 상황입니다. 명리와 탐진치에 빠진 일부 몰지각한 스님들의 행동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스님에 대한 책과 논문이 1천여건에 달하고, 재발간된 시집 <님의 침묵>도 80여종에 달하고, 박물관도 3곳에 있고, 전국에 세워진 스님의 시비가 30여 곳에 달하며, 스님의 정신을 기리는 만해축전이 매년 개최되고, 세계적인 위상을 갖는 만해대상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지성과 사상을 기리는 터전인 만해마을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참다운 선생, 지사, 지식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스님의 뜻을 진정성 있게 따르지 못하고, 껍데기들이 모여서 스님의 이름만 들먹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여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상좌인 춘성스님이 1960년대에 스님의 추모 사업을 추진하는 부류들에게 “저 새끼들은 만해스님의 뼉다구를 팔아 먹는 놈들이다!”라고 호통을 쳤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저는 스님의 정신을 참답게 계승하는 일과 스님의 연구에 매진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오늘은 여기에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궁금한 점을 다시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공부가 미진하고, 망상을 피우게 되면 매서운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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