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로 예정된 박근혜-시진핑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격상시키고 동북아의 새로운 정세에 대응하는 기본방향을 설정할 소중할 기회다. 중국은 13억 인구와 GDP 6조달러를 넘는
Category: 한반도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④ 대통령서 사단장까지 군 지휘체제 ‘엉망’
6·25때 전군이 통합·조정되지 못하고 각급 지휘관의 의지와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시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③ 소련군사고문단···’철저 준비’ 북한, ‘미군 철수’ 한국
1948년 12월 국방상 불가닌의 주재 아래 소련군 철수 후 북한군 증강에 관한 회의가 열려 중공군의 송환, 기갑부대의 증강 등이 확정되었다. 모스크바에서 결정된 인민군 증강계획을 추진하기
[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②’잊혀진 전쟁’ 아닌 ‘잊혀진 승리’
전쟁에 개입된 나라들이 그 입장에 따라 상이한 용어를 사용하여 온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싸운 태평양 방면의 2차대전을 미국은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지금까지도)
“인천상륙작전에 일본 전함 동원”
캐나다 참전군인 존 비숍 증언 6·25전쟁에 과거 일본군 인력과 장비가 대거 동원됐음은 유엔군 참전군인에게도 확인된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일본 전함이 사용됐다는 증언은 그동안 공식 확인되지 않은
[매거진N 특종] 6·25전쟁에 일본군 ‘참전’했다
*아시아기자협회와 아시아엔(The AsiaN)이 2013년 6월25일 오프라인매체 <매거진 N>을 창간했습니다. 일본이 세계대전 패전 후 ‘평화헌법’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에 참전했다는 소식을 국내 언론 최초로?매거진 N 창간호의 첫
[이병효 칼럼] ‘북침’은 ‘북한의 침략’?
박 대통령의 이해와 오해 박근혜 대통령이 고교생 다수의 ‘북침’ 응답에 대해 발끈한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첫째, 상식에 어긋나는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의심을 품기는커녕
[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①춘천회전···작전은 군인들 피땀으로
6월 25일 공격이 개시되자 북한군 조공집단인 2군단은 화천-춘천 및 인제-홍천 접근로에 각각 1개 사단을 지향토록 하였는데, 주공인 2사단은 춘천을 점령함과 동시에 신속히 이천을 경유, 수원으로
김계관 “북핵, 6자회담 등 대화로 해결하자”
북·중 첫 전략대화 개최…비핵화 협의 관계복원, 6자회담, 김정은 방중 등 거론된 듯 김계관 북·중 통상거점 다롄行 눈길 북한의 핵 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6자회담을
반기문-시진핑, ‘북핵·시리아’ 논의
시진핑 지도부 출범 후 첫 중국 방문 중국을 방문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 북핵과 시리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반
[김국헌의 직필] ‘커밍스의 6·25 기원설’에 대한 반박
1950년 4월 중순 바실리에프 중장을 단장으로 한 소련군 고문관이 평양에 도착하여 남침 작전명령을 작성하게 된다. 스탈린의 개입은 인민군 창설과 증강에서 작전명령을 작성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수준에까지
G8 정상 “시리아 평화회의 조기 개최”
15억 달러 인도적지원 약속…이란에 평화회의 참여 ‘간접촉구’ 공동성명에 ‘북핵 포기’ 촉구 명시…’탈북자 북송’도 첫 거론 주요 8개국(G8) 정상은 18일(현지시간) 시리아 유혈 사태의 조기 종식을 위해
북-중 전략대화 개최, 김계관 베이징 도착
북한의 핵 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18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 제1부상을 비롯한 북한 외무성 대표단은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께 베이징 수도공항에 도착해 귀빈 전용 통로로
[란코프 칼럼] 북한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도왔다고?
한국의 역사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과거사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가정해 보는 것은 항상 논란을 불러오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1960년경에 대한 서술을
[김국헌의 직필] 한국 진보의 수준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1937년 6월 보천보전투에 참가한 그 김일성인 것은 맞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다. 그는 1929년에서 1931년 사이에 김일성으로 개명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