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열어둔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한 마리 들어왔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귀뚤거리기에 무슨 말 하는지 들어봤더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고, 지난 여름은 얼마나 잘 살았냐고, 후회되는
Category: 오늘의시
[여류:시가 있는 풍경] 이현(二絃)을 듣다
구월 초하루 아직 아침이다. 이현(二絃)을 듣는다. 현이 적어 울음이 깊은가. 나는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 햇빛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오늘 눈부신 볕살 아래서 미루어둔
[오늘의 시] ‘아름다운 동행을 위하여’ 송해월
천천히 가자 굳이 세상과 발맞춰 갈 필요 있나 제 보폭대로 제 호흡대로 가자. 늦다고 재촉할 이 저자신 말고 누가 있었던가. 눈치 보지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오늘의 시] ‘내가 좋아하는 나팔꽃’ 박상설
내가 좋아하는 나팔꽃 후미진 곳에 소박하게 피어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보아주지 않아도 좋은 야생의 나팔꽃 가식 없고 바보같은 연한 색이 좋다 나는 나팔꽃과 함께
[여류:시가 있는 풍경]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
삶이 곧 이별이라고 말했지 이별도 연습하면 덜 서러울 수 있을까 바람이 없어도 꽃잎 떨어져 내리고 오래 머물 순 없을 거라고 말했지 붙잡아도 머무를
[오늘의 시] ‘만해마을’ 김영관
계곡은 물이콸콸 넘어가 숲이풍성 풍성한 숲가운데 보이는 전등하나 베란다 난간사이 떨어진 아침이슬 알람이 계곡소리 모든것 씻겨내려 조금의 분주함도 시끄런 체촉함도 한곳도 한무리도 아무리 둘러봐도 조금도
[‘와운’의 시선] 매미, 허물 벗다
삶과 죽음, 생사의 공존 한조각 구름이 흩어지듯 숨이 훅 바람결에 날라가듯
[오늘의 시]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황규관
천 길 벼랑 같은 사랑을 꿈꿀 나이도 지난 것 같은데 이 한여름에 목마름의 깊이가 아득타 영등포역 맞은편 사창가 골목에서 눈이 마주친 여인의 웃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오늘의 추모시] 낙엽 ‘홍사성’
낙엽은 가을에만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언제든 인연 다하면 허망하게 떨어집니다 오늘도 나뭇잎 하나 속절없이 떨어졌습니다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낙엽같은 인생입니다
[오늘의 시] ‘그날에’ 김영관
까만밤 사이사이 가득한 빗줄기로 한없이 쏟아붓고 그사이 포장마차 남자셋 그좁은곳 들어가 모여앉아 한잔술 부딪히며 뭐그리 즐거운지 빗사이 새어드는 요란한 웃음소리 따뜻한 우동국물 매콤한 닭껍질에 어느새
[여류:시가 있는 풍경] 섬(島)이 품은 섬
건너 보이는 바다에 섬이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섬은 언제나 뭍과 떨어져 외롭고 스스로를 품어 늘 고요했다 아직 자신을 품는 법을 알지 못한 나는
[오늘의 시] ‘8월’ 오세영
8월은 분별을 일깨워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맞춤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온 한낮,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오늘의 시]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오늘의 시] ‘교실에서’ 안도현
아버지에 대하여 말해보라 했는데 아이들이 운다 중학교 1학년 국어 말하기 시험 시간 약도 한 첩 못 써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내가 똥을 퍼도 공부시킨다 너는 큰물
[오늘의 시] ‘연꽃의 기도’ 이해인
겸손으로 내려 앉아 고요히 위로 오르며 피어나게 하소서 신령한 물 위에서 문을 닫고 여는 법을 알게 하소서 언제라도 자비심 잃지 않고 온 세상을 끌어 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