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통섭’의 생태학자 최재천,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사진=김남주 기자>

최재천 교수 “갯벌 놔둬야 자연도 살리고 돈도 아낀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국립생태원이 생겼다. 지난 3월 임시 개관해 일부 전시체험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에코휴머니스트’ ‘생태인문주의자’로 불리는 최재천(59)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선임됐다. 18일 공식 임명 발표가 나기 일주일 전 최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은 예쁘게 꾸민 따뜻한 카페 같았다. 두 벽면이 모두 책으로 채워져 있는데 서가 앞을 널찍이 비워 접근하기도 좋았다. 서가 곳곳에 책을 빌려간다는 학생들의 포스트잇 메모가 붙어 있었다. 생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책이 3000권쯤 되는데,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책도 많다고 한다.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1년에 300번쯤 강연 나가고, 꾸준히 칼럼 쓰는 ‘사회참여형’ 학자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그가 국립생태원장을 맡았다니 무슨 사연일까.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맡게 됐다.
“참여정부 때 갯벌을 개발해 산업단지를 조성해달라는 서천군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환경 마인드가 있어서 개발은 안 된다고 했는데 주민들이 시위를 계속하자 대안사업으로 생태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지금 해양생물자원관이 만들어지고 있고, 국립생태원은 그 일환이다. 당시 환경부장관에게 자연생태계만을 연구하는 곳이 부족하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의견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2008년에 환경부 용역을 맡아 1년간 국립생태원 총괄기획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초대원장까지 맡게 됐다.”

-이제 국립생태원이 있는 서천으로 가나.
“국립생태원장 임기가 3년이다. 대학에 휴직계를 내고 전념할 예정이다. 연내 정식 개원하려면 1달 정도밖에 준비기간이 없어 마음이 바쁘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는 수업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피해는 없지만 연구실에는 미안하다.”

-국립생태원에서 가장 중점을 둘 일은?
“지금까지 경제가 압축성장해 온 것처럼 학문도 균형발전을 못했다. 돈과 연결이 잘 된 분야는 발전이 빠르고 기초학문 분야는 느리다. 기초가 안 된 상태에서 응용만 하면 안 된다. 생태학은 환경을 보호하면서 돈을 아껴줄 수 있는 기초학문이다. 갯벌을 메우고 논으로 만들면 당장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겠지만 자연정화시설을 만들려면 다시 투자해야 한다. 갯벌을 그대로 두면 자연정화능력과 해산물 등 자연보호와 부수적 이익을 얻으니 돈을 아끼는 것이다. 생태학은 할 일이 많다. 서천군의 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도 이뤄야 하고.”

<사진=김남주 기자>

개발계획 때 ‘생태성’ 평가해야

최 교수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화두를 국내에 널리 알린 학자로 유명하다. 경계를 허물고 널리 통해야 한다는 통섭은 원효대사의 화쟁사상(和諍思想)과도 통한다. 한 우물을 파는 것보다는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는 것이다.

-통섭은 그동안 사회가 요구해온 ‘선택과 집중’과 어떤 관계인가.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나쳤다. 기업이면 몰라도 나라가 그러면 안 된다. 어느 정도는 떼어 잡초도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지금 먹는 벼·보리·밀도 예전에는 잡초였다. 잡초라고 쓸데없는 게 아니다. 우리 정부는 선진국에서 선택한 것을 열심히 뒤따라간다. 그러면서 1등을 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을 포함한 다양성 추구가 통섭이다.”

-화폐작가인 이종상 화백도 화학과 건축, 철학, 미술을 넘나든다. 노자를 전공한 최진석 교수도 경계를 넘나들며 흐름에 주목하라고 얘기한다. 잘 통할 것 같은데.
“그분들 만나봤다. 그들이 바로 통섭형 인재다. 예전에 우리 사회는 전공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만나야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21세기는 경제생태계가 하던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창의적인 것을 가져와야 한다. 창조경제라고 하는데 경계를 넘나들면서 창의적인 것을 꺼내놓는 것이 게임의 룰이 됐다.”

-세대 간에는 경계를 허물기가 힘들어 보인다. 시간차는 어떻게 해소할까.
“세대통합은 가장 어려운 문제다. 남녀갈등은 어찌됐든 봉합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세대갈등은 봉합선이 없다. 영원히 평행선이거나 점점 벌어지거나 막 나갈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왜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경로석 혜택을 주냐고도 한다.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 이미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라는 책에서 짚은 적이 있는데, 정치는 투표에 참여하는 보수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양쪽이 서로 상대 입장을 살피고 노력하지 않으면 풀기 어렵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생태학자로서 통합하는 방법은.
“500억 원 이상이 드는 개발사업을 하나 하려면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 20년간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KDI에서는 경제성이 있냐고 먼저 묻는다. 어린이가 박물관에서 공룡뼈를 보고 세계적인 공룡학자가 된다면 그 가치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지금도 제주 해군기지나 밀양 송전탑 등 경제성만 보고 추진하다 보니 주민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국립생태원에서 생태성 조사를 받도록 하고 싶다. 물론 반대도 각오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두 기관의 업무보고를 같이 받으면서 ‘지금까지는 보존과 개발을 놓고 싸워왔는데 두 부처가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성과 생태성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두 기관에서 받은 뒤 조율하도록 하면 좋겠다. 이것만 된다면 환경단체나 주민들이 목숨 걸고 농성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시아를 놓고 본다면 환경문제와 함께 종교, 인종, 민족 같은 경계에 갇혀 있는 것이 문제다. 다문화사회도 그런 면에서 경계허물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내내 열린 국가였다. 반도는 섬에서 대륙으로 거쳐가는 곳이라 고립이 불가능하다. 생태학자 입장에서 생물다양성, 유전자다양성은 좋은 것이다. 한국인은 전 세계 180개국 이상에 나가 사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민족이다. 함께 살면 유전자가 풍성해지고 강해진다. 다문화사회를 꾸준히 알리고 설득하면 축복이 될 거라고 본다.”

<사진=김남주 기자>

DMZ에 고가도로·생태관광도시 짓자

최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곤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에서 출간된 <동물생물학 백과사전>에서 무척추동물사회행동 부문 편집장을 맡았고, 최근에는 돌고래, 자바원숭이 등 영장류를 연구한다. 개미, 꿀벌부터 사람까지 그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生物)’을 탐구한다.

-제주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방류했다. 제돌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지난 7월18일 바다에 풀어줬는데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제주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에 110마리 정도가 사는데 새끼가 태어나는 속도보다 그물에 걸려서 죽는 속도가 더 빨라서 이대로 가면 다 사라질 거라는 우려가 있다. 유전적으로도 고립돼서 문제다. 일본이나 대만에도 같은 종이 있는데 다문화사회를 돌고래한테도 만들어주는 기획을 하고 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자폐행동을 보인다며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동물원이 없어지면 좋겠다. 시작이 잘못됐다. 유럽의 부자들이 희귀 동물을 집에 두고 으스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동물이 많아졌다. 서식지 환경파괴 때문이다. 자바원숭이도 남은 숲이 별로 없어서 사라질 것이다. 그럴 경우 동물원에서 살려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줄 수도 있다. 동물원은 생물보전센터로 기능이 전환돼야 한다. 지금처럼 백화점식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다 보면 그것이 흉이 되는 시기가 올 거다. 가둘 필요가 없는 동물은 자연으로 보내줘야 한다. 제돌이도 잘 지내는데 왜 보내냐고 비난이 많았지만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유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DMZ는 앞으로 남북이 오가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DMZ는 폭 4km인 좁은 띠에 불과하다. 벌써 도로만 7~8개 나 있다. 이렇게 쪼개기 시작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통일돼서 길 연결해야 한다고 길 내면 그걸로 DMZ 생태는 끝장난다. 정말로 보존할 생각이 있다면 전체를 한 통으로 살려내자. 고가도로를 놓으면 된다. 공중에 판을 깔고 도시를 건설하는 거다. 유리 바닥 아래로 DMZ에서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쪽으로 냈던 길도 다시 터서 고가로 만들고 바다로도 오갈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얘기를 꺼내고, 남북회담 어젠다로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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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인데, 유전자 남기는 게 본능인가, 죽기 때문에 살아남고 싶은 것인가.
“생물학자 입장에서는 사는 것 자체가 내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일이다. 나는 내 유전자의 수단이다. 목숨을 가진 생명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다. 유전자는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는 것이 목표다. 수컷의 행동에 그런 경향이 있다. 인간은 결혼제도가 있으니 일을 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번식이 본능이라면 죽음은 무엇인가.
“죽기 전에 <생명(Life)>이라는 6000쪽 분량의 책을 쓰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생명의 모습을 쭉 그리다 보니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체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죽음은 갈아타는 것이고 생명이 연속성을 갖는다. 삶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것도 아니지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죽음에 초연해진다. 내 DNA를 살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DNA를 죽이거나 다른 삶을 해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설과도 좀 비슷한 것 같다.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개체가 아닌 DNA의 일이라는 게….”

생물과 인문, 동물과 인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통섭’의 학자 최재천 교수의 다양한 관심사는 어느 것 하나 내용이 얕지 않다. 이야기는 더 남았는데, 어느덧 식사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의 ‘Life’를 위해 이쯤에서 멈추고, 다음을 기약했다. “서천으로 한번 오세요.” 최 교수가 만들어 갈 국립생태원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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