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우리 동네 ‘준이’ 이야기

우리 꽃동네에 가족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소한 정신적 장애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장애인이고 아닌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부랑인으로 지내다가 몸에 병이 생겨 우리 동네에 오면 얼마 가지 못해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단지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장애로 지내니 그 정도가 차이가 날 뿐이다. 한 1년 전에 작은 장애인 시설이 새로 생겼다. 그 동네는 우리 병원보다 약간 높은 언덕에 있는데 시설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그렇고, 그 크기가 아담하다 보니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시설이 개설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곳 자매님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환자를 데려왔다. 체구는 초등학생 1학년 정도. 물론 혼자서 절대 못 걷는다. 그냥 두면 여기저기 부딪힌다. 그런데 나이는 벌써 20대를 넘어서고 있다.

머리 모습은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얼굴보다 매우 크다. 나는 본래 이렇게 머리가 큰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같이 온 자매님은 자신도 근무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가 얼굴이나 체구에 비해서 크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부딪힌다고 한다. 반복되는 충격으로?두피가 두터워져 있고 피하조직도 매우 두터워져 보이는 것 같다.

조금만 한 눈 팔면 머리를 찧는다. 소리는 마치 짐승처럼 끙끙 거리거나 괴성을 지른다. 알 수 없는 몸짓과 돌발적인 움직임으로 돌보는 분들이 가끔 다치기도 한다.

오늘도 준이는 나의 진료실을 방문하지만 이미 1년 전부터 짓이긴 머리 상처를 들고 오기를 몇 번 반복하였다. 우리는 같이 온 자매님, 형제님, 그리고 외래 간호자매님이 땀이 범벅이 돼 상처를 봉합했다. 여느 병원처럼 생각하면 단순 봉합에도 안정제를 투여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장애인들은 결과 예측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국소마취로 단순 봉합을 한다.

때로는 한쪽 눈 언저리가 퍼렇게 멍이 들어오기도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너구리 눈이 되고도 여전히 킁킁거리거나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큰 사고 없이 지내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다.

오늘도 준이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검진하러 들렀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에구, 엑스레이는 어떻게 촬영하나?’하는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이미 1년이나 그를 돌본 자매님은 이제 별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말 솔직한 모습이다. 이들은 치장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유치한 것을 유치하다고 하지 않고,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이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보이니 만져보고, 냄새가 나니까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좋은 일을 한다면서 한편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이 있어서 나는 나의 존재가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믿음을 실천하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자신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고 한 분의 말씀을 묵묵히 행하는 이들이 참다운 사람의 모습일지 모른다.

음해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들 가족을 돌보는 분들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아마도 이해관계가 없는 세상에서는 그럴 것이다. 절대자로 향한 기도, 아니 기대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그분의 염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교회도, 절도, 회당도 참 많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신성한 곳에 모가 난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말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어디 쉽게 갈 수 있을까. 교회도, 절도, 회당도 아닌 곳에 있는 그 모가 난 사람들도 기도를 할 것이다. 자신들도 도와줄 수 있는, 베푸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준이에게 머리 한방 맞았다. 그저 가슴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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