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하얀 장미가 품은 ‘가시’

타이틀 :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Sophie Scholl : Die letzten Tage, Sophie Scholl : The Final Days)

감독?: 마르크 로테문트
출연 : 줄리아 옌체, 파비안 힌리히스
제작국가 : 독일
개봉?: 2006년

너희가 자랑스럽다

곧 단두대 처형을 당할 여대생 소피 숄에게 짧기만 한 마지막 면회가 허용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면회실에 와 있습니다.

소피 숄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이 다시 생겨도 저는 같은 일을 할 거예요.
아버지 – 옳은 일을 했다. 너희가 자랑스럽다.
어머니 – (딸의 볼을 어루만지며) 오, 내 딸아….
소피 숄 – 엄마, 엄마가 계셔서 힘이 됐어요.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로) 집에 다시는 오지 못하겠구나.
소피 숄 – 영원 속에서 만날 거예요.
어머니 – 잘 가거라. 소피아.
소피 숄 – 예, 엄마두요.

생사를 가르는 생이별 앞에서도 가족들 그 누구도 통곡하지 않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이들의 대화를 자신의 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그대로 살려냅니다. 젊은이의 당당한 죽음에 인위적 표현 하나 보태지 않고 맑디맑게 추모했습니다.

지성과 휴머니즘이 숨죽일 때

독일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이 2005년에 영화화했습니다. 인류사 전대미문의 대학살이 벌어지던 2차 세계대전 말. 히틀러가 득세하던 독일은 게르만 민족우월주의를 내세운 나치의 깃발로 뒤덮였습니다. 양심에 따른 지성과 휴머니즘은 침묵 속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만 600여만 명이 집단학살 당했으며 사회주의자, 슬라브인들, 집시, 장애인 등 집단적 인명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독일 뮌헨대학교 철학과 학생 ‘소피 숄’의 이야기입니다. 게쉬타포에게 잡혀 처형당하기까지 생애 마지막 6일 간의 일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실화가 차분하게 재현됩니다. 소피 숄의 맑은 영혼이 빚어내는 신념은 독일사회를 구원한 한줄기 인간성의 승리였습니다. 영화는 200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소피 숄과 오빠 한스 숄의 이야기는 한국에는 1978년에 소개됐습니다. 국내 출판사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내놨습니다. 이 책이 태어난 독일에서의 원제목은 ‘백장미’(Die Weiβe Rose).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많이 읽혔습니다. 지은이 잉게 숄(Inge Scholl)은 이 책의 주인공들인 한스 숄(Hans Scholl, 의대생), 소피 숄(Sophie Scholl, 철학과 학생)과 같은 형제. 누나이자 맏언니인 잉게 숄은 두 동생들의 저항과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광기에 맞서 뮌헨지역 대학생 저항조직을 만들어 나치 체제를 고발하다 사형에 처해진 동생들. 그 저항조직 이름이 ‘백장미단’입니다.

1차 세계대전서 패전한 독일은 정치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경제는 피폐해져 거리는 수백만의 실업자로 넘쳐납니다. 이런 혼돈을 틈타 1933년 히틀러는 수상으로 취임해, 독일 국민들에게 경제 부흥과 독일민족 지상주의를 약속합니다. 혼란기 독일국민들은 환상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떠오른 히틀러에 열광합니다.

유태인들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배타적 인종주의도 먹힐 만큼 독일 사회는 전체주의적 분위기로 굳어갑니다. 군비를 증강하고 군수공업에 올인하는 나치정권의 눈속임 경제성장에 독일인은 환호합니다. 파시즘이 괴력을 발휘하며 독일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즈음, “뭔가 이상하다, 이건 아니다”며 문제제기를 하는 청년들이 생겨납니다.

독일국민에게 고함

바로 독서클럽이자 비밀저항단체인 ‘백장미단’이 결성되고 밤새 타자기를 두드리고 등사기를 밀어 전단지를 만듭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를 갖지 못할 때, 마음속의 외침을 당당히 밖으로 표현하고 허위와 비양심을 고발하는 행위가 시작됩니다.

<뮌헨대학생 선언문 –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선언서를 썼습니다. 히틀러가 주창하고 나치체제가 떠받들면서, 조국 독일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으며 인류사회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고발문입니다.

1943년 2월18일. 백장미단 조직원들은 뮌헨 대학 내부에 반 히틀러 유인물들을 과감하게 배포합니다. 숄 남매는 대담하게 학교 중심건물 맨 꼭대기 층에서 하얀 전단지를 눈꽃송이처럼 날립니다. 곧바로 게슈타포(히틀러 비밀경찰)가 출동해 그들을 체포합니다. 나치는 숄 남매를 포함한 대학생 3명을 처형함으로써 더 이상 히틀러총통 체제에 도전하려는 시민의 용기에 쐐기를 박고자 했습니다. 체포 구금 심문 재판 처형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5일 만인 2월 22일 단두대에 눕혀지고 처형당합니다.

소피 숄의 실제 사진. 재즈를 좋아했던 청순한 여대생 모습입니다.

1943년 2월 22일. 교도소 여성 간수가 상부 몰래 이 세 사람에게 서로 한군데서 얼굴을 볼 수 있게 허락해줍니다. 간수는 소피 숄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고 세 사람은 한 모금씩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웁니다. 한스 숄(당시 26세), 소피 숄(당시 22세) 또 다른 핵심단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당시 24세)는 서로를 굳게 포옹합니다.

재판정에서 어린 소피 숄은 외칩니다.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한 것일 뿐이다” 오빠 한스가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외친 말은 “자유여, 영원하라!”였습니다. 나치는 1945년 5월 8일 패망합니다. 히틀러는 지하방공호에서 자살합니다.

나치를 무너뜨린 ‘내부의 가시’

이 땅에도 수십 년 전 독재 체제에 저항했던 푸르른 청춘들이 참 많았습니다. 숄 남매처럼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감했던 청년들. 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똑같은 학생이고 시민이었습니다. 양심에 충실한 것뿐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을 따라 “틀린 것을 틀리다”라고 표현하는 용기를 감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많은 젊음이 불꽃으로 타오르다 스러졌습니다. 오늘의 자유와 평화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턱대고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참으로 소중한 하나하나의 열매였습니다.

백장미단의 저항은 나치를 무너뜨린 ‘내부의 가시’가 되었습니다. 녹음방초가 짙은 기운을 내뿜는 시절, 붉은 장미덩쿨 속 가시를 가만히 만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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