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지하경제가 때론 ‘경제살리기’ 구원투수

지하경제 활성화 vs. 양성화

요즘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지하경제란 거래내역과 세금을 신고하지 않고 움직이는 경제를 의미한다. 매춘, 마약, 도박 같이 불법적인 것도 있지만 그냥 골목에서 이뤄지는 교환, 한국 부동산시장의 전세, 과외공부, 재래시장의 상당부분은 이런 것들이 오히려 더 크다.

지하경제는 ‘지상경제’의 상대어인만큼 부정적인 용어다. 그러나 지하경제도 큰 틀에서 보면 필요한 요소다. 경제에 일부러 이런 부분의 비중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될 필요가 있다. 불법의료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불량식품도 어느 정도 유통되게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되, 선을 넘어가면 ‘작살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는 합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게만 하면 절대로 정도를 넘어가지 않게 되어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전체 경제의 4분의 1 정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하경제의 규모를 측정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아마 현금 결제와 수요를 측정하여 역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쓴 듯하다. 경제학에서 참 재미있는 개념이 두 가지 있는데, 생산성과 지하경제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측정이 안 된다. 측정이 안되니 지하경제라고 하겠지. 생산성도 직접 측정이 안 된다. 그저 다른 것을 다 계산하고 나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 그걸 생산성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노동의 총량도 안 늘고, 공장도 안 늘고, 원료투입도 안 늘었는데, 생산이 두 배로 늘었다. 그럼, 와, 생산성이 높아졌다! 고 한다. 거꾸로 불경기 때 사람을 많이 자르고도 생산이 별로 줄지 않았으면, 와, 불경기인데도 생산성이 늘었다! 이렇게 말한다.

말장난이지 뭐. 지하경제 규모도 그런 면이 있다. 세수로 포착이 확실히 되는 그런 면을 빼고 나면 그걸 지하경제라고 한다. 사람들이 지하경제라고 하면 지하실, 그러므로 룸살롱,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맞겠지만, 실은 통계상 세수로 잡히지 않는 것을 지하경제라고 한다. 통계방식을 좀 바꾸면 이 사이즈도 크게 변한다. 룸살롱의 매출이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도 지하경제의 규모가 크게 변해버린다.

뭐냐, 말장난이다. 자, 이 두 개 말장난 사이에 묘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지하경제를 너무 쪼지 않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렇게 양극화가 기형적으로 진행되어 버린 지상경제의 상황에서는 지하경제를 어느 정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허용, 심지어는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국민복지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 (범죄행위를 권장하는 건 결코 아님을 밝힌다. 요즘 청문회 보니 글 쓸 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전통시장이 대형할인점에 전부 잡아 먹혔다. 그런데 대형할인점 앞에 이른바 무허가 리어카 소상인 행상들로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럴 경우 당연히 대형할인점의 X파일에 이름이 출현하시는 경찰, 세무서, 소방서, 구청 아저씨들이 교통정리, 규제, 구속, 철거, 검거를 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다. 거기서 폭력, 비위생 같은 원초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지혜롭게’ 용인하라는 거다. 그래야 경제가 유지가 되고 통계로 잡힌 나라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가게 된다. 제도권 지상경제에서는 생존 부적격자로 판명이 나더라도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사실 제도권이 정말 숨막힌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윗사람에게 절대 복종, 새벽부터 2시간 출근, 초인적인 강도의 노동,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 사먹기…. 나 같으면 그렇게 살기 참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제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튕겨나가 버린다. 야쿠자가 되기도 한다. 일본 사회는 그걸 어느 정도 용인해준다. 그래서 야쿠자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자기들은 제도권에서 숨막히게 살지만 제도권 밖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오니상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 한국처럼 양극화가 진행된 상황에 제도권내에서 보통사람들이 쉴 수 있는 숨의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숨막힐 지경일 것이다. 초대형재벌들조차 다른 모든 사람들이 숨막히고 있으니, 자기들도 불안해서 어느 정도 숨이 막힐 것이다.

일정규모인 한 지하경제도 필요하다

몇 년 전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해 경제적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화폐개혁은 지하경제를 작살낼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북한경제의 가장 큰 병목은 무역의 부재이지 지하경제가 아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1980년대 대만에서 공부할 당시 국민당 정부의 경제운영에 큰 감명을 받았다. 지하경제를 상당부분 용인하는 점이다. 가만히 보니 중국의 전통적 통치술이 그런 것 같았다. 너무 꽉 쥐어짜면 부러진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잘 아는 듯하다. 한국은 장사를 정치적으로 하는데 반해 중국은 정치도 장사처럼 하는 것 같다. 중국사람을 오래 사귀고 느낀 결론이다.

까놓고 말해서 미국과 캐나다 경제 활력의 상당부분도 불법 이민자들이 버텨주는 지하경제의 비중에서 나온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진짜 실력이 아주 엄청나다. 캘리포니아의 농장, 북미 전역의 수많은 공장에 사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은 통계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현금유통량을 보면 1인당 500달러 정도되는데, 실제로 보통사람들은 50달러 정도 갖고 있는 게 보통이다. 그만큼 어딘가 굴러다니고 있고, 현금으로만 유통되는 경제가 크다는 뜻이다.

경제에는 이렇게 버퍼존(완충지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 체력이 튼튼하게 유지된다. 사람은 직업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가끔 인생이 괴로워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지하경제가 없으면 이 사람들이 좀 쉬었다가 다시 튀어 올라갈 방법이 없다. 일정 정도의 회색지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북한은 사실 지하경제가 그나마 경제의 활력을 주던 주요 원천이었는데, 잘난 척 하면서 그걸 죽여버리니 북한 인민들만 이래저래 고생이다. 도대체 그런 걸 정책이라고 위에다 올리는 동무들은 반동간나분자 아니겠나. 무엇 무엇은 정부가 눈감아 준다. 그러나 이 선은 절대로 넘으면 안 된다. 정말 서로 인간적으로 하자. 너희가 날 졸로 알면 난 널 개로 취급하겠다… 이렇게 교감이 오고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간 것에는 인구의 감소, 노령화도 있지만, 일본사회에 이런 ‘유도리’가 너무 없는 것도 그 원인의 하나라고 본다. 예를 들어, 야시장 노점상 이런 것 너무 심하게 관리하면 안 된다. 어느 지역의 거리 행상은 정부가 공권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눈감아 준다. 그러나 폭력행위는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좋다.

한중 페리가 오고 가는 항구에 가보면 중국에서 여행가방으로 고추 같은 식품을 잔뜩 짊어지고 오시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보따리 장사다. 단속하고 벌금 매기고 심지어는 구속도 하고 그런다. 그거 잘못된 거다. 어느 정도 그런 것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제도권 지상경제를 바이패스해서 형성되는 생태계를 용인하는 것이 경제전체의 생산성을 올린다. 중국에서 농민들이 대형 수매업체라는 제도권 지상경제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한국의 대형할인점에 진열되는 그런 일도 좋다. 그러나 중국말 몇 마디 배운 아주머니들이 직접 중국 농민에게 이민가방으로 사서 손수 들고 들어와 지방 전통시장에 팔았다. 인간적으로 그걸 어떻게 단속하고 구속하고 벌금 매기고 그러나. 정책문제 이전에 이건 좀 인간의 문제가 아니겠나.

내 말은 그런 여유를 허용하는 것이 경제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만약 지금 미국이 화폐개혁을 한다고 하면 전세계 경기가 즉각 부흥될 것이다. 장롱 속에 숨겨두었던 달러가 다 돌아다니기 시작할 테니까.

사실 미국은 500달러, 1000달러 고액권 지폐를 대량 발행할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에서 이들 고액권을 대량 소비하고, 그렇게 해서 연준의 부채비율을 확 떨어트려야 한다. 그러면 미국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 실제로 유럽은 고액권 유로화 지폐를 발행했지만 마피아들이 사줘서 문제가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지하경제를 무조건 적대시하지 말고, 이용할 건 이용하자는 거다.

One comment

  1. 예전엔 사과상자에 만원권을 채웠지만, 요새는 오만원권을 채우죠.

    마찬가지로 10만원권이 나온다면 10만원권으로 뒷거래를 할겁니다.

    그러다가 법에 잡히면 더 많은 돈을 양지로 끌어낼 수 있겠죠. 재밌는 발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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