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나가라족’의 일인자

3월이라···

3월 첫 주가 시작되었다. 봄이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을 끝내고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등교하는 자가 있는 집에서 맞이하는 3월 첫 주는 특별하다. 그것이 대학생이건 선생이건 초등학생이건 다를 바 없다.

마음도 몸도 바쁘다. 봄빛 탐스러운 주말 오후 커다란 대아에 울샴푸를 풀고 겨울 스웨터를 담근다. 하얀 빨래 검은 빨래 나누어서 세탁기를 돌린다. 아침 설거지도 그대로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 끈을 꼭 졸라맨다. 아뿔싸! 수목드라마 재방송도 봐야지. TV를 켜고 볼륨을 올린다. 부엌, 욕조, 다양도실을 왔다갔다 정신이 없다. 발바닥에 걸레가 달린 슬리퍼를 신었다. 물을 살짝 묻혀서 걸레질까지 욕심을 부린다.

겨울 내내 소파에 축 늘어져서 TV만 보던 ‘카우치 포테이토’ 엄마가 빨래 내놓아라, 교복 챙겨라 고함을 지르니 아이들은 짜증스러운 얼굴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강남스타일’, 아닌 ‘내 스타일’인 것을.

나는 항상 그랬다. 좋은 습관이 아닌 걸 알지만 태생인 걸 어쩌겠는가. 게으름 부릴 만큼 부렸다가 한번에 이거저저 일을 벌이고 통통거린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이런 나를 두고 일본친구들은 ‘나가라족(ながら族)’이라고 한다.

‘~나가라(ながら)’ 용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한다(音樂を?きながら勉?をする)’, ‘TV를 보면서 식사를 한다(TVを見ながら食事をする)’ 등 두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쓰는 부조사 ‘~나가라(~ながら)’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굳이 우리말로 해석한다면 ‘~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AながらB = A, B 동시에 진행하는 두 동작을 나타낸다. 이때 B가 주된 동작이고 A는 부차적 동작이다. 그러니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공부가 주된 동작이다. 간혹 바꾸어 생각하다가 시험을 망치는 일도 있었던 일도 있지만.

그 외에도 AながらB = A인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B 동작을 하다, 예컨대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ながら語った)’와 같을 글에도 쓰인다. 또한 AながらB = A상황에서 예상되는 사태에 반하는 일이 B에서 이어질 때도 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何もかも知っていながら?えてくれない)’와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나가라족은 ‘~나가라’의 세 용례 중 첫 번째 용례에서 비롯된 말이다. 쇼가쿠칸(小學館)이 발행한 일본 최대 규모의 사전 <일본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는 단어인지라 오래전부터 정착된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백과사전도 겸한다는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의 <고지엔??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실수로 빠뜨린 건 아닐 것이고, 어쩌면 일시적 유행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가라족=동시에 많은 일 처리하는 사람 ???

‘나가라족’은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단어다. 1958년 소아과의인 기다 후미오(木田文夫) 교수가 ‘뭔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집중할 수 없는 증상’을 가리켜 ‘나가라 신경증’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시작된다. 가벼운 신경질환으로, 나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수험생을 문제시했다.

70~80년대 나가라족 수험생에게 심야 라디오와 진한 커피 그리고 영어단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속에서 맴돈다.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의 잔소리도 함께 기억된다.

세월은 바뀌어도 역시 공부는 집중해서 하는 것이 정답인 모양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 러셀(Russell A. Poldrack)은 뭔가를 하면서 공부를 하면 뇌의 본래 사용하고 있던 부위와 다른 부위를 사용하게 됨으로 나중에 기억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발표했다.(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2006.7.25) 역시 공부는 하나에 집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왕도는 없다고 하지.

최근에는 이 단어가 잘 쓰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21세기, 사회는 복잡해지고 동시에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가운데 ‘나가라족’은 특별한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단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컴퓨터 화면에 여러 창을 열고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역시 ‘나가라족’의 일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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