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A 세미나] 동북아시아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언론의 역할

*다음은 2013년 2월28일 사단법인 아시아기자협회가 주최한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아시아 언론의 역할’ 세미나 발제문입니다.

발제자 : 이병효(‘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1. 머리말

위키피디아에서 ‘territorial disputes’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모두 73건의 영토분쟁 사례가 나와 있다. 이 가운데 동북아에 국한해서 보면 7건의 영토분쟁이 있는데, 주요한 것만 추려 본다면 일·중 간의 센가쿠열도/댜오위다오, 한·일 간의 독도/다케시마, 러·일 간의 남쿠릴/북방영토 등 3건을 꼽을 수 있다. 한·중 간 이어도/수옌자오와 일·중 간 오키노토리시마는 현재로선 첨예한 분쟁이 있는 곳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쓰시마/대마도는 한국 내에서 영유권 주장이 나온 적이 있지만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정부가 공식 제기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흥미롭게도 위키피디아는 한반도 전역을 영토분쟁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 헌법 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북한 헌법 1조는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한다”고 돼있어 관할권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 최대의 영토분쟁은 남북한 사이의 통일문제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 할 것이다.

2. 동북아 영토분쟁과 언론의 3가지 금기어

위의 영토분쟁은 한·중·일·러·북한 등 5개 당사국과 역외 국가이지만 방위공약 등으로 연결돼 있는 미국 등 모두 6개국이 관련국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참가국과 같은 면면인 것이다. 이 가운데 한중일 3개국의 언론을 잠시 살펴보자.

먼저 중국은 공산주의국가로 언론의 자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제5세대 지도부, 즉 시진핑 체제로의 교체를 전후해 호전적 발언과 인근 국가에 대한 위협 자세를 점차 에스칼레이트시켜 왔다. 후진타오의 10년 동안 중국은 ‘화해사회’와 ‘평화굴기’를 거듭 내세워 왔지만 시진핑은 ‘중화부흥’ 즉 민족주의와 부국강병을 강조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 언론은 북한을 두둔하다 못해 한국에 위협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만 아니라면 한국쯤은 쓸어버릴 텐데…”하는 투의 중국관리들 말이 잇따라 보도됐다.

같은 해 10월25일 새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은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6·25 60주년 좌담회에서 참전 노병들에게 한 말이라지만 워낙 사실과 동떨어진 말인데다 국가원수가 될 인물로서는 다분히 경솔한 발언이었다. 꼭 1년이 지난 2011년 10월25일자 <환구시보>는 남중국해 영토분쟁과 관련해 베트남과 필리핀을 겨냥, “영토분쟁이 심해지면 군사행동이 필요할 수 있고, 이들 국가는 포 소리 들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중공 군사위 주석에 취임한 시 총서기는 지난해 12월 광조우 군구사령부에 가서 ‘강군건설’과 ‘전투태세’를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매파로 알려진 퇴역 해군제독 양 이는 “우리가 항공모함을 몇 척이나 만들 것인지 알려줘서 소국들이 도발을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최근 말했다. 중국 언론, 특히 <환구시보>는 이런 강경발언 보도가 이웃나라들의 중국의 군사위협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나아가 중국의 오만에 대한 강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극우언론이 민족주의와 반한·반중감정을 선동하는 보도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일본의 대외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일본사회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또 이들 극우 신문과 잡지, 인터넷매체의 보도들이 한국에 중국에 전해짐에 따라 기존의 반일감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일본은 민주국가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언론 안팎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이들 극우세력의 선전선동에 제동을 가하고 자제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가 극우화되면 한국이라는 우방을 돌려세우면서 아시아에서 고립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언론은 국내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갈려 진영논리를 고수하지만 대일문제에 관한 한 민족주의와 민족감정에 똑같이 휩쓸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동시에 대미, 대중문제가 되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특정 국가를 비호하는 경향을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언론은 2000년대 들어 사회 변화에 따라 질적 수준이 저하되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보수언론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퍼주기 때문이라고 탓하고 진보언론은 거꾸로 이명박 정권의 강경일변도 정책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등 ‘blame game’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소련의 한국수교의 대응책으로 본격 개시됐고,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1994년 제네바에서 합의한 북·미 핵동결협약을 사실상 파기하고 경유 제공을 중단함으로써 촉진됐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과는 무관하게 진행돼왔다는 말이다.

한국 언론은 독도 문제에 관해서 문제 제기를 하기는커녕 이견이 표출되는 것조차 용인해오지 않았다. 설사 국내에서 독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없어서였다 하더라도 일본 주장을 충분하게 보도하는 정도의 아량은 있어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 이래 집권자들이 독도나 반일감정을 지지도 반등을 위해 정치적 이용을 할 때마다 언론은 충실한 도구 노릇을 떠맡았다. 가수 김장훈처럼 독도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경우에도 한조각의 성찰이나 회의도 없이 함께 떠들고 대중을 부추겼다. 대다수 언론이 이런 것은 이해하더라도 소수라 하더라도 비판의 시선이 없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이른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ANK)’라고 자칭하는 시민단체도 도 다른 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야 좋다 하더라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가며 할 일은 아니다. 예컨대 아르헨티나 교과서에 한국에 대한 정보가 잘못 나왔다면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고칠 문제지 우리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워낙 가난하고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홍보활동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이런 단체가 외국 신문에 광고 내는 것을 보면 1960∼1970년대 북한이 주체사상 전면광고 내던 것이 연상된다.

어떤 한국거주 외국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조그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벌컥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Short Man Syndrome’이라고 불렀다. 덩치가 작다는 것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키 크고 힘센 이웃에 대해 쓸데없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닌데다 지나치게 비난성이라 기분은 별로지만 이런 말을 잘 들어서 소화할 줄 아는 것이 성숙한 태도다. 우리는 무엇보다 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르고 극단으로 흐르는 버릇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세 나라와 그 밖의 관련국 언론에게 다음의 세 가지 관념을 종전과 다르게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민족주의와 정치이념, 그리고 인종주의 등 3가지 금기어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민족주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나쁜 말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애국주의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지고지선의 신념체계로 사람들에게 강한 흡인력과 소구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미 국가에서 민족주의는 ‘dirty word’까지는 몰라도 비난의 의미가 섞인 어휘, 최소한 환영받지 못하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대두한 민족주의는 19세기 수차의 혁명을 겪고 20세기 전반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 데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구미인들은 민족주의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중국의 19세기말 사상가 량지차오(梁啓超)는 세계사를 천하대란-소강(小康)-천하태평의 순환이라고 보았다. 천하대란시대에는 개인주의와 가족중심사상, 소강시대에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천하태평시대에는 사해동포주의와 세계정부가 지배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지금 천하대란의 시대에서는 멀찍이 벗어나 있다. 그러나 아직 천하태평의 시대에는 갈 길이 멀다. 세계는 현재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이는 있지만 소강의 시대에 들어서있다는 진단이다.

소강의 시대는 작은 평화가 지속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여기저기서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다. 작은 전쟁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제국의 하수인끼리의 대리전,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저강도 전쟁, 루안다내전이나 시리아내전과 같은 civil war, 내란·쿠데타와 군사충돌, 국경분쟁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작은 전쟁은 민족주의가 불쏘시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동아시아 각국의 언론은 민족주의를 가라앉히고 민족감정을 식히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자들이 냉정과 침착을 강조한다고 해서 한번 불붙은 민족주의 열풍을 잠재울 수는 없다. 따라서 평소에 이웃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문화를 이해하도록 교류와 협력을 꾸준히 늘려가야 한다. 그러려면 민족주의보다는 동북아·동남아 등 지역중심의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는 공동체주의로 점차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정치이념의 폐해는 동아시아에 잘 알려져 있고, 남북한은 6·25전쟁의 수백만 사망자를 낸 최대의 피해국이다. 중국도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악몽을 겪었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패망을 원자폭탄과 함께 맞았음에도 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유감이다. 동북아시아 언론들은 이념 편향을 극복하고 실용주의와 온건노선에 뜻을 모으고 지역 전체에 평화의 기조를 정착시키는 데 진력해야 한다.

셋째, 인종주의는 아시아에 관한 한 당장 긴박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결정적이고 심각한 사항이다. 서구에서 인종주의는 용납할 수 없는 태도이자 행동으로 받아들여져 사회적 금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한·중·일 3국 사람들은 심한 인종적 편견을 갖거나 인종주의에 무감각하기 일쑤다. 이런 태도를 바꾸어 인종주의에 대한 민감성을 일깨워 인간평등에 대한 실천적 신념을 불어넣는 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단순히 경제적 선진국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되는 데 필수조건이다. 언론은 사회교육의 차원에서 인종주의에 확고히 반대하는 보도를 지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동아시아의 언론은 스스로 호전적인 수사를 최대한 자제할 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 등 여론선도계층, 이념단체 등의 강경발언을 보도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이와 정 반대 측면에서 아시아 언론은 각국 국민들의 의견과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뜻을 자국 정부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충분히 전달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언론 본연의 임무로서 소통의 통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사회 저변의 정서가 잘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이 선동을 하지 않고 국민감정을 절제하도록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진정한 국민적 분노가 있을 때는 그것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조선일보>는 지난 15일 새정부의 김병관 국방장관후보자가 “북한에 급변사태가 닥치면 현실적으로 중국이 관할하는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 시 △대규모 지상군 전개·군정(軍政) 실시 △위성정부 수립과 해·공군 전개 △중국 영향력 증대와 영토 편입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이 경우 “북한이 망하면 중국이 먹으려 할 것”이란 예측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은 시정잡배라도 할 수 있고 중국이 티베트도 골치 아픈데 북한을 병합함으로써 2,400만 명의 소수민족을 편입한다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화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의 하나 중국이 북한을 점령하려 기도한다면 한국은 절대 이를 좌시하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역사에 답이 나와 있는 문제다. 고구려의 한사군 축출과 대수·대당 전쟁, 나당전쟁은 모두 중국의 영토야욕에 저항한 것이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세운 역사적 사건들이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의 북한 접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지할 것이라는 점은 한국 언론이 보도를 해줘야 중국이 이해를 하게 된다. 결국 <조선일보>는 이 문제가 한국의 핵무장보다 더 중요하고, 김병관 발언에 대해 속보를 써야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 맺는말: 일괄타결의 두 방안

한·중·일·러 4개국의 영토분쟁을 한데 엮어 한방에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아마도 silver bullet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다소 억지로라도 일괄타결의 방략을 내야 평화가 유지될 것이고 외교적 공세를 취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만족도는 높은 ‘상책’과 만족도는 낮아도 현실성은 있는 ‘하책’을 일단 제시해 보기로 한다.

첫째는 일본이 영토를 양보하고 국제사회의 위상으로 대가를 취하는 등 관련 당사국 모두가 ‘win-win’의 거래를 하는 상책이다. 일본은 중국에게 센가쿠열도를 시원스럽게 넘겨주고 중국은 유엔안보리를 12개 상임이사국체제로 개혁할 때 일본을 상임이사국으로 추천한다. 일본은 유엔 상임이사국이 됨으로써 안보와 위상을 얻고 중국은 미일동맹을 느슨하게 만드는 효과와 함께 장기적 안목에서 아시아국가를 안보리에 보강하는 포석을 한다. 일본은 러시아에게도 남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을 지원 받는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사할린산 천연가스의 일본 판로를 장기간 보장 받는다.

일본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더불어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고 북한 개발을 위해 경제지원을 한다. 한국이 북한과 국가연합 등 외교적으로 통일을 이루면 유엔안보리 진입을 적극 지원한다. 또한 동해/일본해를 창해(滄海) 등 중립적 이름으로 바꾸는 데 동의한다. 한국은 역사교과서 및 위안부 문제 등을 더 이상 제기하지 않고 일본과 군사협력협정 및 FTA를 맺는다. 일본의 안보리 진입 등에 중국의 지지를 얻는 데 한국이 적극 알선에 나선다.

중국은 다오위타이를 얻고 한국·일본과 3국 FTA를 맺는다. 미국은 한미 군사동맹을 군사협정체제로 전환하되 외교·경제적 동맹관계는 유지한다. 주한미군을 상징적 수준으로 줄이고 남북한은 상호 군비감축을 시행한다. 미일동맹은 군사동맹을 유지하되 해공군력에 국한한다. 중국이 타이완과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일본과 한국이 지지 협조한다. 티베트에 대해서도 두 나라가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러시아는 쿠릴열도 영토문제를 해소하고 통일한국과 경제동맹을 맺는다. 일본과 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입을 돕는다.

한국은 북한에 대해 정치·군사·경제·사법·행정 등 모든 자치권을 인정하는 대신 외교를 통합해 통일한국 자격으로 유엔안보리에 진출한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인정받고 중국으로부터 이어도를 포함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받는다. 북한은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받는 한편 핵무기를 제한적으로 보유하도록 허용 받는다. 미국은 한국과의 군사동맹을 축소하는 대신 통일한국이라는 중국 견제세력을 얻고 중국과도 협력관계를 유지 발전시킨다. 일본과는 해공군 중심으로 군사동맹을 유지한다.

이 방안이 제시하는 변화는 한국과 중국에는 유리하지만 일본의 경우 손익계산이 복잡하기 때문에 타산과 결심, 합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평화보장과 함께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증진한다면 장기적으로 유리하고 영토는 실익보다는 국민정서와 심리의 문제다.

일괄타결의 두 번째 방안은 기본적으로 영토문제는 이 시점에서 현상을 동결하고 어업과 에너지자원, 무역에 대해 한중일 3개국이 별도 협정을 맺는 것이다. 아울러 단일통화가 아닌 공통통화를 발행해 상호 결제수단으로 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유로처럼 각국의 고유 통화를 모조리 폐지하고 단일통화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국 통화를 유지하면서 별도의 공통통화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현상동결방안은 각국의 국내정치에서 반발의 가능성이 비교적 작기 때문에 현실성이 높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센가쿠/디아오위타이의 경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시장이 센가쿠의 소유권을 매입하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으로서도 현상유지는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일본에는 유리한 해결책이다.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동북아 영토분쟁이 타결된다 하더라도 아마 후자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방안은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여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능성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설사 실현되지 않아도 이런 해결안을 비전으로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으로서는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 언론인들은 국익에만 골몰하는 태도를 벗어나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시각으로 전체를 조망해 보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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