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갈루치 “대북정책 20년 봉쇄·포용 오가다 실패”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보 차관보. 현재 맥아더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아산정책연구원>

1차 핵위기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67) 미국 맥아더재단 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아산 핵포럼 2013’ 국제회의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로버트 갈루치 회장은 북한의 핵의혹과 관련, 전쟁 직전까지 갔던 1994년 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 낸 미국측 협상 총책임자였다.????

‘지난 20년간 북한 비핵화 정책은 실패했다’는 주제로 한 기조연설 전문을 게재한다.

봉쇄·포용 오락가락 하다 현실화된 북 핵무장??

1993년에 발발한 제1차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지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1993년도 북핵 위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세이프가드 조항위반을 적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에 대해 북한은 핵비확산 조약탈퇴로 대응했다.

지금은 지난 20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어 왔고, 새로운 점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과의 위기상황은 많은 분기점들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세 번에 걸쳐 대통령이 바뀌었고, 북한 지도부 역시 두 번 교체됐다.

즉, 현재 상황은 데자뷰처럼 보이지만, 지난 위기들과는 분명히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차이점은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접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노련한 유도선수들이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주력기술을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경험으로 상대방에 대해 서로 알고 있다.

북한은 반복적인 파괴와 살상의 위협을 한 후, 뒤이어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을 감행했고, 때로는 도발적인 군사행위를 일으켰다.

반면 우리는 예측 가능한 대응책을 취해 왔다. 즉 북한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더욱 고립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제재는 아마도 북한주민들의 고난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북핵 위기 가운데에서 정치적 포용(Political Engagement)를 모색하던 시기도 있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남북한의 정치·경제적 교류가 증가했고, 미국은 상황에 따라 양자 회담부터 6자회담까지 다양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변화하지만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20년 전 북한은 단지 소량의 플루토늄만을 축적한 상태였고,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무기 역시 없었으며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이 보유한 가장 발달된 탄도미사일은 중거리 ‘노동’ 미사일뿐이었다.

현재 북한은 최대 8개의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20~40kg의 플루토늄을 축적한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3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현대화된 가스원심분리기 농축프로그램으로 분열성 핵물질을 매일 축적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은 궁극적으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개발과 결합한 강력한 핵무기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 미사일 핵공격 보다 핵테러 위협 더 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 지난 20년간 우리의 대북정책이 -그 성격이 포용이든 봉쇄이든 간에 -북한이 동북아 지역에 가하는 위협을 줄이는 데는 분명히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위협을 말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북한의 도발행위는 한반도 및 주변지역에 상당한 군사력 증강과 개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 존재는 결국 상황을 악화시켜 더 큰 규모의 갈등과 비극적인 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위협은 핵무기가 이러한 갈등 가운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 역시 내포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증강이 설사 전쟁수준의 위협은 아닐지라도, 동북아의 다른 국가들이 핵 비보유국 지위에 대한 재검토를 고려하게 할 것이고, 이는 핵 비확산 체제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위협은 북한이 언제든지 자국의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이나 핵심기술을 테러단체나 테러지원국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이런 위협은 이미 일부가 현실화되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은 시리아에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건설했고, 이 시설은 완공되기 6년 전에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됐다.

특히 이러한 핵테러 위협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바이다. 바로 지금,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핵무기 관련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고 농축우라늄, 핵무기설계, 심지어 핵무기 자체를 향후 판매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만약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면 이는 결코 듣고 싶은 의견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핵확산, 핵테러의 위협은 미국 입장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위협이라는 점이다. 이는 북한이 향후 미국을 향해 탄도미사일로 핵공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위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협이다. 북한의 핵탄두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보복을 가하겠다는 선언을 통해서나 대방어 요격미사일로 격추시키는 등의 억지력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다.

북 핵무기 방어용인지 위협용인지 판단 선행돼야?????

그러나 핵테러 위협은 누구나 비전통적인 운반수단인 트럭이나 보트를 통해 급조된 핵폭발장치를 운반함으로써 미국 전역에 가해질 수 있다. 이런 위협에 대해서는 특정한 억지력이나 방어기제가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 확산은 미국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둘째, 20년전 북한과 관련해 거의 아무도 묻지 않았던 중요한 질문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공격, 미국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공격에 대한 대비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나? 즉, 북한은 방어의 목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까?

아니면 북한은 변함없이 한반도를 무력으로 재통일하려 하고, 한미동맹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을 향한 미사일 발사능력을 구축하려는 것인가? 즉, 북한은 공격의 목적으로 미국을 억제 하고자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전자인 경우에는 우리는 외교를 통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시간이 흘러 적절한 정책을 찾는다면 동북아내 갈등을 줄이고, 핵문제를 해결해 참여국간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최선의 경우에도 무력충돌만 회피할 뿐 지역 내 안보갈등은 전혀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20년 전에 그러했듯 이 같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최고의 해결책은 북한의 입장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과 외교적인 대화를 통해, 지역내 안보갈등이 궁극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인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도 군사적으로는 준비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셋째,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분명한 것은 지금껏 우리를 가장 곤란하게 만들어온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만 우리의 외교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20년 전에 생각해 온 것과는 반대된다. 그때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우리의 목표를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정치, 경제, 안보 이슈들을 다루기 위해 우리의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즉, 우리의 최종 목적은 북한의 핵무기 포기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가 이 목적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북한의 핵무기 포기라는 목적에 대해서는, 모든 이해 당사국들의 우려 사항들을 다루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흔들림도 모호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1994년 미북간 핵동결 협약을 가능케 했던 양자간 접근 방법 보다는 2007년 6자 회담의 외교 방법과 더 유사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포용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 형식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자신의 체제 유지에 대해 가지는 우려라고 본다. 이는 적어도 처음에는 한국, 미국, 중국 정부가 필수적인 참여 당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7년도의 합의들이 왜 여전히 미완성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핵 문제 해결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힌다. 앞으로 새로운 실수를 할 가능성도 많은데, 우리가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용정책이 성공적이라면 장기적으로 유지

북한을 포용하기 위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미동맹에 뿌리를 둔 탄탄한 정책 기반 없이는 성공적으로 북한을 상대할 수 없다. 북한은 항상 그 기반을 흔들 방법을 찾을 것이지만, 두 국가의 안보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하는) 북한과의 정치적인 합의의 기초에는 한미간 강력한 동맹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은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둘째, 중국은 북한과 관련된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는 지에 대한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결과를 도출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포용정책의 초기 전개과정에서 중국정부와의 협의는 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북핵과 관련한 어떠한 합의가 맺어지기 전까지는 일본 및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참여 역시 포함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용정책이 성공적이라면 장기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텐데, 미국과 한국 모두 국내적으로 충분한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 장기적인 대북 포용정책은 상상할 수 없다.

즉, 우리의 외교가 시작은 조용히 진행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국가안보 이익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에 기초하여 공개가 될 것이며, 그런 평가를 함에 있어 고지식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희망적인 사항들이 반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모두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제재가 반드시 협상과정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이런 제안이 시사하는 바 중 하나다. 과거에 우리가 목격한 북한의 여러 도발들은 협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외교적인 약속들과 협력을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국내적 지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20년 전 북한과의 협상에 참여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와의 협의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언론으로부터 성공적인 협상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 이를 낙관적으로 보는지 비관적으로 보는지 –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 그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지금 갖추어야 할 태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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