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잠 못드는 밤에

하얀 눈이 내렸다.? 속삭이듯 내리는 눈이 언제 멈출지 모르겠다. 도심의 눈은 회색빛 고층 건물에 비쳐 어두운 회색인데 비해 가평의 눈은 자연을 베개 삼아 내리는 눈이라 그런지 정말 하얗다. 문득 솜이불을 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평의 첫 겨울은 이렇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족히 십리는 될 듯한 먼 산기슭에서 흉물처럼 높게 뻗은 굴착기며 온갖 기계가 골프장을 만드느라 내는 어지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어느덧 깊은 밤의 장막이 설원을 뒤덮었다. 가로등이 하나 둘씩 서서히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하얀 눈밭 위에는 둥글고 노란 그림자들이 하나 둘씩 만들어졌다. 병원 현관문이 열렸다. 직원 몇몇이 발목까지 빠지기 시작한 눈밭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저녁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가 보다.

생명유지 장치는 거친 숨소리에 맞춰 끊임없이 칙칙거리며 횡격막을 자극하고 있었다. 삶의 경계를 오가는 이놈의 기계는 때로 자기가 무슨 전능한 힘을 가진 듯 교만을 떠는 듯 보인다.

생명, 죽음, 삶, 이런 이야기가 평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식자(識者)들에게는 연구대상이었고,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평가돼 왔던 것 같다. 혹 대중매체에서는 잘 다루기 힘든 주제이니 애써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세상 일이 너무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병원이란 곳, 특히 중환자를 돌보거나 상태가 위급한 환자들을 돌보는 응급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명의 경계를 경험하게 된다. 남아있는 자와 떠난 자의 선이 순식간에 결정되는 순간도 허다하다. 남아 있는 자에게는 아쉬움이요 원망이지만, 떠나는 자에게는 영원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그곳에서 의사는 늘 관찰자요, 그들을 배웅하는 전문가가 된다.

생명의 불씨가 꺼지는 순간이 되면 종교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매우 진실된 믿음을 가지게 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혼을…”이라며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하게 된다. 이 찰나의 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유신론자가 되기도 한다. 아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경외감이 어느 순간 솟아오르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밝게 웃는 어린이 이야기, 젊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혹은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 이야기, 때로는 가벼운 농담, 미운 사람의 뒷담화 등도 공감대를 만든다는 생각에 즐기는 경우가 있다. 주식이야기, 돈 번 이야기, 자식들의 성공담 혹은 실패 경험, 친구들의 안부소식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고 탄식을 지르기도 한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지친 그날의 피로를 잊으며 행복감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머릿속에 행복바이러스가 춤추며 돌아다니게 하니 당연한 기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종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가 달라진다. 행복바이러스는 시작과 끝이 있어서 간결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삶의 종결은 그 끝이 없다. 여운이 남는다. 사람에 따라 그 차이가 심하다. 느끼고, 생각하고, 묵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저 생물체로 왔다가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다고 해서 뭔가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죽었다. 그저 그렇지 뭐,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라며 끝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삶의 종결이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 동의하시는지.

거의 반평생을 꽃동네에서 봉사하신 분이 있었다. 오랜 세월 꽃동네와 호흡하던 그분에게? 어느날 문득 찾아온 말기 암은 그의 육신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괴롭혔다. 열이 심하게 나기도 했고, 극심한 통증을 어찌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의식은 가물가물 거리면서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그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틀 후라네요, 선생님” 회진 중 만난 그의 보호자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요?” 나는 무심코 넘기려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반백이 된 머릿결을 가지런히 빗어 넘긴 자그마한 키의 할머니는 두 눈에 깊은 상념(想念)을 담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나는 예전대로 너무 절망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말만 주워섬기기에 바빳다.
정말 머뭇거리다 이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간 그분의 얼굴은 마치 생환할 듯한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는 듯 했다. 그날이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예전보다 밝아진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더 들었다. 하지만 문득 ‘나의 조부님도 돌아가시던 날 내게 뭔가 암시를 하셨었는데’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분들에게 알려 드리시는 게…”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저녁 그 가족들이 왔다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분은 새벽에 영원을 찾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를 아는 환자와 뭔지도 모르고 허둥대는 의사의 만남이 바로?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리 가족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내 허전한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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