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두번째 ‘통일기회’가 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 강온양면책 절실… 협상 주도권, 한중FTA,?대북 평화공세

북한이 12일 낮 제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오래지 않아 앞으로 4차 핵실험이 있을 가능성과 함께, 차후 중·단거리 미사일 및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어질 전망도 점쳐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상당한 수준의 제재를 결의하는 것은 시간문제고,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어떤 형태로든 독자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유엔 제재에 진력하는 한편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대북 강경입장을 표명하고 관련 당사국들과 부리나케 협의하는 것 외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핵문제의 제1당사국은 미국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경우 주요 표적이 되는 것이 미국이고, 미국은 전통적으로 화생방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수상이유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오바마의 비전과 노고”를 들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핵 비확산을 개인적 대의명분으로 삼았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핵무기 감축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재선 이후 얼마간 외교정책에 관한 한 일정한 자유재량권을 누린다. 다시 선거에 나갈 이유가 없고 국내문제와 달리 대외문제는 로비단체의 압력에 시달릴 일도 적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대이스라엘 정책인데, 이란 핵문제는 미국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핵문제는 그동안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할 때마다 떠들썩하게 보도되기는 했지만 일반 국민의 관심사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미국을 직접 겨냥해 투박한 수사를 동원함으로써 미국 조야에 대해 상당한 자극을 가했다. 오바마로서는 개인적으로 북한이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뭔가 하라는 의회와 여론의 압력을 느끼고 있다는 증좌가 나타나고 있다. 임기 말의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신호를 받고 나서 강경 대응으로 선회한 것이 한 예다. 따라서 미국은 지난 두 차례 북 핵실험 때와는 좀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보다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대북 압박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선택지는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나 일본 핵무장 허용 등이 아니다. 가장 실질적인 조치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거의 최후통첩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은 중국에게 북한을 책임지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이 북한 통제와 중미 협력을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몰아붙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은 최근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과 함께 중국에 대해 화전 양면책을 써왔다. 한쪽으로는 미중간의 무역과 교류를 허용하면서 다른 한편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서서히 조여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명분은 북한이 처음으로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강대국 간에는 대리 하수인 국가를 동원해 교전하는 것을 용인하지만 직접 충돌이나 본토 공격은 절대 회피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북한은 지금 이런 금기사항을 깨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나 중국에 대한 압박은 ‘꽃놀이패’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대미 군사적 위협이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은 어떨까. 중국에게 지난 10년은 가장 획기적인 경제개발을 이룬 시기였지만 동시에 가장 부패와 비리가 기승을 부린 때이기도 했다. 이제 막 들어선 시진핑 정권은 부패척결과 균형발전을 통해 2020년 소강온포(小康溫飽) 사회 건설의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고 정치군사적인 글로벌 강국으로 올라서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부적으로 분란이 없어야 하고 외부적으로 미국시장의 접근권 등 중미협력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10년의 평화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일본과 센카쿠제도를 둘러싸고 군사적 대치를 불사하는 것은 닭을 잡아서 원숭이를 경계하는 ‘살계경후(殺鷄警?)’의 차원이지 일본 및 미국과 군사 대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중국이 국제정치구도상 일본을 볼 때 지역의 라이벌보다는 미국의 대리인으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또한 중국의 안보이익은 티베트 및 신장지역과 대만에 이어 한반도와 일본 등 동북아가 핵심 지역이다. 중국은 수도권과 동북지역의 안보를 위해 북한을 완충국가로 유지한다는 정책을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력관계와 택일을 강요당한다면 장차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단, 미군이 북한에 진주하지 않고 통일한국이 미국 쪽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 말이다.

이런 안보환경 아래서 한국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북한에 대해 ‘담담타타(談談打打) 전략’을 펼쳐야 한다. 즉, 강온양면책을 구사해야지 강경 일변도나 유화정책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외곬으로 추구해서는 되돌아갈 길이 가로막혀 대단히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것이란 얘기다.

첫째, 한국은 미국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북한의 협상파트너는 한국이며,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어깨 넘어 북한과 협상을 벌이거나 협정을 맺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사실상 전권을 틀어쥐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에게도 꼭 어려울 것이 없다. 북한은 어차피 까다롭고 골치 아픈 협상상대고, 최근 한국의 위상과 비중이 크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북한이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고집함으로써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격이다.

둘째, 한국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올해 안이라도 타결을 해야 한다. 대범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 경제적으로 크게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협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한중관계를 더 긴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중FTA는 미국도 크게 반대하는 사안이 아니고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게 만드는 데 최선의 방책이다. 지난 2001년 한중어업협정은 당시 중국정부의 정치적 판단으로 한국에 다소 유리하게 맺어졌다는 인식이 중국 내에 있다. 또 중국은 2010년 아세안과의 FTA를 체결하면서 정치적 고려로 이익을 대폭 양보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FTA 외에도 다양한 쌍무적 협력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북한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 대미수교, 개발지원과 민생보장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이 최소한의 핵무기를 상징적으로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핵 동결’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북한에 인권보장과 경제협력, 도발배제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국가연합 등 남북통일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남북 현안의 일괄타결을 추구해야 한다. 또 우리 내부의 국보법을 폐지하면서 북한의 강제수용소 폐지와 인권탄압 시정 등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평화공세를 벌임과 함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단순한 균형대응이 아니라 대량타격을 하는 등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 대량타격은 단순 충돌을 전면전으로 무작정 확대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서는 수직적으로 한 단계씩 확대해 반격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북한군이 연평도 포격을 가할 때 우리 공군력으로 북한 4군단을 타격하고, 만약 북한군이 서부전선에서 공격하면 배후의 군단사령부까지 반격해야 한다. 북한이 만약 서울의 민간목표를 포격하면 당연히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선제공격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일단 공격을 받으면 축차적으로 확전 타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쟁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북한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다만 우리가 타격력을 가지고도 북한에 끌려다니면 결국 전면전과 상호 파멸의 불구덩이로 빠질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 실속 없이 호전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공격을 받아도 참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 큰 불행을 초래하는 길이다.

6·25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게는 남북통일의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일부 우익 논자들은 4·19와 광주항쟁 등이 북한의 남침 기회였다고 주장하지만 근거 없는 말에 불과하다. 남한의 정치위기가 북한이 침공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 그들은 왜 남한의 극단적 혼란을 수수방관했겠는가. 또 왜 민주화 항쟁 때가 아니라 군사독재가 강화됐을 때 비정규전 공격을 벌였겠는가.

대한민국에게는 과거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1991년 소련의 해체와 1997년 IMF사태까지의 기간이다. 당시 북한은 소련이라는 최대 후원국을 잃었고, 중국은 아직 강대국으로 발돋움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미국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에 군림한 짧은 시기였다. 이때 미국이 북한을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면 북한은 ‘호소무처’인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때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앞두고 어려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에서 북한의 미래에 대해 ‘경착륙 vs 연착륙’ 논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 정부는 북한이 불원간 경착륙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이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필자는 국방부 출입기자였는데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크리스텐슨 공사가 기자실에 찾아왔다.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고 그 뒤에도 없었던 듯하다. 그가 기자들에게 제기한 질문은 통일이 언제쯤 될 것 같은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언제 망할 것 같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5년 안에 망할 것 같다는 기자는 필자 한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몇 십 년 뒤’라든가 아니면 ‘그걸 어떻게 아나’라는 응답이었다. 결과적으로 필자의 말이 틀렸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정세 판단을 해놓고 확인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1994년3월 1차 북한 핵위기 당시 미국은 영변폭격을 단행할 준비를 끝냈고, 폭격이 실행됐다면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1993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처음 방한했을 때 휴전선 남방 미군 관측초소에 가서 “북한이 도발하면 석기시대로 돌려버리겠다”고 호전적 발언을 했다. 당시 한국 신문들은 1면 1단기사 정도로 다뤘지만 실로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갑자기 강경입장을 바꿔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적극 만류하는 바람에 영변 폭격은 취소됐다.

그 이전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일 때 딕 체니 미 국방장관과 이종구 국방장관은 1990년 가을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이듬해 봄 한미 탐스피리트작전 때 영변폭격을 하기로 합의했다. 나중에 이를 보고받은 노태우 대통령이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또 1991년 1차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모든 역량이 이라크 쪽으로 돌려졌다. 당시 미국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경찰관으로서 전권을 행사했다.

북한은 이번의 3차 핵실험으로 핵기폭장치의 개발을 거의 완성했다. 북한은 “소형화와 경량화를 달성했다”고 주장했지만 미사일에 장착할 핵탄두를 개발하려면 아직 5년 정도가 남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북한 관계자도 국제회의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이 가령 5년 뒤 아무런 통제와 견제를 받지 않는 채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하게 된다면 국제사회는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핵탄두 개발은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주변 국가의 협공을 받아 망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올해부터 2018년까지 5년이 북한으로서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빅딜’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창문’이다. 이 창문이 닫히면 북한은 거래를 할 기회를 잃고 국제적 고립 속에 파탄을 맞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런데 이 5년은 박근혜 당선자의 대통령 임기와 일치한다. 박 당선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방어적 태도와 소극적 정책,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북한에 대해 과감히 화전 양면공세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보다는 폭넓은 사고와 유연성, 상상력과 추진력을 가진 인사들이 대북정책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안보관만으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국가안보 상의 거센 풍랑을 헤쳐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북한과 현안의 일괄타결을 통해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한국이 선진국 가운데서도 메이저리그에 들어설 수 있는 지름길이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는 시장의 확대와 생산기지 확충으로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국내 고용의 촉진과 투자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프론티어효과’를 안겨줄 것이다. 앞으로 5년은 우리에게 두 번째 통일의 기회다.

* 이 칼럼은 논평전문매체 ‘오늘의 코멘터리 (www.commentary.co.kr)’ 제휴 콘텐츠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