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이동흡 김용준사태’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플루타크 영웅전에 보면, 페르시아 대군의 공격 앞에 창황망조(蒼黃罔措)한 그리스 사람들에게 나무 벽을 의지하라는 델포이의 신탁(oracle)이 나오자 알키바아데스가 이는 배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해군으로 페르시아군에 대적하기로 전략을 세워 승리를 거둔다. 이처럼 신탁은 그리스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종적 권위였는데 당대 현인의 지혜를 신탁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일 것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우리 사회의 신탁이어야 한다. 그냥 고급 법관이 아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지명자는 한마디로 ‘공사의 구분을 못하는 인간’이어서 표결에 부칠 가치도 없다는 평결(評決)이 나왔다. 대부분의 국회의원 가운데 지명자 이상의 도덕성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명자는 예수와 같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이 사회에 그를 비판할 자는 아무도 없다. 비판해야 하는 것이 기능이니 비판했을 따름이다. 이번 해프닝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법조인들의 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용준 전 헌재소장의 총리 지명 자진 사퇴 소식이 나왔다. 오호 애재(哀哉)라!

영국에서는 판사는 법정에서 My Lord라 부른다. 미국에서는 대칭으로는 Your Honor라고 하며 3인칭으로는 Mr. Justice라 부른다. 서구사회에서 법조인은 이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우리 사회에서 신탁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완벽한 도덕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대법관을 마치고 로펌에 가서 몇 년 동안에 수십억원을 버는 것이 과연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들의 변론이 수십억 가치가 있는 절묘한 이론에 바탕을 둔 설득력이 있어서인가? 아마 전관예우로 죽을 자를 살리고, 뺏기게 되어 있는 땅을 찾는 수고비로 받은 대가일 것이다.

‘법조 3륜’이라 함은 판사, 검사, 변호사 군(群)을 말한다. 여기에 당연히 법학교수를 포함하여야 한다. 불문헌법을 택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상원이 최고법원이다. 대법원이 따로 없다. 상원의장은 대법원장이며, 동시에 법무장관(Lord Chancellor)이다. 상원에서 고도의 법리적 판단을 내리는데?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법학 교수의 판단도 묻는다. 우리의 헌법학회장, 형법학회장, 민법학회장의 한마디도 이와 같은 무게를 가져야 한다.

대법관, 헌법재판관은 조선시대 재야의 산림(山林)과 같은 권위를 가져야 한다. 괴산에 반거(盤居)한 송시열의 한마디는 바로 법이었다.?조선은 이러한 정신으로 500여년을 지탱해왔던 것이다.? 사회의 신탁 역할을 해야 할 법조인들이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에 지나지 않다면 조선 시대에 형률(刑律)을 다루는 아전(衙前)과 다름이 없다. 우리 법조인들은 이런 아전 대접을 자초할 것인가?

보수는 사회의 정통 가치를 보존하고 선양하는 기능을 갖는다. 진보는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 창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천민자본주의에 천민민주주의까지 엉켜서 사회가 무척이나 어지럽다. 우리 조상들에게 양반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정신과 풍모를 가꾸는 것이어야 했다. 이번 소동을 일과성 충격에 머무르지 않고 전 국민, 특히 지도층의 일대 도덕적 각성의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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