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美, 군부보다 대기업·지주에 ‘막강 권력’ 부여

일제 점령기 기득권층은 일본군과 결탁···110만 이상 군인·민간인 희생

2001년 미 하원의원 대너 로라배처(Dana Rohrabacher)는?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만행을 이렇게 폭로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군에 의해 일시적(1942~1945년)으로 점령당했는데 이 기간 동안 110만명 이상의 필리핀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수많은 농민들이 항일인민군에 참가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 기득권층들은 일본군과도 결탁하였다.

1942년 4월, Bataan 지역에서 붙잡힌 미군과 필리핀군 7만6000여명이 10일 간 포로행군을 하면서 전쟁포로들을 고문, 학대하고 1만명 이상이 사망한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학살사건(Bataan Death March)이 발생했다. “포로들은 행군 중에 매를 맞고 굶주렸다. (일본군들은) 쓰러진 포로들을 총검으로 찔렀고 말을 탄 일본군 장교들이 사무라이 칼을 연습하듯 일부 포로들의 목을 베었다. 패자에게는 명예가 없다는 당시의 일본문화가 반영되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으므로, (일본군들로서는) 인간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일본군들은 (포로들을) 인간 이하 또는 동물 다루듯이 하였다.”

1500년 경 아메리카대륙 점령 시기에 스페인 역사학자이자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바롤로메(Bartolome Las Casas, 1474~1566년)의 기록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말과 칼, 창을 사용해 학살을 시작했고 원주민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잔학성을 보였다. 마을을 공격하면서 어린이, 노인, 임산부, 출산 중인 여인까지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칼로 찌르거나 팔다리를 자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마치 도살장에서 양을 잡는 것처럼 갈가리 찢었다. 그들은 한 칼에 사람을 벨 수 있는가, 머리를 단번에 잘라낼 수 있는가, 혹은 칼이나 창을 한 번 휘둘러서 내장을 쏟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이를 낚아채서 바위에 집어 던져 머리를 부딪치게 하거나 강물에 집어 던지고는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자식들아, 그곳에서 펄펄 끓어라.” 그들은 키가 낮은 교수대를 만들어서 발이 겨우 땅에 닿을 정도 높이로 사람을 매달아 놓았다. 구세주 예수와 열두 제자를 기념한다면서 13명을 이렇게 매단 다음 불타는 장작을 발치에 두어서 산채로 태웠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의 수는 1500만명에 가깝다.”

미,?중국 겨냥 ‘반공정책’ 필리핀에 강요

50여년 간의 미국 식민 정책은 군부보다는 민간인에게 우월한 권력과 역할을 주는 것이었고, 미국의 지원 아래 대기업과 대지주들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1946년 7월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자 필리핀이 중국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한 미국은, 필리핀으로 하여금 반공산주의 정책을 펼쳐나가게끔 유도하였고 이로 인해 냉전기간 동안 중립적이었던 인도네시아, 버마, 캄보디아 등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가 냉랭했다. 전쟁복구 지원과 무역 특혜 및 대규모 미군기지의 존재도 대미 종속관계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필리핀에는 중국 남쪽지방의 어부들과 상인들이 오래 전부터 이주해 와서 1600년도에는 7000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명나라, 청나라의 교체시기(1640~1660년)와 태평천국의 난(1850~1864년)때 전쟁과 기근, 재난을 피해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만주족의 침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7%인 2500만여명이 죽었으며, 태평천국운동을 비롯해 각종 소요사태가 일어나 5000만명 가량 죽었다 한다)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 영유권을 인도받은 1898년도에는 화교들이?7만명 정도로 증가했다. 이들은 대부분 필리핀인들보다 지위가 낮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교육 수준과 신분이 낮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을 떠나온 하층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화교들은 필리핀의 토착지배층과 결혼을 하는 방법으로, 또는 스페인 식민지배층들과 중국과의 대규모 무역을 통해 지배계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통치기간 중에 화교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보다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이후 중국 이민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현재 필리핀에서 순수 중국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화교는 전체 인구의 약 2%(200만명), 중국계 혼혈인의 숫자는 전체 인구의 20%(2000만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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