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7일] 튀니지 시민혁명 불 댕긴 부아지지의 분신자살

2010년 튀니지 청년 부아지지 분신자살

2010년 12월17일 토요일 13시2분, 튀니지의 시디 보우지드(Sidi Bouzid)에서 26세의 청과물 노점상인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가 분신자살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이 도시에서 독재자 벤 알리의 대형 초상화가 불타면서 튀니지 봉기가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튀니지 시민혁명’의 열기로 이듬해인 2011년 1월14일 벤 알 리가 퇴진한다.

튀니지 주류 언론들은 대학을 나온 뒤에도 과일 노점상을 해야 했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 사건은 물론 이후 벌어진 시위 소식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부아지지 사건에 정치적 힘을 실어준 것은 블로그와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SNS였다.

분신 사건은 SNS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고 살인적인 실업률로 신음하던 튀니지 국민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이에 앞서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대통령 일가의 불법적인 재산 축적과 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담은 외교문서가 일반에 공개되면서 불만을 품고 있던 시민들은 분신 사건을 계기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시위는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산됐다.

정권 퇴진 운동의 진행과정은 ‘튀니지안 걸’ 같은 블로거들과 트위테리안 등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낱낱이 보도됐다. 주류 언론도 하지 않던 일을 이들 SNS가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휴전

원래 같은 나라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소수 이슬람교도와 다수 힌두교도들이 종교적, 정치적으로 충돌해 두 나라로 쪼개진 경우다.

영국이 통치하면서 소수의 이슬람 세력을 제치고 다수인 인도 힌두교도들이 득세했다. 영국이 물러갈 무렵인 1947년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 이듬해인 1948과 1965년, 1971년 등 3차례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1971년 12월17일 휴전을 했지만, 동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로 독립시킨 인도와 소련을 한축으로 한 사회주의와 파키스탄을 지원해온 미국을 한축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의 이념적 갈등은 양국을 평화로 이끌지 않았다.

아직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다.

1996년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극

1996년 12월17일 페루 수도 리마 소재 일본 대사관에 중거리 무기와 수류탄을 소지한 괴한들이 납입했다. 극좌파 게릴라 투팍아마르혁명운동(MRTA) 소속 무장대원 14명이었다.

대사관저에는 이날 일왕 아키히토의 생일 축하 연회가 열리고 있어 공관 근무자 등 600여명이 넘는 사람들로 붐볐다.

무장괴한들은 이원영 한국대사를 비롯해 일본의 아오키 모리히사 대사, 프란시스코 투델라 페루 외무장관, 브라질과 쿠바, 볼리비아 대사 등 10여 명의 외교관이 포함된 약 700명의 내빈들을 인질로 잡았다.

당시 일본계 대통령인 후지모리는 나흘 뒤 TV연설에 등장, MRTA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인질극은 무려 4개월 남짓 계속됐고 그 동안 인질 수는 72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인질극의 궁극적인 종료를 위한 협상은 잇따라 실패했다.

그러자 정부는 1997년 4월 22일 150여 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대사관에 전격 투입, 범인 14명을 전원 사살하고 인질 71명을 구출했다. 사건 발생 126일 만이다.

1922년 이집트 투탕카멘왕 묘 발굴

고대 이집트 파라오 가운데서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파라오 투탕카멘. 재위 기간은 채 10년이 되지 못하고 19세의 어린 나이네 급사, ‘소년 왕’으로 불린다.

미지의 왕 투탕카멘의 존재를 확신했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1922년 12월17일 훼손되지 않은 투탕카멘 왕의 무덤 속을 최초로 확인했다. 왕묘의 위치를 발견해 낸 것은 같은 해 11월4일, 발굴에 착수한 것은 11월26일로 알려져 있다.

람세스 6세의 무덤 밑에 30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소년 왕’의 무덤이 발견된 것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그런데 지구촌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은 바로 이날이후 생겨난 말이다.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20여 명이 2~3년 안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투탄카멘 왕의 석관 위에는 “나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죽음에 이를 것이며, 도시는 멸망하고, 화재와 홍수, 페스트에 휩싸일 것(“Death will come on swift wings to those who disturb my peace and shall do evil or wickedness to this. The City of the Gate will fall, and to its land will come fire, water and pestilence”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투탄카멘 왕의 석관 위에 씌여진 이 상형문자들을 "나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죽음에 이를 것이며, 도시는 멸망하고, 화재와 홍수, 페스트에 휩싸일 것"이라는 문구로 해석하고 있다. <출처=http://paul-barford.blogspot.com/2011/04/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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