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연재를 시작하며···’객기와 용기’

*필리핀에서 23년째 살면서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 문종구씨가 최근 <필리핀 바로 알기>(좋은땅)를 펴냈다. ‘필리핀에서 사업 혹은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과 필리핀의 전통, 관습, 규정 및 사회문화를 현장경험을 통해 생생히 비교하고 있다.?필자 문종구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여수 금오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해양대를 졸업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여 3남1녀를 두고 있다.?그는 대학시절 읽은 오그만디노의 <위대한 상인>에 나오는 “한번 해보고 실패하는 것이 해보지도 않고 실패하는 것보다 낫다”는 글귀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했다.-아시아엔(The AsiaN)?

필자가 20여 년을 필리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소개하게 되면, 필리핀에 와 본 적이 없거나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인들은 거의 한결같이, “아~ 그래요! 필리핀 전문가가 다 되셨겠네요!”하며 필자에게 여러 분야에 대해 질문을 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해드리는 말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40년 이상을 생활하셨으니, 한국의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전문가이신가요?”

“필리핀 전문가는 아니지만 23년 경험을 얘기할 책무가 내게 있다”

필자는 직접 해보았던 분야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어서 들려준 사례들 외에는 필리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러므로 필리핀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다. 필자의 경험과 느낌 위주로 서술한 것들과 옅은 지식 및 정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현지인 아내와 살면서 처가 쪽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필리핀 생활 초기 몇 년 간 지배층들과 어울리게 된 계기도 있어서 필리핀 사회가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평균적인 한국 교민들보다는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필리핀에서 처음 생활하기 시작하던 1990년도에 이미 필자보다 먼저 와서 생활하고 있던 교민들이 5000여명이었다.

남해안의 조그마한 섬에서 무척이나 가난하게 자란 필자는 천운을 만났는지 20대 중반에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볼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유럽 국가로는 포르투갈, 아프리카 국가로는 수단, 케냐, 세네갈, 시에라리온, 아이보리코스트, 라이베리아, 토고, 카메룬, 나이지리아, 북미 국가로는 미국, 캐나다. 남미 국가로는 칠레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잠시나마 보면서 가벼운 접촉과 경험도 해보았다.

두 얼굴의 필리핀···종교에 순화된 온순한 서민과 극심한 빈부 격차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필리핀에 오게 되어 어느덧 이렇게 오랜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많은 나라들과 비교하여 ‘필리핀’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종교에 순화된 서민들의 착하고 온순한 모습과 극심한 빈부 격차다. 필자의 단편적인 경험으로는 종교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들(남미와 아프리카와 중동)의 서민들은 대부분 착하고 온순했으나 가난했고, 지배층들은 부유했다. 그래서 종교와 서민들의 온화한 성격, 그리고 심각한 빈부격차가 서로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한 나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나라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것(관습)이라 했고,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실정법과 관습법)을 따르라’라는 격언은 누구나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사회와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법률화한 행동 규범(실정법)들은 20% 정도이고 법률화하지 않은 행동 규범(관습)들은 80% 정도라 하는데, 필리핀의 실정법은 거의 서구적이어서 한국인들에게 크게 낯설지 않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법률화하지 않은 대부분의(80% 정도나 되는) 행동 규범, 즉 관습들은 서구적인 것들과 동양적인 것들 및 종교적인 것들까지 뒤섞여 있어서 실제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몸은 필리핀에 있으면서도 뼛속 깊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의식을 유지하고 있어서 필리핀의 색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모국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에 불과하다”는 격언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 중에는 현지인들과 오해를 빚어 크게 다투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필리핀의 현실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큰 재물을 어처구니없이 날려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험은 창조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 했고(You cannot create experience. You must undergo it.),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보아야 안다고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필리핀에 살면서 건너고 지내보았던 수많은 ‘물’과 ‘사람’들에 대한 체험과 곰곰이 생각해 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아시아엔(The AsiaN)에 연재하면서?필리핀의 개략적인 역사와 지리에 대해 한국과 비교하고, 다음에는 필리핀 사회, 문화, 관습에 대해 한국과 비교하면서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들을 발췌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배층과 서민층의 문화, 그 차이의 원인 및 지배층의 진보 편향적인 성향과 서민층의 보수 편향적인 성향 등을 다룰 예정이다.

필자가 생각하고 정의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한국 사회에서 대체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진보는 진취, 개발, 탈원칙, 탈법, 비도덕성을 원칙으로 하는데 반해, 보수는 안정, 보호, 원칙, 준법, 도덕성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완벽하게 진보 또는 보수로 일관할 수 없으며 사안에 따라 보다 진보적 또는 보다 보수적인 결정을 하므로 이는 ‘정도의 차이이지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라고 개념을 정리하였다.

햇빛을 한곳에 모으면 불꽃을 만들 듯 ‘필리핀 사회가 왜 이럴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사안에 접할 때마다 장시간 관심과 사고를 집중하여 나름대로 통찰력이 떠오를 때까지 노력해 보았다. 그래서 필리핀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과 이 글을 통하여 나의 경험과 관찰들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두 가지 맥락을 누누이 강조할 것이다.
첫 번째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종교적이며 보수 편향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필리핀 서민들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자는 것이다. 가난이 불쌍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니 서민들 앞에서 천박한 우월 의식을 가지지 말자는 것이다. 용기 있는 한국인은 서민들과 함께 곁에서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머물지만, 객기를 부리는 한국인은 항상 가난한 서민들 또는 남들 앞에서 무엇인가 되기 위해 껄떡거리고 나댄다.

진보 편향적 지배층의?’상상 못할’ 부와 권력

두 번째는, 진보 편향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지배층들의 부와 권력 및 필리핀 사회에서의 강력한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들을 상대하거나 거래할 때에는 피해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자는 것이다. 용기 있는 한국인은 지배층이 두렵다고 말하고 매사에 조심하지만, 객기를 부리는 한국인은 현실을 무시하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선 식은땀 흘리며 사태 해결을 위해 사정하러 다닌다.

몇 년 전, 유쾌하고 재치 있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던 ‘다음 아고라’에서 당시 ‘베트젬’이라는 필명으로 올린 ‘용기와 객기’라는 글을 발견했었는데, 평소에 내 중심을 잡게 해주는 좋은 글이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소개한다.

용기엔 현실 판단이 작용하지만, 객기는 현실 무시다.
용기는 지키기 위해서 발휘되지만, 객기는 나서기 위해서 발휘된다.
용기 있는 자는 두렵다고 말하지만, 객기 부리는 자는 겁 없음을 자랑한다.
용기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지만, 객기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조장한다.
용기는 오랫동안 인내하지만, 객기는 인내가 뭔지도 모른다.
용기는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만, 객기는 허영심 때문에 싸운다.
용기는 눈덩이처럼 갈수록 커지지만, 객기는 용두사미로 끝난다.
용기는 가슴 속에서 나오지만, 객기는 입에서 나온다.
용기는 일이 끝나고 나면 침묵하지만, 객기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떠벌린다.
용기는 사건의 종결을 목적하지만, 객기는 사건의 발단을 초래한다.
용기는 두려움의 극복이지만, 객기는 두려움의 은폐일 뿐이다.
용기는 감동으로 끝나지만, 객기는 유치한 소영웅주의로 끝난다.
용기는 느낌과 명분으로 싸우지만, 객기는 쪽수로 개긴다.
용기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서지만, 객기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껄떡거린다.
용기는 겸손하지만, 객기는 과시한다.

2 comments

  1. 문종구 작가님 글 많은 도움을 기대 합니다.
    필리핀에 부동산 계약 및 소송 관련하여 도움받을 변호사를 찾는 중입니다.
    필리핀 세부와 마카티에 변호사를 찾습니다.
    혹시 도움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글 올립니다.
    연락처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Simon

  2. 일하면서 많이 바빴을텐데 좋은책을 내어 축하한다
    조만간 얼굴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전화를 했더니 지방에가고 없데
    건강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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