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미국이 아메리카 인디언에 사과한 날

2009년 U2,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기념콘서트

2009년 11월5일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록 밴드 U2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해 독일 베를린에서 무료로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U2는 이날 저녁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MTV 유럽뮤직어워즈의 일환으로 30분 동안 무료 공연을 펼쳤다. 공연 무료 티켓 1만 장은 지난주에 실시된 티켓 오픈 당시 3시간 만에 마감됐다.

U2는 대표곡인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와 <원(One)>, <뷰티풀 데이(Beautiful Day)> 등 6곡을 불렀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9일 붕괴됐으며, 현재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장벽 일부가 기념물로 남겨진 상태다.


2009년 오바마, 인디언 추장 초청 사죄

2009년 11월5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이제는 미국 내 소수 인종이 되어버린 북아메리카 대륙의 ‘원주인’인 인디언 564개 부족의 추장들을 워싱톤으로 초청해 사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미국의 역사가 인디언을 수탈한 폭력의 역사란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원주민들의 자녀 세대, 손자 세대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동등한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9년 당시 혼혈 포함 인디언은 미국 인구의 1.37%(310만명)를 차지했다.

2006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 교수형 선고

2006년 11월5일 이라크 법원은 사담 후세인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시아파 무슬림 학살에 대한 유죄를 인정, 사형(교수형) 선고를 내렸다.

사담은 “나는 사형당하는 것이 절대 두렵지 않다. 이란과 손잡으면 안 되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담은 이후 항소했으나 이라크 최고 항소법원은 사형을 확정, 2006년 12월 30일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2001년 9월11일에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고 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에 강경 자세를 취했다. 2002년 1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이란이나 북한과 대등한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다.

이라크는 2002년부터 2003년 3월까지 유엔 감시 검증 사찰위원회의 무기 사찰을 받으면서, 미국에 의한 무력 공격의 위기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담 정권은 강경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9·11 테러에 대해서도 사담은 연설로 “미국이 스스로 부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테러를 비난하는 대신 과거의 미국의 중동 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비판한 것.

2003년 3월20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1441호를 근거로서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 사담은 마침내 미군의 붉은 새벽 작전으로 체포돼 전범 재판을 받았다.

1995년 국제공산당 ‘코민테른’ 재 창설

1995년 11월5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세계 각국의 공산당들이 모임을 갖고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을 재창설했다. 이튿날 불가리아 공산당 기관지 두마의 보도로 이 사실이 지구촌에 알려졌다.

이 신문은 이번 회의에 프랑스와 독일, 브라질, 인도, 신유고연방 등 모두 29개국에서 공산당대표들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불가리아 사회당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스파소프가 새로운 코민테른의 사무총장으로 피선됐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당을 갖고 있는 북한과 베트남, 중국은 초청장을 받고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3인터내셔널로도 지칭되는 코민테른은 1,2차 세계대전사이에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촉진시켰으며 의심 많은 스탈린이 다수의 코민테른 지도자들을 숙청한 뒤 1943년 해체됐었다.

1991년 필리핀 태풍 셀마로 6500명 사망 실종

1991년 11월5일 필리핀 오르모크시를 강타한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6500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무려 12만 명의 이재민과 70여만 명의 직간접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 9월 필리핀 북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200명 이상이 숨지고,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600여명이 숨진 데이어 발생한 최악의 재해였다. 태풍으로 오르모크시는 3미터 이상의 높이 물이 드러차 도시 전체가 사실상 수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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