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41회 “지혜로운 코끼리”


성수기와 비교하자면 왕위앙의 여행자거리는 텅 비다시피 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카약을 즐기고 다이빙을 하던 계곡은 제멋대로 쏟아 붇는 집중호우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게 변했고 쏭강에는 황토색 강물만 넘치게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러 특별한 체험을 즐기기 위해, 더불어 저렴한 비용을 이유로 우기의 라오스를 찾는 여행객들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하지만, 리조트는 조용한 일상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 어둠이 내릴 때까지 매일 한 두 차례씩 느닷없이 몰아치는 비와 천둥 벼락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 고요함을 그대로 유지했다. 어느 때보다도 라오스다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갈로 십 여 채와 강변 쪽 객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어 있었고 이런 날은 점점 길어졌다.
부쩍 서울 출장이 잦아진 강 전무가 리조트를 비운 어느 날, 리조트 식구 중 또 하나가 사라졌다.? 방목하던 코끼리가 없어진 것이다.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간 사이 관리 소홀의 틈을 타 코끼리가 사육장을 벗어났다고 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며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고하는 직원들이 평소처럼 “버뺀냥”했을 때 그 말을 ‘괜찮다’라는 말 뜻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기준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 큰 덩치를 못 찾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관리 직원이 무거운 얼굴로 찾아왔을 때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날 기준은 직원들을 풀어 코끼리 수색작전에 나섰다. 고향에 다니러 갔던 쏭이 돌아와 코끼리를 찾는데 합세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나흘 째 되는 날 기준은 이러다가 그대로 코끼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모두가 의아해 했다. 개나 고양이도 아닌 코끼리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사라졌으니. 기준은 루앙의 말대로 코끼리가 고향을 찾아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제발 무사히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주인 없는 코끼리를 보면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을 거라며 혹시라도 벌목꾼들에게 잡혀 산 속으로 끌려가지 않았을까 전전긍긍해 하던 쏭은 그 후에도 계속 코끼리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녀석의 이동경로는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코끼리가 사라졌다는 말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총지배인이었다. 가까스로 병상에서 일어나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그 말을 듣자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술 직후 호전되었던 몸 상태가 완쾌로 이어지지 않고 증상이 남아 있어서 아직은 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왜 코끼리를 리조트에 잡아두려고 했는지 아는가?”
한 숨 돌린 총지배인이 물었다. 기준은 상식적인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코끼리는 나에게 항상 교훈을 주지. 천천히 걸으라고 말이야. 빠르게 뛰는 동물들은 모두 단명 한다네. 지상을 군림하는 호랑이나 사자들을 보게. 하지만 코끼리 같이 천천히 걷는 동물은 장수하지. 제 길을 묵묵히 인내심을 가지고 걸으라는 것이지. 그걸 알고 나서는 그 친구를 내 곁에 두고 싶었네.” 총지배인은 코끼리가 사라진 것이 자신의 잘못이기라도한양 우울해했다.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으니 …… 어쩔 수 없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사람을 풀어 놨으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겁니다.” 말에 확신이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총지배인은 기준의 말을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물러나 있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백발이 눈에 띄게 늘었고 주름살도 깊어졌다. 인정하기 싫어도 총지배인은 이제 노인이었다.
“병실에 갇혀 있으니 답답하군. 하늘을 보고 싶네.”
기준은 총지배인을 부축하여 병실 복도에 이어지는 2층 발코니 쪽으로 나섰다. 문을 열자 온 천지를 뒤덮을 듯 쏴하는 소리가 달려들고 거리에는 주룩주룩 장대비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기준은 문득 그 빗속에 뛰어들어 시원한 비를 맞으며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연수단 유치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총지배인의 목소리가 기준의 짧은 상념을 끊었다.
“임원 연수로 범위를 좁히는 바람에 조건에 맞는 수요를 찾기가 다소 어렵습니다. 게다가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보니 연수 프로그램에도 제한이 …… ” 자신도 모르게 핑계를 대고 있던 기준이?? 주춤했다.
“하지만 참가자들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흐음, …… 일반 단체객은?”
“비수기인데다가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강 전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출장이 잦군.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통……. 직원들 분위기는 어떤가?”
“…… 조용한 편입니다.”
사실 조용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술렁이고 있었다. 총지배인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병원 건물 밖으로 오고가는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빗발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비가 그쳤다. 변덕스런 우기답게 잠시 후 날씨가 멀쩡하게 개어버렸다.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던 총지배인은 기준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병원 주변을 산책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아니, 리조트로 가주게.”
“총지배인님,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
“리조트를 직접 둘러봐야만 안정이 될 게야.”
총지배인의 의지는 완강했다. 기준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한 뒤 총지배인을 차에 태우고 만약을 위해 휠체어도 뒤에 실었다.

총지배인이 나타나자 여기저기 흩어져 일을 보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둥글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례차례 총지배인의 손을 잡고 쾌유를 기원했다. 잠시 후 리조트의 거의 전 직원이 나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총지배인을 만나기 위해 몰려나왔다. 두어 걸음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기준은 총지배인이 반드시 돌아와야 할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목표를 달성하는 뛰어난 리더는 아닐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마음의 둥지가 되어줄 줄 아는 인물이었다.
직원들이 흩어진 뒤에야 총지배인은 휠체어에 앉았다. 기준은 산책로를 따라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이곳을 동남아의 보석으로 만들 생각이었지. 비록 낙후된 휴양지이지만 훗날 이 리조트만 보고도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라오스 최고의 명소로 만들고 싶었네. …… 부득이하게 떠났지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출발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타협이 문제였어. 그룹에 지분을 넘기는 게 아니었는데.” 총지배인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총지배인은 고개를 찬찬히 돌려 한참 동안 주의를 바라보았다. 시시각각 먹물이 번져가는 하늘, 그 아래 옹기종기 정다운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내리니 저 밑으로 유유히 쏭강이 흐르고 있다. 그 가운데 분지형태의 자리에 리조트가 아늑하게 들어앉았는데 푸르른 수풀 사이로 흰색 건물들이 동그라니 모여 있다.
“그런데 참 묘하지. 짓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다 지어놓고 나니 마치 자기 의지를 가진 듯 만든 이의 손을 떠나려고 하더군.”
총지배인은 말끝을 흐리며 기준을 쳐다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총지배인의 눈을 들여다보던 기준은 그제야 안젤라가 누굴 닮았는지 깨달았다.
“누구 개인의 소유물이 되지 않고 이곳이 진정한 명품 리조트가 되기 위해서는 총지배인님께서 하루빨리 복귀하셔야 합니다.”
“명품 리조트라……, 자네가 말하는 명품 리조트는 뭔가?”
“귀빈들이 찾는 럭셔리한 시설은 아닙니다. 다만 여길 다녀간 손님들 훗날 소중한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곳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라오스적인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리조트가 되어야겠죠.”
“라오스적인 것?”
“영혼이 쉴 수 있는 곳, 싸우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성취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라오스입니다. 라오스가 사람을 품듯이 우리 직원들도 그렇게 고객들을 품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라오스만의 서비스로 말입니다.”
“싸우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여기 라오스에서 말인가?”
“물론 라오스에서도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경쟁하고 남을 속이고 다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라오스에서는 아직은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허, 자네 아직 고생을 덜 했나보군.”
“무슨 말씀이신지 …… .”
“어떤 이들은 라오스 사람들이야말로 발뺌 잘 하고 핑계 대고 작은 일도 키워서 큰 문제로 만들고 책임은 안지고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하던데, 자네는 그런 경험이 없었나?”
“계획성도 없고 모든 걸 ‘버뺀냥’ 그러면서 문제없다, 괜찮다고 한다는 말이죠?? …… 처음에는 저도 많이 당황 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싸우지 않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총지배인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오스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더욱이 우리 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총지배인님께서 미리 훈련을 해 놓으신 덕분인지 그렇게 심한 경우는 겪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라오스 사람들은 이기적인 동기로 저 하나 욕심 채우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이기적인 동기야 있겠지만 적어도 무조건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이 많이 남아있어서 일이나 관계에서 내 것과 너의 것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리조트의 직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교육이나 훈련으로 나날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구분은 하지만 차별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요. 구분은 대화를 부르지만 차별은 다툼을 불러오거든요. 다만, 치열함이 떨어지는데 그건 아무래도 코끼리처럼 천천히 걸어가는 삶을 닮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더니, 그렇다면 투숙객들에게 코끼리처럼 천천히 걸어가는 삶을 체험하게 하자는 것인가?”
“코끼리를 닮되 지혜로운 코끼리가 되겠지요.”
“아무튼 자네의 그 말을 강 전무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군.”
총지배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 직원들이 자네를 따르는 이유를 알겠네. 자네는 우리 직원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보았군.”
“그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려면 현재의 시스템을 좀 더 라오스적인 것으로, 좀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자네들의 몫이네.”
“예?”
“자네들이 그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어 주게.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네.”
총지배인이 기준의 눈을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산책로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의 작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보았다.
‘NamSong Laos, I miss you’
언젠가 투숙객 중 한 명이 써놓은 것이었다. 기준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직원들 중에 몇몇 이 그 글씨를 파서 새겨 넣자고 건의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바위 주변은 의미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후 직원들이 휴식시간마다 즐겨 찾는 쉼터가 되었고 관광객들도 찾아보고 쉬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산책로를 돌아볼 때마다 기준 역시 마음이 뿌듯했다. 리조트를 찾는 손님들이 며칠간의 정성어린 서비스로 인해 남쏭리조트를 그리고 라오스 사람들을, 라오스적인 삶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 직원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다.
‘이곳을 그리워하게 하자.’
‘라오스를 그리워하게 하자. Miss Laos!’
그것은 리조트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직원들은 바위에 글씨를 새김으로써 자신들의 실천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 셈이었다. 라오스의 삶을 함께 체험하게 하자. 그것은 기준에게도 참으로 아름다운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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