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안개 두른 ‘황산’…”꿈인듯 가슴을 헤집는”

운해에 쌓인 북해.

황산(黃山)은 양자강 하류 안휘성(安徽省)에 속해 있으며 한국의 설악산, 금강산과 비슷한 풍경이 다. 4계절이 뚜렷하며 연평균 기온은 7~8℃, 250일 동안 안개가 끼어 있다. 180일 동안 비가 내리는 특이한 기상조건이다.

2개의 호수, 3개의 폭포, 24개의 계류와 해발 1000m가 넘는 72개의 봉우리로 형성돼 있다. 둘레는 250km로 설악산의 3배를 육박하고 중심부에는 연화봉(蓮華峰 1860m), 광명정(光明頂 1840m), 천도봉(天都峰 1810m) 등 3대 주봉이 솟아 있다.

황산은 중국의 10대 명승지에 유일하게 포함된 산악 명승지다. 199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과 더불어 세계 지질공원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1억 년 전 중생대의 지각 운동과 잇따른 융기 작용을 거치면서 옛 해양인 양쯔해(揚子海)가 사라지고 수많은 봉우리가 형성됐다. 빙하작용과 지질구조 활동으로 생긴 습곡과 단층 지괴, 그리고 석회질 모래사장, 폭포, 계단식 호수 등 고지대 카르스트(karst) 지형 등의 특징이 반영됐다.

그래서 옛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영감을 얻는 장소였고, 수많은 창작물들의 모델이 됐다.?기암괴석과 운해가 연출하는 장엄한 풍경은 16세기 중엽부터 번성했던 산수화 양식으로 발전하여 지금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과 예술가들을 변함없이 매혹시키고 있다.

황산을 노래한 수많은 절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7세기 명말(明末)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의 글이다. 그는 30여 년간 절강성, 운남성 등 중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16개성을 걸어서 여행하면서 일기를 남겼는데 후일《서하객유기》로 발간되었다. 그는《명산유기》에서 “5악(五岳)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게 되면 5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며 황산의 풍경을 극찬했다.

‘길을 걸으면서 경치 구경하지 말고 구경하면서 걷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절경을 접하면 무아지경에 빠지므로 안전에 주의하라는 말이다. 그것은 느긋하게 풍경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황산을 볼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촬영이 주목적인 나에겐 아무리 강조해도 괜찮을 말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황산의 옛 이름은 이산(移山)이다. 서기 747년 당 현종(玄宗)의 명령으로 산 이름을 황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황산 개방 후 수많은 시인 묵객들과 저명인사들이 이곳을 찾았고, 원(元)나라 때는 이곳에 64개의 사원이 건립됐다.

황산은 상하이에서 출발하면 관광버스로 6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여행사가 택하는 코스다. 중국에서 황산여행을 계획한다면 국내선으로 황산비행장을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등산이 용이하도록 4만 개에 이르는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크기나 모양이 균일하여 놀라움을 자아낸다.

서림호텔과 인근의 풍경.

정상 부근에는 세 개의 호텔이 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남쪽 기슭의 탕구(湯口)에는 일 년 내내 온천수가 흐르며 원나라부터 형성된 이름난 사찰이 많아 관광휴양지로도 유명하다.

필자는?백두산과 계림을 거쳐 오는 길로 황산을 찾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짐 때문에 도저히 돌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없어서 케이블카를 탔다.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만일 다시 황산을 간다면 무거운 짐은 아래 맡겨 두고 카메라가방에 세면도구만 넣은 채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면서 걸어서 오르고 싶다.

가파른 동쪽 계단은 8㎞, 완만한 서쪽 계단은 그보다 두 배는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힘은 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산꼭대기의 풍경만을 보고 가기 때문에 도중에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천하의 선경 속에서 사색과 고독을 만끽하면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황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정상에 있는 호텔에서 베이스캠프를 치고 며칠을 머무르는 것이 좋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봐야 할 곳들을 면밀하게 확인해야 한다.

황산은 일상적으로 안개니 운해가 끼어있다. 정상에는 호텔이라도 습도가 높고 기온이 낮으며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우의를 준비하고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이 필요하며 미끄럼 방지용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사진촬영이 주목적이라면 삼각대는 필수다.

새벽녘에 본 몽필생화의 모습.

필자가 가본 곳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곳을 살펴보자. 북해호텔 앞에 있는 몽필생화(夢筆生花)는 만년필과 비슷하게 생겼다. 수직으로 길쭉한 바위에 서식하는 노송의 자태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안개 속의 청량태.

인근의 북해(北海)나 청량태(淸凉台) 역시 운해를 만나면 원경과 함께 어울려 선경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해에 싸인 비래석.

비래석(飛來石)은 산꼭대기에 거대한 바위가 날아가는 형태로 우뚝 서 있는데 보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운해와 함께 하면?그야말로 절경이다.?비래석을 만지면 돈, 지위,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배운정 인근의 풍경.

배운정(排雲亭)은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인데 수많은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서 산수화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해대협곡의 절리와 노송들이 어울려 형성된 선경.

서해대협곡은 바위산과 절벽으로 되어 있는 협곡이다. 수직방향의 거대한 화강암 모습 그대로 금이 생겨서 절리(節理)가 발달됐는데 바위를 뚫고 솟아난 듯?울창한 노송들이 깎아지른 절벽과 어우러진 형상은 가히 선경(仙境)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황산 제1경을 뽑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서해대협곡을 뽑고 싶다.

그 외에도 천도봉과 영객송(迎客松)이 있는 옥병루(玉屛樓), 그리고 옥병루에서 보면 연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해발 1860m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蓮花峰)이 이뤄낸 연화령의 바위군상들이 열병을 하듯 늘어서 있는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노송과 바위들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황산에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수 백년 이상 묵은 소나무들이 많다. 그 중에서 열 그루의 소나무에 각각 독립된 이름을 붙여 황산의 10대 명송(名松)이라고 하는데 영객송, 송객송, 배객송, 망객송, 와룡송, 심해송, 흑호송, 공작송, 단결송, 연리송 등이다. 그 외에도 이름을 가진 노거수(老巨樹)만 31수를 헤아린다.

황산의 노송, 황산에는 이름이 붙여진 명목만 31개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산을 찾는 것은 이들 노송들이 구름과 운해,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그것은 빛나는 태양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아니고 안개 속에 가려져 보일 듯 말듯 느껴지는 여백의 미가 베어난 수묵화와 같은 풍경이다.

배운정 인근, 여백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안개가 기류에 밀려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하면 솜사탕 같은 뿌연 장막 뒤에서 거친 바위의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잠시 후 구름이 다시 움직이면 우유빛 바다 위에 신비롭게 떠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은 사라져 버린다.

감탄을 하면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꿈속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가슴을 헤집고 지나간 듯 느껴지는 이것이 바로 황산여행의 참맛이다.

One comment

  1. 김용의 무협지 의천도룡기서 장무기 스승이 북해에 있더랬죠. 거기서 장무기는 건곤대나이신법을 익혔고요. 실제 사진으로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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