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만의 포토월드] ‘진쇠춤’ 노수은 “선비의 마음으로”

무용가 노수은 <사진=신귀만 작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를 들여다보면 선비들의 행보가 보이는 듯 합니다. 한 획 한 획 가다듬어 그렸을 붓의 움직임, 그들은 자연을 그대로 모사(模寫)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그렸던 것입니다.”

무대위에서 춤을 추는 그 순간에는 한 폭의 문인화를 그린다는 생각을 한다.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어루는 발디딤새에는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을 담는다. 몸이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곧은 선으로, 무대 위에 여백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후회 안 하려면 해라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학교 선배를 따라 이리여고 무용 선생님을 만났다. 체육대학 진학 보다 무용이 전망이 좋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땀 흘리는 게 좋아 체육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던 기존 계획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열일곱살, 처음 춤을 추겠다고 했을 때, 땅만 바라보고 사셨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후회 안 하려면 해라’ 제 춤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무용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 없이 오직 그 길만을 위해 걸어갔다. 대학 4학년을 마무리할 시점에는 꿈에 그리던 국립무용단에 합격하게 되었다. “제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남자무용수 1명을 뽑는 시험에 제가 당당히 합격하게 되었으니까요.”

다시 태어나도 무용을 하고 싶다

“제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생길을 개척해보고자 6년을 다니던 국립무용단을 관뒀다. 무용단을 관두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 인생은 아이러니한 것일까? 이 시기에 이매방 선생님의 문하생이 되고 한국춤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저는 물과 같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예술을 함에 있어 창의력이나 재주는 없지만 순리대로 흐르는 물처럼 맑게 살고 싶습니다.”그래서 몇 해 전 ‘수철’이란 본명대신 ‘맑고 은은하다’는 뜻의 ‘수은’이란 예명을 지었다. 예명을 짓고 나서부터는 일도 잘 풀린다.

“지금까지의 제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 제 두 딸도 저와 같은 무용인의 길을 걷고 있는데요. 앞으로 3대가 함께하는 무용가족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용을 전공하는 두 딸에게 ‘하면된다’는 좌우명과 함께 남한테 예쁜 사람이 되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길 바라서다.

무용을 안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체육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땀 흘리고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있어서인지 “앞으로의 남은 인생은 춤추면서 가르치고 싶어요. 제자들에게 항상 기본에 충실할 것과 과정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각을 해본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무용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무용은 제게 너무나 잘 맞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저의 분신이니까요.” <글=최경국 명지대 교수, 김다혜 작가>

*진쇠춤
조선시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궁궐에서 만조백관들이 모여 향연이 베풀어질 때, 왕은 각 고을의 원님들을 불러 춤을 추게 하였다. 이 때 원님들이 쇠를 들고 춤을 춘데서 유래된 것이 진쇠춤. 무속의식의 춤 중에서 유일하게 궁중무용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춤으로 춤사위가 우아하고 유연하다. 무관복 차림에 꽹과리를 들고 추며 벙거지에 늘인 색술과 꽹과리에 늘인 오색 끈이 화려함을 더해준다. 경기 재인청의 특징인 절제미 속에서 신명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남성적 느낌이 잘 드러난다.

*노수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무용학 박사 수료
국립무용단 단원 역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매방류)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매방류) 전수자
제27회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분 차하
제8회 경기국악제 대상(문화관광부 장관상)
창작무용극 <손골동>, <애기봉> 등 개인작품 및 발표회 13회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포시지회 회장
(사)한국무용협회 회원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 전주예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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